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들었던 얘기 중 가장 무서운 얘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말이다. 이는 최고의 융 권위자이며 ‘융 연구소’에서 심리분석가로 재직하기도 한 제임스 홀리스가 한 얘기다. 그는 콤플렉스는 무의식이 자극을 받을 때 일어나고, 자극에 대한 반응은 하나의 패턴으로 나타나고, 이런 패턴들은 우리를 미래가 아닌 편협한 과거에 얽매이도록 만든다고 했다. 칼 융은 “콤플렉스는 무의식에 있는 에너지의 덩어리이고, 역사적 사건들로 가득하고, 반복을 통해 강화되고, 우리 인격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으며, 프로그램처럼 입력된 반응과 기대를 맹목적으로 일으킨다.”라고 했다. 우리의 과거가 우리를 조정하고 있으나, 우리는 그 원인조차도 모른 채 과거에 끌려 다니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게 느껴진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면서도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지고 못할뿐더러 과거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분하다.
콤플렉스가 무의식에 있는 에너지 덩어리라는 말이 너무 와닿는다. 에너지 덩어리는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경험들이 내면에 쌓였다가 어떤 자극을 받을 때 활성화되고, 이 활성화의 결과로 다시 강화된다. 이 반응들이 기존의 에너지 덩어리에 쌓여 더욱 강화되고 큰 덩어리가 된다. 그리고 이 덩어리는 지속적으로 우리라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통제한다. 가끔 이 지겨운 반복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면, 이 덩어리는 더욱 강하게 우리를 통제하고 기존의 방식대로 살아가라고 보이지 않는 힘을 가해온다. 우리가 틀림없이 우리의 주인임에도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과거의 경험 덩어리를 자신으로 알고 살아가라고 강요한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 강요를 강요라는 생각조차 하지도 못한 채, 지금의 패턴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패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보이거나 패턴과 다른 언행을 하면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내며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강조하고 강요한다. 이런 반복적인 언행 덕분에 덩어리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견고해진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이 말이 쉽게 이해된다. 지금 돌이켜보니 한편으로는 이해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억울하다. 이 무서운 덩어리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쏟는 데 사용한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고,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인한 좌절감의 고통이 너무 컸다. 또한 나에게 주어진 일정한 양의 시간과 에너지를 보이지 않는 과거의 악령과 싸우느라 모두 소진해 버려서 자신의 발전을 위한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데 사용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나에게 통제는 무섭고 견디기 힘든 단어였다. 누군가가 나를 통제한다는 생각을 하거나 말을 들으면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힘이 없었기에 속으로 억지로 참으며 표현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화를 웃음으로 표현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힘듦을 외롭게 혼자 술로 해결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일종의 회피다. 그리고 당연히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 같다. 아버지의 권위에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경험이 내재화되어 사회생활 속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며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한 가지 자극에 대해 사람마다 대응하는 반응이 다르다. 기분 좋은 날 아침에 출근하며 동료를 만나 가볍게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건넨다. 어떤 친구는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할 것이고, 어떤 친구는 어깨를 쳤다며 기분 나쁘게 반응할 수도 있다. 반갑게 인사한 사람은 나와 관계가 좋은 사람이거나 그날 아침에 기분이 좋은 사람이다. 반면에 그 반대의 반응을 보인 사람은 나와 관계가 나쁘거나 그날 아침에 기분이 나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집을 나오며 배우자와 다투거나 해서 이미 기분이 나쁜 상태였기에 나의 터치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또는 나와 과거에 어떤 일로 갈등을 겪었던 사람이었기에 나의 인사가 반갑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의 행동은 동일하다. 하지만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는 나의 잘못일까? 아니면 그들의 잘못일까? 양자의 잘못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만든 하나의 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이 과거의 장난에 놀아나며 울고불고하며 살아간다.
틀림없이 우리는 ‘지금-여기’, 즉 현재에 살고 있다. 과거에 살 수도 없고, 미래 세상을 살 수도 없다. 우리가 존재하는 시점은 오직 ‘지금-여기’뿐이다. 몸은 과거나 미래에 살 수 없다. 과거에 산다면 죽은 목숨이고, 미래에 산다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살고 있는 꼴이다. 몸은 현재를 떠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 즉 생각과 감정은 대부분 과거나 미래를 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가끔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 글을 쓴 이후에 딸네 갈 생각을 하고 있다. 몸은 여기라는 공간에 있고, 지금 현재라는 시점에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 순간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모든 것이 ‘지금의 나’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과거나 미래의 귀신에 홀리며 살아가고 있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어떤 자극에 반응하거나 반응하려는 순간, ‘과거의 나’가 작동하거나 하려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지금의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짧은 순간을 포착하여 잘 활용할 수 있다면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고, 이런 선택은 ‘과거의 나’가 내린 선택이 아닌 새로운 나, 즉 ‘지금의 나’가 내린 선택이다. 바로 자신의 주인이 내린 선택이 된다. 이때야 비로소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정체성을 만들며 살아간다. 정체성이란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변하지 않는 성질을 의미한다. 성격, 태도, 행동 등이 정체성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얘기할 때, 그 사람은 매사 분명한 사람이다, 까다로운 사람이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그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정체성이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정체성의 근간은 과거의 경험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좋았던 경험은 쉽게 잊고 불편하고 부정적인 경험은 쌓아두는 경향이 있다. 이 부정적인 경험을 더 쌓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방어막을 만든 것이 정체성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려는 시도를 하면 거세게 몰아내고 저항한다. 이 정체성이라는 성이 바로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원동력이자 자신을 과거의 삶에 묶이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정체성이 필요할 때도 있다. 가정을 이루고 가족과 화목하게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이 필요하다. 이때의 정체성은 사회적 가면을 쓴 모습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정체성을 부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사회와 가정의 책무를 이룬 뒤에는 자신의 주인을 찾을 필요가 있을 때 정체성을 부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정체성을 부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과거의 노예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오직 자신만이 내릴 수 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를 지배하고 통제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
현대인의 병은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어서 생긴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몸은 ‘지금-여기’에 있으면서 마음은 과거나 미래에 가 있기에 늘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로 인해 질병이 발생한다고 한다. 과거나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는 쓸데없는 시도를 함으로써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어리석게 살아가고 병을 불러들인다. “몸 있는 곳에 마음을 두어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진리다. 마음공부는 바로 이것을 연습하기 위한 방법이다. 또한 내가 모르는 것이 나를 지배하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반복된 연습을 통해 반복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유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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