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는 충청권 지역 소주인 ‘이제 우린’ 제조 업체 맥키스컴퍼니와 협력해 이달부터 생산되는 소주 50만 병에 보건복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 전화번호인 ‘129’가 적힌 라벨을 붙이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라벨에는 ‘힘들 땐 망설이지 말고 연락하세요’라는 제목 아래 ‘129 (보건복지상담센터 번호) 또는 가까운 읍, 면, 동 사무소에 꼭! 전화 또는 방문하세요’라는 안내도 있다. “ (20240306 조선일보)
어제 신문에 난 기사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나날이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셜 네트워크는 매우 다양하고 편리한 기술로 변화하고 있고 점점 더 진화하는데 비해, 정작 이 기술을 활용하는 주체인 우리는 점점 더 서로 간의 연결고리가 약해지거나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친구들 사이에 언제든 서로 편하게 전화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요즘은 전화하기 전에 카톡이나 다른 sns로 전화 통화 가능하냐고 물은 후 전화를 한다. 서로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하기보다 각자 핸드폰을 쳐다보며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오히려 기술과 기계문명의 발달은 사람이 기계나 기술에 의존하게 만들며 한쪽으로 편향된 지식만 습득하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의 자유가 그만큼 사라져 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내가 판단하고 선택해서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기계나 기술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며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기계문명의 발달이 사람들 간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거리를 두게 만들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요즘은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 또는 말하고 싶은 사람만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심지어 모임 내에서도 서로 대화를 하기보다는 각자 핸드폰만 열심히 보고 있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군중 속 고독이라는 말이 있듯, 촘촘한 소셜 네트워크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함께 살기보다는 각자 점점 더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참 안타까운 사실이다.
신문 기사를 보며 예전에 자살예방센터에 근무하던 동료 상담사에게 들은 얘기가 떠오른다. 한 노인이 센터로 늦은 밤에 전화를 해서 살고 싶지 않다고 얘기를 했고, 상담사는 그의 말에 집중하고 경청하며 말동무가 되자는 마음으로 차분히 대화를 이끌어갔다. 한참 전화 통화를 한 후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는 얘기를 하면서 대화는 종료되었다. 그 노인은 오래전에 우연히 자살예방센터를 방문해서 센터에서 선물로 준 볼펜 한 자루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볼펜이 있다는 사실도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날 밤 너무 외로워 죽기 전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었고, 전화할 사람이 없어서 볼펜에 쓰여있는 자살예방센터로 전화를 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사람 목소리가 그립고 사람이 그리웠으면 죽을 생각까지 한 것일까? 극심한 외로움과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힘든 시간을 극복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굳이 해결책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어설픈 노력은 도움보다는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냥 가만히 옆에 앉아서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다.
며칠 전 연락처가 없는 사람에게서 카톡이 왔다. 핸드폰에 문제가 생겨 새로 구입한 후 예전의 연락처가 모두 사라져 버려 가끔 겪는 일이다. 누군가 궁금해서 프로필 사진을 보니 약 4, 5년 전에 길에서 만난 사람이다. 그때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준 기억이 난다. 갑자기 연락이 와서 반갑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이 되기도 해서 바로 반갑게 카톡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저녁에 통화를 하며 그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역시 무척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었고, 통화를 할 사람이 없어서 고민 끝에 내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만약 그때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답을 하지 않았다면 또는 그의 카톡을 무시했다면 그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카톡에 쓴 글에서도 그 글을 쓴 사람의 기운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의 글에서 매우 미약한 힘이 느껴졌다. 간단한 문장을 쓰는데도 무척 고민하고 힘들게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껴졌다. 그에게 연락을 줘서 반갑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약 30분 이상 전화 통화를 했다. 조금은 밝아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도를 하고 다음에 만나 식사를 하자면 전화를 끊었다.
내게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좋은 경험은 아니고 부정적인 경험이다. 사업으로 인해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낼 때였다. 믿는 친구라 생각하고 연락해서 만나 호프집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힘든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얘기는 건성으로 듣고 눈과 귀는 내 뒤편에 있는 TV 야구 중계에 빠져있었다. 단 한순간도 나의 얘기를 듣고 있지 않았고, 듣고 싶지도 않았고, 전화를 해서 만나긴 했지만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500cc 한잔을 마시고 계산을 하고 서둘러 나왔다. 그 이후에도 가끔 그 친구를 볼 기회가 있었지만 그냥 알고 지내는 사람 정도로 대하고 있다. 소주병 안내문, 자살예방센터 전화상담, 그리고 최근에 받은 길동무의 전화가 예전의 내 기억을 상기시키며 전화 한 통, 말 한마디의 힘이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소주병에 상담센터 전화번호 라벨을 붙인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참 살기 힘든 외로운 세상이고, 사람들이 점점 더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 가끔 연락 오는 사람들의 전화를 어떻게 받았는지 자신을 반성해 본다. 힘든 순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잘 모른다는 이유로 또는 전화받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퉁명스럽게 받는다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과연 나는 사람들의 통화나 연락에 친절하게 답변하고 대응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사람에 따라 차별이 심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살갑게 대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불친절하고 차갑게 대하는 편이다. 상대방과 나와의 지난 과거 경험의 결과로 만들어진 상황이다. 오늘 만나면서도 과거의 상대방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만남은 네 가지 만남이 형성된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과거의 상대방과 지금의 상대방. 이 네 가지 상황 중 한 가지 상황 속에서 만나고 있다. 과거를 쉽게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가능하면 지금-여기의 모습으로 나와 상대방의 만남이 되길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단톡방에 매일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 퍼 온 글도 있고, 재미있는 동영상도 있고, 자신의 일상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단톡방에 올라온 글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고 가끔은 귀찮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 사람들이 카톡을 매일 보내는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외롭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몰라서 단톡방에 매일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아침에 만나면 “잘 잤어?” 또는 “아침 먹었어?”라는 별 의미 없는 인사치레를 하며 지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표현이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단톡방에 매일 글이 올라와도 최소한 ‘엄지 척’ 정도로 대답을 보낸다. 이것이 그에 대한 관심과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상대방이 매일 보낸 카톡은 무슨 내용이든 ‘잘 잤어?’라는 인사로 해석하고, 내가 보낸 ‘엄지 척’은 ‘밥 먹었어?’라고 해석하며 지내고 있다.
전화 한 통이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친절한 답변과 대응이 한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무관심하고 사소한 태도가 감당할 수 없는 매우 큰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비록 바쁘게 살지만 그럼에도 가끔 연락 오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하게 대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내는 것이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마음공부는 ‘익은 것을 설 익게 만들고, 설 익은 것은 익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작지만 큰 베풂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바로 친절한 전화통화, 말하기보다 말 들어주기, 그리고 소셜네트워크에 자신의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응대해 주기다. 일상 속 작은 정성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조금 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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