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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에관하여

감정의 수명

by 걷고 2024. 7. 7.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 Jill Bolte Taylor)에 의하면 감정의 수명은 1분 30초이며, 그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감정이 계속 살아있게 하려면 생각이 필요하다고 한다. 생각이 감정의 먹이가 된다. 생각은 다른 생각을 연속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이어지는 생각은 발생한 감정을 더 고조시킨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은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 1분 30초만 참을 수 있다면 또는 견딜 수 있다면 패턴화 된 잘못된 판단과 행동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

외부 환경 자극에 대한 반응(reaction) 은 대부분 자동반사적이다. 누군가가 욕을 하거나 비난하면 바로 욕을 하거나 비난으로 응수한다. 이런 응수를 한 후에 마음이 편해진다면 좋은 방식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방과 똑같은 언행을 한 후에 남는 것은 불편한 감정 밖에 없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나쁜 감정이 남게 되고, 그 감정은 다시 자신을 공격한다. 반드시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을까? 왜 상대방은 내게 그렇게 했을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등등 수많은 질문과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감정과 생각은 더욱 악화되어 자신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 감정은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상대방이 비슷한 언행을 하거나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예전의 기억까지 불러오며 더 강한 반응을 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은 더욱 강화되어 상대방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결국 자신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reaction)은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다. 즉 자신이 인지하기 전에 이미 상황은 발생한다. 외부 자극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일반적으로 투쟁-회피(fight or flight) 반응이라고 한다.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싸우거나, 아니면 도망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선택하는 반응의 기반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반복된 행동은 점점 더 강화되어 패턴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보고 그에 따라 판단하게 된다. 동료가 반가워서 아침 인사로 어깨를 툭 쳤을 때 같이 어깨를 치며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시비를 거냐며 싸울 수도 있다. 또는 그날 아침 자신의 기분에 따라 상반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의도와 상관없는 과거의 경험이나 그 순간 자신의 기분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이날의 경험을 다시 마음 깊은 곳에 쌓아놓고,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과거의 기억과 경험에 의해서 해석하며 반응한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를 살고 있는 꼴이다.

뇌과학자의 말대로 1분 30초만 참아낼 수 있다면, 또는 1분 30초 동안만이라도 어떤 결정과 판단을 하지 않고 잠시 멈출 수 있다면 이런 부정적인 결과를 막을 수 있다. 지금의 현실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소환하거나 과거 속에서 살지 말고, ‘지금-여기’에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이미 지나간 과거에 가 있거나, 오지도 않는 미래에 가 있다면 ‘지금-여기’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여기’를 생생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호흡과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 시 바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춘 후 호흡을 하거나 몸의 감각을 느끼면 된다. 호흡과 감각은 오직 ‘지금-여기’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들이마시고 내쉬며 호흡을 느끼면서 ‘지금-여기’로 돌아오면 된다. 호흡은 우리와 단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다. 떨어지는 순간 죽음이다. 신체에서 느껴지는 감각 역시 ‘지금-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다. 과거의 감각이나 미래의 감각을 느낄 수 없다. 생각은 과거나 미래에 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호흡이나 감각은 오직 ‘지금-여기’에서만 존재한다.

‘지금-여기’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알아차림이 우선되어야 한다. 외부 자극이 올 때 빨리 알아차리고,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인 반응을 하려고 할 때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는 잠시 멈춰서 호흡을 두세 번 하거나, 그때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면 된다. 이 매우 짧은 시간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반복적인 연습만 필요할 뿐이다. 호흡이나 감각에 집중하며 ‘지금-여기’로 올 수 있다면 지금까지 패턴화 된 행동 양식을 취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짧은 시간의 간격을 통해 우리는 늘 해오던 방식에서 변화된 방식을 택할 수 있다. 패턴은 과거가 결정하는 방식이고, 새로운 대안은 지금의 자신이 내린 결정이다. 과거라는 유령이 나를 끌고 가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고, 지금의 자신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다. 오른팔을 자주 쓰는 오른손잡이는 오른팔의 힘이 왼쪽보다 세다. 일부러 왼쪽 팔을 사용하는 연습을 통해서 양팔 힘의 균형을 유지할 수도 있고,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로 바뀔 수도 있다. 신체의 근육처럼 마음에도 마음근육이 있다. 마음근육도 사용하면 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긍정적인 마음근육을 연습하면 할수록 긍정적인 힘이 더욱 커지게 된다.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반응 대신 그 반응하려는 마음, 생각, 행동을 빨리 알아차리고 호흡과 감각을 통해 예전의 방식과는 다른 ‘지금-여기’에서 내린 선택을 하며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비로소 자신과 자신의 삶이 합일이 되는 중요한 순간이다.

과거가 악령이 되어 계속해서 따라다니며 우리를 괴롭힌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다. 아쉬움과 미련과 후회가 있더라고 굳이 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 흘려보내야 한다. 잡고 있다고 변화시킬 수도 없는 일이고, 아무리 방법을 찾아도 이미 지난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다. 과거가 떠오를 때 그 과거를 지우거나, 없애려 하거나, 후회할 필요 없이, 그냥 부드럽게 자신의 호흡으로 돌아오면 된다. 이 반복적인 연습이 바로 호흡 명상이다. 명상은 과거와 미래에 매이지 않고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습관, 즉 마음근육을 만들어 준다. 이 습관이 자신을 변화시킨다. 마찬가지로 호흡명상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불필요한 걱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연습을 통해 부정적인 습관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습관을 만들어나가면 우리의 삶이 편안해진다. 깨달음 같은 큰 목적 갖고 명상을 수행하는 수행자도 있지만, 내게 명상은 삶의 평온함을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단에 불과하지 목적이 아니다. 1분 30초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앉아서 명상하고, 걸으며 명상하며 호흡과 감각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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