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을 하고 있는 친구가 영상을 보내왔다. 집 주변을 맨발로 천천히 걷고 있는 영상이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묵묵히 견뎌낸 그 친구는 어쩌면 지금이 가장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일 수도 있다. 치료를 받을 때는 치료가 병을 물리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며 힘든 치료를 견뎌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치료를 마친 지금 스스로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긍정적인 사고, 적극적인 활동, 그리고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가 보내온 영상은 바로 그 증거인 셈이 된다. 가끔 그의 행동을 보며 놀랄 때가 있다. 과연 나는 그런 상황에 그처럼 활동하고 행동하고 사고할 수 있을까? 아니다. 외부 활동을 더 줄이고 혼자 조용히 지내며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의 언행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고 그의 의지와 노력에 감탄하고 있다. 그가 보내온 영상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에 우리 모두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미래에 대한 불안 또는 두려움을 희망으로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자기 암시이자 자기 최면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면 매우 희망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쉽게 지치기도 하고 때로는 무기력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세 가지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인지삼제(認知三題)라고 한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세 가지를 뜻한다. 미래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생각에 매몰되면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희망의 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노력은 삶의 동력이 되고, 나아가 어떤 불안과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심리적 근육을 만들어낸다. 지금 그는 스스로 길고 깊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이미 터널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일상을 하루하루 평온하게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의 영상을 보며 지금 지구에서 발발하고 있는 전쟁이 떠오른다. 우크라니아와 가자 지구에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고통 속에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고 있는 삶의 고통은 사치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살아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음식도 부족하고, 거주지도 없고, 부모와 형제자매를 잃고 신음하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 상황 속에서 다만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심지어 구호품을 얻기 위해 달려가다 구호품에 맞아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지옥이 따로 없다. 그들의 유일한 삶의 목적은 아마 생존일 것이다. 어쩌면 목적이라는 단어조차 그들에게는 무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 억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TV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나름 짐작해서 느끼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고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 것이다. 그들에게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자신과의 보이지 않는 힘든 싸움을 당당하고 묵묵하게 하고 있는 친구의 영상 속 평화로운 발걸음을 보며 동시에 전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와 삶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며칠 전 길을 걸으며 한 친구가 자신의 느낀 점을 얘기했던 것이 떠오른다. 걷는 동작에 따라 어깨에 매달려있는 물통이 흔들리며 작은 소음을 끊임없이 내고 있어서 신경이 쓰였는데, 대로변을 달리는 차가 내는 더 큰 소음으로 인해 물통이 내는 소리를 잊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 어깨 통증으로 고생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평상시에 느꼈던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고 한다. 어깨 통증이 나은 후에 다시 허리 통증이 시작되었다는 얘기를 하며 일상의 고통도 이와 같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한다. 길을 걸으며 삶의 고통에 대한 통찰을 한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나의 삶을 돌아본다. 며칠간 사소한 일로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은 물론 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제법 힘들었다. 남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도 자신에게는 무척 큰 일로 다가온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내가 느낀 삶의 무게는 어쩌면 지금의 일상이 편안하다는 반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다른 큰 어려움이 있었다면 며칠간 느꼈던 힘든 일은 금방 사라졌거나, 어쩌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지나갔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삶 속에서 각자 한 두 가지 정도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어쩔 수 없는 중생의 삶이다. 그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 나의 큰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젯거리가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로는 그 당시에는 무척 힘들었던 일인데 시간이 지난 후 돌아보니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헛웃음을 짓기도 한다. 심지어 무슨 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상의 상황은, 우리가 힘들고 즐겁다고 느끼는 모든 상황, 전경과 배경으로 드러난다. 지금 힘들게 또는 즐겁게 느끼는 것이 전경에 떠오르고, 다른 일이 발생하면 지금의 상황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지금 발생한 일이 전경에 떠오른다. 전경과 배경이 계속해서 바뀌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경에 떠오른 어떤 상황도 평생 지속되지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자신과 주변 상황과 주변 인물이 끊임없이 변하는 ‘무상’이라는 삶의 이치 때문이다. 때로는 전경에 떠오른 상황이 계속해서 머물러 있기를 바라기도 하고, 때로는 빨리 사라지기를 간절하게 원하기도 한다. 모두 이기심 때문이다. 많은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다만 시간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인내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매 순간의 삶을 살아가며 시간을 인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억하고 있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데 내 뜻대로 만들려는 어리석은 노력을 하며 스스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득력(得力)이란 힘을 얻는 것이 아니고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지 않음으로써 축적되는 힘을 의미한다. 그간 참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고 살아왔는데도 아직도 그 어리석은 삶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끊임없는 윤회다. 득력의 유일한 방법은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주어진 일을 하는 것, 그것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에너지와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 방법이고, 이 방법으로 득력을 하게 되고, 득력은 일상 속 행복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삶은 저절로 평온한데 스스로 어리석음으로 인해 고통 속으로 자신을 끌고 간다. 득력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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