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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성불하세요

by 걷고 2025. 5. 5.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면서 동시에 어린이날이다. 부처님 마음과 어린이 마음은 같다. 손주들과 함께 지내며 이런 사실을 직접 깨닫게 되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손녀가 울면서 오길래 안아주며 물었다. 

     

“왜 울어?”

“엄마가 잘못했는데, 내가 잘못했다고 해서 속 상해.”

“엄마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약속을 안 지켜. 사주기로 한 것을 안 사주고.”

“그래서, 속 상했구나. 엄마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할아버지, 그런 말 하지 마, 더 속상해. 엄마 편만 들고.”

“아, 그래, 미안. 앞으로는 안 그럴게.”    

 

조금 더 안아주니 마음이 풀린 듯 품에서 빠져나가더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엄마랑 웃고 떠들며 얘기한다. 이미 이전의 상황은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고, 더 이상 마음에 남아 있지도 않고, 감정은 이미 충분히 속상한 것을 표출하며 사라졌다. 그 상황을 곱씹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만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생각이 그 사람이다.”라는 말을 한다.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가가 그 사람을 정의한다는 의미다. 생각은 과거의 경험, 미래에 대한 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모두 연결되어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생각이 언제나 동일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한다. 그런 면에서 “생각이 바로 사람이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 사람과 얘기하는 순간,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다. 하지만, 하루 뒤에 만날 때 그 사람의 생각이 변했다면, 이미 과거의 그는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거울과 같고, 화이트보드와 같다. 거울은 비치는 물체가 사라지면 거울에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네 마음이 사라진 영상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우리 마음은 화이트보드와 같다. 아무것도 없는 흰색 유리 칠판이다. 낙서를 하면 낙서장이 되고, 그림을 그리면 캔버스가 된다. 아무리 낙서를 많이 하고, 그림을 여러 번 그려도 지워버리면 흰 여백만 남는다. 다만 마음속에 낙서와 그림의 영상을 지니고 살아갈 뿐이다.      

 

마음은 본래 공(空)하다. 여기에는 어떤 티끌조차 묻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네 생각과 감정, 경험과 상황 등이 본래 마음에 낙서를 하고 색칠을 하며 그 낙서와 그림이 자신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한다. 그 생각만 사라진다면 이미 부처다. 거울에 묻은 때를 탓할 이유도 없다. 아무리 때가 묻어도 거울은 거울이다. 이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다. 다만 묻은 때를 거울이라고 착각하며 본래의 거울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거울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고, 화이트보드 위의 낙서를 지우기만 한다면 우리는 모두 부처가 된다.   

 

몸을 지닌 사람이기에 먹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다양한 사람과 상황을 만나며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는 거울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영상에 불과할 뿐이고, 우리의 본성은 절대로 이런 상황에 의해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다. 부처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 부처가 된 후 우리에게 한평생 가르침을 펴신 것이 바로 이 내용이다. 불성, 본성, 본래면목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단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었고, 변할 수도 없다. 불교는 결국 마음을 보는 공부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먼지와 그림 뒤에 가려진 거울과 화이트보드를 보게끔 만들어주는 공부다. 지금 내고 보고 있는 나의 모습과 세상은 거울인가? 아니면 거울에 묻어있는 먼지인가? 낙서나 그림인가? 아니면 화이트보드인가? 거울과 화이트보드를 볼 수 있다면 세상은 나의 것이 된다. 여기서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나’이다.   

 

천수경에 나온 경구가 떠오른다. 부처님 오신 날 모든 사람들이 이 경구를 통해 모든 업장을 소멸하고 어린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 부처를 이루시길 발원한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는 자성이 없으니 마음을 따라 일어나고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忘)  마음이 만약 멸하면 죄 역시 다하네

죄망심멸양구공(罪忘心滅兩俱空)  죄가 다하고 마음이 멸하여 양쪽이 다 공하니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謂眞懺悔)  이것을 이름하여 진정한 참회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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