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복지 차원에서 단순한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 채용을 위한 면접을 진행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단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오시는 분들도 있다. 반면 심심해서 소일거리 삼아 지원하는 분들도 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지원자는 많다 보니 경쟁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은퇴 후 인생 2막 준비를 위해 지원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분들에게 인생 2막은 무엇일까? 오랜 기간 전문성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그 전문성을 활용하며 인생 2막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 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인생 2막을 멋지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물론 개인마다 상황이 다르니 일률적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건강하고, 전문성을 지니고 있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 이 분야에 지원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요즘 백세 시대라고 한다. 2022년 통계에 의하면 기대수명은 여성은 85.6세, 남성은 79.9세다. 이에 비해 평균 퇴직 연령은 49.3세라고 한다. 퇴직 후 최소한 30년 이상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니 퇴직한 후에도 마냥 놀고 지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오랜 기간 근무해 온 사회적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건강을 지닌 사람들이 앞으로 평생 살아가야 할 인생 2막에 대한 좀 더 진지한 고민을 한다면 멋진 인생 2막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퇴직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이다. 1,2년 정도 푹 쉬며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얘기를 해도 불안감에 쉬지도 못하고 일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많은 좌절감을 겪는다.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존재감도 사라지고, 돈을 아껴야 된다는 생각으로 인해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어들거나 피하게 되고,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삶의 질은 악화일로를 겪게 된다. 퇴직 전의 자신의 당당한 모습과 전문가로서의 긍지는 사라지고 때로는 수모를 견디고 근무하며 자존감에도 큰 상처를 입는다. 평생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운 좋게 취업이 된다고 해도 수년 내로 회사를 나오게 될 것이고 또다시 구직활동을 하는 끊임없는 ‘취업-퇴직-구직-취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윤회의 고통과 같다. 인생 2막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시기다. 그간 책무를 위해 살아왔다면 인생 2막은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 글을 읽는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모르고 힘든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얘기하는 헛소리로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인생 2막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또 찾기 위해 치열한 고통과 힘든 순간을 겪어내며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안분지족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퇴직 후 연금 통지서를 받는다. 그 순간 앞으로 TV나 보고 죽음을 기다리라는 명령서로 해석한다. 그즈음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아내도 죽음을 맞이한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카가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고, 조카에게 집을 맡기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약 4,00km를 걷는다. 성당에 도착한 후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아직 젊고 건강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롭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전문성도 갖고 있다. 그런 내가 왜 할 일이 없겠는가?” 그리고 ‘쇠이유’라는 단체를 만들어 청소년 범법자들이 감옥에 가는 대신 단체에서 정해준 멘토와 함께 3,000km를 걸으면 형이 면제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글은 나에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뭔가 특별나거나 큰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함께 걸을 수 있는 ‘걷고의 걷기학교’ 밴드를 만들어 함께 걷고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고, 퇴직 걱정 없이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다. 걷기 힘든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도와줄 수 있고, 길벗을 통해 배울 수 있고, 자연을 걸으며 치유받을 수 있고, 글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심신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굳이 어떤 큰 일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하고 싶은 일부터 찾은 다음 그 일을 하다 보면 저절로 길이 열리고 보인다.
인생 2막을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한 권 있다. 장 지오노의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매일 100개의 상수리 열매를 심으며 평생 살아온 사람의 얘기다. 그 주인공 덕분에 황무지는 숲으로 변했고, 그 숲에는 사람들이 찾아와 마을을 이룬다. 그 주민들은 누가 이 숲을 만들었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한 해에 나무 만 그루가 죽었다. 그는 다시 심으면 되지 하면서 수종을 바꿔 심는다. 그에게 삶은 매일 나무를 심는 일이다. 처음에는 사소해 보여도, 그분 덕분에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작은 일을 꾸준히 하면 그것이 큰일이 된다. 다만 큰 일을 하기 위해 작은 일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이고, 할 만큼의 일을 꾸준히 하면 된다. 숲 속을 매일 걷다 보면 오솔길이 생기듯이. 불안 속에 ‘취업-퇴직-구직’의 끊임없는 반복을 할 것이냐, 아니면 편안함 속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 것인가는 각자의 상황과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다.
우리는 걷는다. 행복하기 위해서 걷는 것이 아니고 걸으면 행복해서 걷는다. 어떤 목적을 갖고 걷는 것이 아니다. 걷기는 비움이다. 걸으며 스트레스를 비우고, 마음의 욕심을 비우고, 사람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비우고, 병을 비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비운 곳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 채워진다. 건강을 채우기 위해, 행복을 채우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고, 비우다 보면 저절로 채워진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비움의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비우면 저절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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