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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50] ‘우물 안 개구리’ 예찬

by 걷고 2021. 7. 18.

날짜와 거리: 20210713 – 20210717 34km

코스: 상암동 공원 외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4,44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며칠간 지자체 공무원 채용 면접관으로 바쁘게 보냈다. 무더운 날씨에 면접용 복장을 하고 면접장으로 향하는 지원자들의 모습을 길에서 보며 그들이 힘들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만 한다. 면접관들의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물론 면접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면접관들은 심사숙고하고 토의를 통해 판단하고 결정한다. 면접 응시자나 면접 채용관이나 고용하는 단체나 모두 쉽지 않은 일을 해내고 있다. 합격한 사람들은 앞으로의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고, 불합격한 사람들은 재도전을 위한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만 한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유명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는 디자인 실장이 나왔다. 그녀가 회사 직원들에게 ‘우물 안 개구리’라는 글을 써서 매일을 보낸 것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좀 더 큰 세상을 접하기 위해 외국에 갔지만,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낮아져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큰 바다를 건넜건만 여전히 자신의 우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힘들게 살고 있었다. 그 당시 그녀는 어쩌면 우물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니고 어떤 우물 속에 있어도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힘들다고 느끼고 싫어하는 우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다. 그녀는 사내 상담센터에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고, 상담사로부터 큰 위안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너무 완벽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고 자신에게 칭찬과 여유를 주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상담을 통해서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물’은 흔히 좁은 세상을 표현하는 단어로 쓰인다. 물론 ‘우물’이 지닌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제한은 있다. 하지만 우물을 예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좁은 우물 안에 온 세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을 한 번도 가보지도 못했지만, 패전 후 일본인들의 태도에 대한 연구를 한 유명한 책 ‘국화와 칼’을 저술했다. 칸트는 태어난 후 자신의 집 반경 150km를 벗어난 적이 없지만 지금도 철학자로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성철스님은 좁은 암자에 머물며 철저한 수행을 통해 중생들을 제도했고, 법정스님은 불일암에 기거하시며 수행과 중생 제도를 위한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좁은 것이 아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좁은 것이다. 바닷물 한 수저가 온 바다를 담고 있다.

 

 우물을 예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전문성이다. 옛말에 ‘한 우물을 파라’는 말이 있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하여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는 말이다. 헤드헌터로 근무할 때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며 안타깝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좋은 학력과 경력을 갖고 있던 지원자들이 경력관리를 잘못하거나 진로 선택을 잘못해서 훌륭한 인재가 될 기회를 놓친 것을 많이 보아왔다. 한 분야의 업무에 매진하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우리 주변에는 한 우물만 판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실은 많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그들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길만을 고집하며 고통의 순간을 극복한 결과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박지성에게 우물은 축구이다. 박세리에게 우물은 골프이다. 조수미에게 우물은 성악이고, 유재석에게 우물은 방송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최고가 되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점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만나서 얘기할 때 서로 통하는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우선 이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자신의 의견과 느낌, 감정을 눈치 보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전문가를 존중할 줄 안다. 자신이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 쏟았던 노력만큼 다른 전문가들도 그런 과정을 겪었을 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우물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현역에서 물러난 후에도 후배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고 만들어 준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토너로 평생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도 한 우물만을 팠고 그 우물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배우며 우리의 꿈을 키워간다. 

 우리는 각자의 우물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번 공무원 채용 면접을 진행하면서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 각자의 우물을 찾을 생각도, 찾을 여유도 없이 오직 공무원만이 우물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씁쓸하고 많이 안타까웠다. 사회구조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꿈을 꾼다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고, 자신만의 취미를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사랑과 낭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화 속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꿈은 오직 공무원이 되어 돈을 벌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꿈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조차 할 틈 없이 수험 준비만 하고 살아온 결과이다 그들을 보며 너무 안타까웠고 사회 선배로서 미안했다. 과연 공무원이 된 후 그들의 삶은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만의 우물이 없는 한 우리를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을 찾기 위해 다른 길을 거들떠보기도 한다. 자신의 우물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구멍을 뚫기도 한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반드시 우물을 파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려야 할까? 어쩌면 우물은 이미 우리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우물은 이미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자기 주머니 속에 큰 보물을 들고 다니면서 보물인 줄도 모르고 거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기 위해 또 삶의 보람과 행복을 위해 우리는 자신의 우물을 찾고 파고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우물과 함께 살아간다. 우물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그 우물이 과연 무엇일까? 전문성,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귀, 성공 등을 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우물을 만들기 위해 평생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며 살아가야만 하는가?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다. 사회적 성취감과 개인적 만족감, 그 외 어떤 희망과 기대 역시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다. 행복은 뭔가를 이루고 그 이룬 것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행복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지도 않으며 오직 자신의 기준과 가치 안에 존재한다. 사회적 인간이기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우물을 잘 만들고 유지하는 그들의 삶 속에도 행복과 불행은 늘 존재한다. 우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매 순간 행복한 것은 아니다.

 

 우물이 행복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필요조건은 외부에서 찾을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자신의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내부에서 찾는다는 의미는 이미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내부에는 행복과 불행의 씨앗을 모두 지니고 있다. 행복에 물을 주면 행복의 꽃이 필 것이고, 불행에 물을 주면 불행의 꽃이 필 것이다. 필요조건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분조건을 충족시키는 자족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오유지족 (吾唯知足)의 삶을 뜻한다. 이는 결코 소극적이고 체념적인 삶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을 수용하는 매우 적극적인 삶의 태도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를 예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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