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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둘레길

<경기 둘레길 52, 53코스 후기> 한계와 자기 효능감

by 걷고 2023. 2. 4.

52코스와 53코스를 연이어 걷는 날이다. 총거리가 약 33km이다. 최근에 조금 무리해서 걸었고 며칠 전에는 한라산도 다녀와서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이 거리를 하루에 걷는 것이 내게는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길 안내자로서 공지를 올렸고, 그 공지에 대한 책임을 느끼기에 함부로 변경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완주에 대한 부담을 느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이 된다. 완주를 못 하더라도 오후 4시 이전에 마치는 것으로 결정하고 그 사실을 출발 전에 통보하려고 했다. 참석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에너지와 기필코 완주하겠다는 전의가 느껴진다. 그냥 공지 내용대로 진행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를 찾을 수 없다.    

 

경기 둘레길을 꾸준히 걷고 있는 참석자들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20km 이상 걸은 날 너무 힘들었다는 길동무는 자신에게 화가 나서 혼자 열심히 운동도 하고 걸었다. 그 이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석하며 체력을 쌓아나가고 있다. 오늘 32km를 걸으면서도 지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르막길만 나타나면 힘들다고 투덜대면서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 길동무는 혼자 계단 오르기 연습을 하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오르막길에서도 웃으며 대화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무릎 수술을 한 길동무는 걷기가 가장 적합한 운동이라는 의사의 처방을 받고 꾸준히 걷고 있다. 처음 경기둘레길에 참석할 때에는 힘든 모습도 여러 번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에너지가 넘쳐 오히려 속도를 줄이며 걸으라고 부탁을 해야 할 지경이다. 오늘은 선두와 후미를 오가며 길 안내와 길동무들을 챙기는 여유까지 보이며 걷는다.  

    

길 안내자로서 걷기 전 완주를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을 한 자신이 조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시도하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불안함을 느끼며 피해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다. 정면 도전을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길동무들의 강한 에너지 덕분에 비겁함을 물리치고 과감히 도전할 수 있었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쓸데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을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지도 못한 채 도전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주 작은 도전에도 쉽게 움츠러들고 자신의 능력을 채 펼쳐 보이기도 전에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과 능력을 사장시켰을 것이다.      

 

‘한계’에 대한 생각을 하며 걷는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을까?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기에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는 말을 한다면 그는 이미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한계’를 알기 위해서는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며 ‘한계’를 직접 체험해야만 한다. 일단 그 ‘한계’를 체험한 사람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짜내어 시도를 계속하게 된다. 역설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한계’를 느낀 사람은 반드시 그 ‘한계’를 깨부수고 극복할 수밖에 없다. 비록 순간의 좌절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 ‘한계’를 넘어선다.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한계’의 의미는 포기를 의미한다. ‘한계’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스스로 포기한 후 ‘한계’를 느꼈다고 얘기한다. ‘한계’의 답답함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갖고 있다면 그 ‘한계’는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자신의 ‘한계’에 마주친다. 그만 걷고 싶은 마음도 있고,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다른 핑계를 대고 중간에 이탈할 수도 있고, 더 이상 걷지 않기 위한 다양한 이유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의 ‘한계’라고 느껴질 때, 한발 더 앞으로 내딛는다면 그 ‘한계’의 벽은 저절로 무너진다. 일단 벽이 허물어지면 자신의 한계는 이전보다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 ‘한계’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인식의 틀’에 불과하다.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장시키고 있다. ‘인식의 틀’을 부수는 작업이 바로 자신의 ‘한계’를 부수는 작업이다. 길을 걸으며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넓히며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확인하고 키워나갈 수 있다. 오늘 같이 32km에 달하는 길을 단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걸었던 길동무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부수고 뛰어넘은 사람들이다.    

  

‘자기 효능감’은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반두라 (Albert Bandura)가 주장한 개념으로 어떤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평가나 판단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은 어떤 도전에도 기꺼이 응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고, 잘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고, 그 한계를 극복한 후, 한계를 넓혀나간다. 오늘 길을 걸은 사람들이 한껏 고조된 이유도 바로 오늘의 성취감을 통해 앞으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행복한 성취감이 표정과 목소리, 몸짓에서 느껴질 때 길 안내자로서 보람도 느껴진다. 그래서 그들과 다시 걸을 다음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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