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아침에 서재를 정리하다 마라톤 기록증을 발견했다. 정작 필요해서 찾고 싶을 때는 찾지 못해 안달했는데, 우연히 발견하게 되니 그 기쁨이 더 크다. 가만히 기록증을 살펴본다. 2002년 11월 24일, SAKA 창립 17주년 기념 서울 하프 마라톤 대회. 하프 코스 남자, 2시간 2분 34초, 902등/1171명 참가. 45세 때 일이다. 그 당시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잠실 경기장에서 출발해서 강변을 따라 뛴 후 다시 잠실 경기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혼자 약 3개월간 마라톤 협회에 나와 있는 연습 스케줄에 따라 연습했다. 집 주변 개천가를 뛰었고, 가끔은 뒷산을 뛰어오르기도 했고, 집 주변 학교 운동장에서는 빨리 뛰다 천천히 뛰는 반복적인 연습도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그 당시의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한다.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더 많은 거 같다. 대회당일 한 가지만 자신과 약속했다. 걷지 않고 끝까지 뛴다. 하지만 몸에 이상이 오면 바로 그만둔다. 이 원칙만 갖고 참가해서 하프 코스를 완주했다.
혼자 온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마라톤 동호회 소속 사람들로 여러 명이 함께 와서 서로 구령을 외치며 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속에서 나는 홀로 뛰고 있었다. 처음에는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다 페이스를 놓칠 것 같다는 생각에 속도를 늦추고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뛰었다. 굳이 남의 속도를 따라갈 필요도 없고 순위를 따질 이유도 없는 혼자만의 레이스였다. 그리고 반환점을 돌아 다시 경기장에 들어올 때 마음속에서 벅찬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막상 경기장에 들어오고 나니 몸에 힘이 남아 한참 더 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 가족들이 환영해 주고 동호회 회원들이 반기는데 나는 홀로 쓸쓸하게 경기장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마라톤 복장을 갖출 필요도 없이 운동화만 신고, 바지는 긴 바지를 잘라서 반바지로 만들어 입었다. 주변을 보니 나 같은 복장을 갖추고 나온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 마라톤 전문 복장을 갖추고 멋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복장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완주 후 나를 맞이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조금 서운했다. 기록증이 집에 도착한 후 딸 방에 걸어주며 아빠가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사업을 정리하고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딸은 예중에 다니고 있어서 돈이 한참 필요할 때였다. 집은 은행에 담보로 들어가 있고, 할 일을 쉽게 찾지 못하는 시기였다.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이러다가 삶이 너무 피폐해질 것 같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불안이 심해서 공황 장애를 겪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당시 상태가 그러했다.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뭔가를 시도할 기력도 없고, 가만히 집에만 쳐 박혀 있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혈압이 높아져 응급실로 찾아갔고, 그 이후부터 혈압약 복용을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침에 눈 뜨고 일어나서 할 일이 없고,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주는 좌절감과 자신에 대한 절망감이었다. 돈이 없으니 사람을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되고, 먼저 누군가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하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북한산을 오르는 것이다. 그 당시 1년 정도 되는 기간에 족히 백번 넘게 올랐다. 일부러 힘든 코스를 올라가기도 했다. 북한산을 잘 모르면서도 사람들을 피해 다니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사회와 사람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 어느 날 산을 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져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그날 바로 담배를 아무런 금단 증상 없이 저절로 끊게 되었다. 체력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하며 마음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 할 일 없는 것에서 오를 산이 있고, 가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으로 조금씩 심리적 불안을 덜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해 왔던 같은 분야 회사에서 프리랜서 영업 제의가 들어왔다.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월급만 받아서는 은행 이자와 생활이 힘들어서 나 역시 프리랜서가 훨씬 더 좋았다. 영업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기에 인센티브를 받는 것이 월급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수입을 많이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약 3년간 오로지 일에만 매달리며 모든 부채를 갚게 되었다.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았고, 오직 일에만 집중했다. 술도 업무상 마시는 일 외에는 거의 마시지도 않았다. 지금도 아내는 그 당시가 내가 가장 잘 살았던 시기라고 얘기한다. 그 당시 회사 대표가 책 한 권 선물해 주며 같이 뛰어보자고 해서 읽어보았다.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니들이 마라톤을 알아”와 같은 재미있고 도발적인 제목이었다. 제목이 끌려 그 책을 읽고 바로 마라톤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다. 회사 대표는 며칠 연습하다 포기했다. 굳이 같이 뛸 필요도 없었다. 마라톤은 혼자 뛰는 경기다. 삶도 그렇다.
마라톤 기록증이 예전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도 이만큼 편안하게 풀어내는 것을 보니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아 편해진 것 같다. 아직도 과거의 힘든 기억에 매몰되어 있다면 이렇게 자기 노출을 하는 것이 불편하거나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기록증과 함께 간단한 글을 써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공유했다.
“책 정리를 하다 우연히 발견한 하프 마라톤 기록증. 22년 전 45세 때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뛰고 걷고 했던 시절의 추억. 기록증을 발견하니 괜히 반갑다. 22년 전의 나를 만난 느낌. 잘 살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과거의 ‘나’ 덕분에 지금의 ‘나’가 있다. 지금은 많이 편안해졌으니 이는 모두 과거의 ‘나’ 덕분이다. 수고 많았고 고맙다.”
지금이 ‘나’가 과거의 ‘나’에게 전하는 말이다. 수고 많았고 고맙다는 말을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다. 한 때는 누군가가 ‘그간 살아오느라 수고 많았다’라는 말을 해주면 괜히 눈물이 나기도 했다. 지금은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상대방에게도 같은 인사를 건넨다. 과거의 ‘나’를 많이 떠나보낸 것 같다. 지난 과거를 붙잡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과거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흘려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공상으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지금 충실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갖출 필요도 있다. 지금의 ‘나’는 동시에 과거의 ‘나’이자, 미래의 ‘나’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한순간에 공존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를 앞당겨 만들 수 없다. 오직 현재에서 과거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우리가 현재를 잘 살아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많이 편안해졌다. 마라톤을 한지 벌써 22년이 지났다. 지금은 예전만큼 뛸 수도 없다. 또 그렇게 뛸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걷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편안하다.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무상(無常)이다. 무상한 것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삶의 모든 일들이 그렇다. 붙잡지 말고 흘려보내면 된다. 굳이 후회할 필요는 없지만 성찰할 필요는 있다. 미래를 붙잡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미래는 붙잡을 수 없는 허상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만이 실상(實相)이다. 과거의 ‘나’에게 다시 한번 고맙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고마워! 네 덕분에 지금 편안하게 살고 있어. 이제 더 이상 너를 찾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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