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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봉산 아침 산책

by 걷고 2023. 4. 1.

아파트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봉산 진입로가 있다. 봉산은 생태다리로 연결되어 앵봉산까지 이어진다. 서울 둘레길 구간인 이 코스는 자주 걷는 좋아하는 구간이다. 특히 봉산 일부 구간에는 인적이 드문 코스가 있어서 조용히 아침 산책을 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길이다. 인적이 드물어서 그런지 이 조용한 오솔길을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청각에 집중하며 걸으며 다양한 새소리를 듣는 재미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저절로 걷기 명상이 된다. 예전에는 이 길을 걸으며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던 적도 있다. 다시 그 소리를 듣고 싶은데 좀처럼 들려주지 않아 내심 서운하기도 하다.    

  

최근에 세 권의 책을 읽었다. ‘걷는 존재’라는 책은 52가지의 걷기에 관한 내용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추운 날 걷기. 호흡하며 걷기, 귀 기울이며 걷기, 비 내리는 날 걷기 등 다양한 상황, 다양한 길을 걷는 방법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자신의 상황과 날씨를 핑계로 걷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상황과 날씨에서도 꾸준히 걷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저자는 책상 앞에 앉아 근무하며 허리 통증과 쇠약함으로 고생하고 있다가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을 읽고 걷기 시작했다. 그 후 자신의 변화를 체감하며 걷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걷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걷기와 건강’이라는 주제로 책을 한 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료를 모으고 꾸준히 걷고 있는 경험이 더해지면 이 주제로 책 한 권 쓰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저자가 소개해 준 책 ‘나를 부르는 숲’을 연이어 읽었다.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3,360km를 걸은 저자의 경험담을 쓴 책이다. 친구 한 명과 같이 걸으며 갈등도 있었고, 또 서로 용기를 주며 걷기도 했다. 이 길은 잘 정비된 일반 트레일과는 매우 다른 것 같다. 찾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도 않고, 게다가 숙박시설이나 식당 등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길이다. 야생을 체험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이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의 저자가 참 대단하다고 느끼며 책을 읽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직 야생에 자신을 던질 용기는 나지 않는다. 이 길에 비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름다운 산책이다. 물론 순례가 주는 다른 의미도 있긴 하지만. 몸이 비대하고 걷기도 힘들어하는 친구와 갈등을 겪으며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며 자신을 많이 반성하기도 했다. 산티아고 걸을 때 걷는 속도가 맞지 않고 너무 힘들어하는 길동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헤어져 걸었다. 그 친구에게 빚을 진 심리적 부담을 아직도 갖고 있다. 좀 더 견디고 이해해주지 못한 것이 많이 후회된다.      

 

‘호흡의 기술’이라는 책은 호흡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다양한 호흡 전문가들을 만나고 수련한 경험을 기술한 책이다. 저자는 코골이와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던 중 임상 실험에 참여하며 호흡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이후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책은 다양한 호흡법을 소개하고 있다. 명상 시 입 다물고, 코로 호흡하며, 혀를 위 입천장에 대고 하는데, 이 방법이 호흡법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내용도 있어서 매우 반갑기도 했다. 명상 수행하며 왜 혀를 입천장으로 말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보지도 않았지만, 책을 읽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평상시에 코골이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는데, 잘 때 입을 벌리고 자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잘 때도 입을 다물고 자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입안의 건조함이 많이 약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내는 코골이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또 다른 호흡의 방법 중 하나는 들숨과 날숨을 천천히 느리게 하는 것이다. 명상을 하며 숨이 차분해지면 호흡은 저절로 느려지고 깊어진다. 일부러 호흡을 느리게 하거나 단전 주변으로 끌어내릴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며 느려지고 깊어진다.   

  

“숨을 들이쉴 때는 가득 흡입해야 한다. 숨이 한가득하면 그릇이 커진다. 그릇이 커지면 숨이 길어진다. 길어지면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차분히 안정된다. 안정되면 강하고 단단해진다. 강하고 단단하면 발아한다. 발아하면 자란다. 자라면 위로 물러난다. 위로 물러나면 정수리에 이른다. 하늘의 은밀한 힘은 위로 움직이고, 땅의 은밀한 힘은 아래로 움직인다. 이를 따르는 자는 살고, 반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 주나라 석조 비문 ('호흡의 기술' 서문)   

  

이 서문이 어렴풋이 이해된다. 아침 산책을 하며 입을 다물고 호흡에 집중하며 걷는다. 예전에는 코의 접점에 집중하며 걸었다면, 이제는 접점보다 코롤 하는 들숨날숨 자체에 집중하며 걷는다. 책에 이 방법으로 걸으면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다고 해서 따르고 있다. 일부러 입 다물고 코로 호흡하며 걷는다. 그리고 청각에 집중하며 걷다가 다시 호흡에 집중하며 걷는다. 일상 속 걸을 때에도 이 방법으로 호흡하며 걷는다. 지하철에서 이동할 때도 호흡에 집중하며 걷는다. 굳이 별도로 명상 시간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입 다물고 코로 호흡만 하면 된다. 그리고 호흡을 놓칠 때 다시 호흡으로 돌아오면 된다. 좌선을 할 때도 예전에는 화두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화두보다 호흡에 집중한다. 화두가 잘 들리지도 않는데 힘들게 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그냥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가끔 좌복에 앉을 때 화두가 주는 부담이 느껴져 앉기가 부담스러울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호흡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게 하게 되면서 호흡을 차분히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온다. 차분히 앉으면 한 시간은 아주 편안하게 지나간다.      

 

아침 산책을 하며 호흡에 집중하거나 청각에 집중하며 걷는 이 시간이 너무 충만하고 고맙다. 아침 식사 후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으면 몸도 마음도 가볍다. 요즘 봉산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한창이다.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고, 사진을 다시 보는 재미도 좋다. 아침 시간에는 명상을 하는 것이 좋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고, 명상은 앉아서 해야만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 정해진 시간에 엄격하게 수행해야만 한다는 편견도 갖고 있었다. 이제는 이러한 편견에서  자유로워졌다. 아니 자유롭고 싶다. 아침 산책은 좋은 동반자다. 그리고 산책이 주는 삶의 변화가 있다. 변화는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는 변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변하고, 산책을 하며 변하고, 글을 쓰며 변하고, 사람들을 만나 얘기하며 변한다. 틀에 얽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침 산책이 틀을 깨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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