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죽음 명상'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후에 가끔 주어진 상황을 죽음 명상으로 맞이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죽음은 일반적으로 입에 올리기 꺼려한다. 죽음을 너무 부정적인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죽은 후 다시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얘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해 들을 기회가 없었다. 임사 체험 얘기를 글에서 읽은 적은 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죽음을 염두에 두고 생활을 한다면 삶은 매우 풍요롭고 평온해질 수 있다. 누구나 맞이하고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 모든 존재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줄 수도 있겠지만, 죽음을 대하는 생각을 바꾸면 우리의 삶을 매우 평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죽음을 대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일상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죽음에 대한 시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만들어 준다.
오늘은 경기도에 업무가 있어서 아침 일찍 서둘러 움직인다. 6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후 늘 하듯 가방에 짐을 꾸린다. 사실 들고 다닐 짐은 거의 없다. 관계 기관에서 필요한 모든 서류와 심지어는 필기도구까지 챙겨 주기에 업무에 필요한 물건을 따로 챙길 일도 없다. 그런데도 늘 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 이유는 그냥 늘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다. 가방 내용물을 곰곰이 살펴보니 참 별거 없다. 필통, 책 한 권, 이어폰, 명함과 카드 지갑, 휴대전화, 핸드크림, 포스트잇 정도다. 과연 이런 물건들이 필요한가라는 고민을 잠시 한 후, 카드지갑과 휴대전화만 들고 가방 없이 출발한다. 가방이 없으니 들고 다닐 물건도 없고, 몸도 가볍고, 기분도 가벼워진다. 가방은 짐이고 삶의 무게다. 늘 가방 없이 다니고 싶어 하면서도 불안함 때문인지, 불필요한 준비성 때문인지 늘 들고 다닌다. 오늘 가방 없이 다녀오니 가방은 무언가를 채우는 물건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가방이 있기에 짐이 늘어난다. 그리고 가방 없이 다니니 짐은 저절로 줄어든다. 그렇다. 삶의 짐은 내려놓으면 가볍고, 들고 다니면 무겁다.
늘 책 한 권은 가방에 넣고 다닌다. 경기도에 업무 차 갈 때는 두 시간 이상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하기에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편이다. 오늘 책과 가방을 놓고 가니 굳이 책을 볼 일도 없고,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해 본다. 잠을 잔 건지, 호흡에 집중한 건지 구별이 되지는 않지만,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잠을 잔 것이 맞다. 호흡에 한 시간 이상 집중하면 시간이 오늘처럼 금방 지나가지 않는다. 아무튼 눈을 감고 코의 접촉점을 느끼며 잠을 자고 나니 눈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간 왜 그렇게 책을 읽으려 기를 썼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굳이 뭘 더 채우려 했을까? 60대 중반에 뭔가를 더 채우려는 자신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추하게 느껴진다. 돈, 명예, 지식, 사회적 위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심, 사랑, 전문가적 능력 등 이루지도 못할 일을 억지로 채우려 노력하고 있는 자신이 안쓰럽다. 굳이 그것들이 필요한가? 있으면 좋은 것도 있지만, 없어도 사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냥 지금 이대로 살아도 큰 불편함 없이 살 수 있고, 오히려 채우려는 욕심이 없으니 마음이 더욱 편안해질 수 있다. 가방도 욕심도 모두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가방이 없으니 짐이 없어지고, 욕심이 없어지니 채울 일이 없다. 그러니 저절로 편안해진다.
가방도 없이 작은 명함 지갑 겸 카드 지갑은 양복 안 주머니에 넣고, 휴대전화는 코드 안 주머니에 넣으니 손도 몸도 가볍다. 일찍 출발했으니 서두를 필요도 없이 천천히 유유자적하게 걷는다. 아파트 주변에 핀 꽃이 눈에 들어오고, 화단 근처에서 화들짝 놀라 뛰는 고양이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하늘도 내 마음처럼 맑고 가볍다. 심호흡을 하며 공기를 들여 마신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아파트 주변 포장된 도로를 걸으며 이 길이 마지막 걷는 길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며 걸으니 보도블록과 길과 주변 풍경이 너무 생생하게 들어오고 고맙게 다가온다. 늘 아무런 생각 없이 오가던 길인데 오늘은 새롭게 느껴진다. 천천히 걸으니 주변이 눈과 마음에 들어온다.
4호선 중앙역에서 하차한 후 업무가 있는 곳까지 빨리 걸으면 15분 정도 걸린다. 일찍 서두르니 아직도 30분 이상 여유 시간이 있어서 천천히 걷는다. 천천히 걸으며 지하철 안에서 잠에 빠진 몸을 깨운다. 같은 거리도 빨리 걸으면 힘들고, 천천히 걸으면 편안하다. 산에 오를 때도 오르막을 빨리 오르려 하면 할수록 힘이 더 들고, 천천히 걷다 중간에 서서 뒤 돌아보며 경치 감상도 하고 걸으면 편안하게 정상에 도착한다. 천천히 걸으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다. 가로수가 아름다운 길이 나를 반긴다. 이 길은 예전에 눈이 올 때 설경이 멋진 길이어서 사진을 찍었던 곳이다. 오늘은 막 피어난 파릇파릇한 나뭇잎이 활기를 뿜어내고 있다. 가던 길에서 조금 벗어나긴 했지만, 일부러 그 길까지 다가가서 사진 한 컷 찍는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걷는다. 길가에 지나치는 사람들 표정도 살펴본다. 같은 직장 동료로 보이는 젊은 친구들의 밝은 목소리와 모습이 상큼하다. 회의실에 도착해서 평상시보다 조금 밝은 모습으로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들도 반갑게 맞이해 준다. 고맙고 기분이 좋다.
업무 마치고 돌아오며 오늘 하루를 복기해 본다. 자주 오던 곳이고 늘 다니던 길인데 오늘은 새롭다. 가방이 없으니 짐이 없고, 따라서 몸도 마음도 가볍다. 서두르지 않으니 편안하다. 야생성의 회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자신이 지고 있는 짐을 줄이고 내려놓는 일이다. 뭔가를 채우려는 생각 대신 비우는 연습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는 일이다. 상황에 따라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일분일초를 다투는 일은 거의 없다. 그날 할 일을 그날 중으로 하면 된다. 다만 조금 부지런하고 천천히 여유롭게 움직이면 된다. 서두름과 부지런함은 다르다. 천천히 걷고 할 일을 하고 가끔 주변을 살피면 평상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삶은 풍요로워진다. 짐을 비우면 평화와 평온이 채워진다. 지식을 비우면 겸손하게 되고, 명예를 비우면 자신을 낮추게 된다. 욕심을 비우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랑을 채우려는 욕심을 비우면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된다.
오전에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다시 눈을 감고 호흡을 느껴본다. 평상시 전철 안에서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아내에게 연락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코다리찜으로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둘이 손잡고 걸어서 집에 돌아오며 손자들 얘기, 딸과 사위 얘기, 다음 주에 교체할 집안 싱크대 얘기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집에 와서 커피 한잔씩 마시며 각자 할 일을 한다. 나는 낮잠을 자고 아내는 지인 만나러 외출한다. 야생성의 회복은 일상의 회복이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이 아니고 비우고 여유로운 삶을 되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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