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인 화랑대역에서 한 사람이 화랑대역은 6호선인데, 4호선으로 공지되어 잠시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마치는 곳이 아차산역으로 공지가 되어 있는데, 광나루역까지 걷는다고 하니 조금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4호선으로 올렸던 기억도 없고, 아차산에서 마친다고 썼던 기억도 없다. 틀림없이 공지 작성 후 한 두 번 검토한 후에 올렸을 텐데 실수를 했다. 이런 실수는 일상에서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특히 서류를 검토할 때 중요한 내용을 빼먹는 경우도 있고, 단톡방에서 나누는 대화 내용 중 내게 필요한 내용만 기억해서 정작 중요한 내용은 기억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지하철역을 여러 번 확인하고, 또 출구 번호도 여러 번 확인한다. 약속 장소도 스크린 숏으로 캡처해서 갤러리에 저장한 후 보고 또 본다. 한 번에 기억 못 할 정도로 복잡한 약속 장소나 지하철역이 아닌데도 이런 일을 반복한다. 치매 검사를 받아 봐야 하나? 함께 걸었던 길동무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실수한 것을 모르면 치매지만, 실수를 알면 치매는 아니다.” 다행이다.
노화 증상의 한 가지가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예전 기억은 또렷해도 최근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침 식사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 누구와 어디서 만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휴대전화의 일정표를 확인해야만 한다. 하지만 기억력이 약해지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일까? 눈이 침침하고 귀가 조금 어두워지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일까?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이,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들리는 것만 듣는 것이 심신 건강에 더 좋을 수 있으니 굳이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고, 보고,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나이 들어가면서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요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휴대전화 관련 문의나 도움은 주로 딸에게 받는다. 낯선 곳을 가려면 괜히 걱정과 불안이 앞서서 누군가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경기 둘레길을 걸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괜히 불안하고 긴장된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있다. 집안일도 아내의 도움을 받고 있고, 외부에서 발생하는 업무도 후배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후배들이 할 일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무거운 짐을 드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중요한 결정도 가까운 지인의 도움을 받은 후 결정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도움을 받으며 가끔 늘 받기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늘 받기만 했다면 그들이 나를 그들 모임에 동참시켜 주었을까?라는 질문이 답변으로 돌아온다. 틀림없이 나도 뭔가 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다만 단기 기억력이 흐려져서 기억을 못 할 뿐이다. 너무 자기 합리화인가? 혼자 못하는 것을 너무 혼자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것보다 배우려고 노력하는 용기도 필요한 시점이다. 할 수 없고, 또 모른다는 것이 창피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고집부리는 것이 심술이 될 수도 있고, 아는 체하는 것이 비겁한 행동일 수도 있다.
정중히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을 낮추며 모르는 것을 배우는 자세가 나이 들어가면서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혼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면 저절로 자신을 낮추게 된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가르침을 요청하면 저절로 겸손하게 된다. 이런 삶의 자세가 오히려 노년의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태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태도로 살아가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도움 받을 용기를 갖게 될 정도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가르침을 받게 된다는 것 역시 축복받을 일이다. 다만 도움 받을 용기와 자신만의 편의를 위한 의존은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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