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생긴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이 있다.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나 두려움이다. 늘 하던 일상대로 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안주하는 것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있지만, 그럼에도 마음속 한 구석에는 자꾸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나이를 자꾸 의식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소심해지기도 하고 안일함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물론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한 도전을 하는 성격도 아니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안주하는 것 역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
길을 걷는 것도 늘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을 선호하고, 오르막길보다는 평지를 선호하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힘들고 불편한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함만을 추구하고 안주하려고 한다. 서울 둘레길을 걷기 학교에서 진행하며 일주일에 한 번 산길을 걷기도 하지만, 그 외에는 집 뒷산 오르는 것도 귀찮아지고 있다. 그래서 편안한 공원을 배회하는 편이다. 몸은 편안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다소 불편하다. 과감한 도전은 아닐지언정 조금은 힘든 길을 걷는 것도 좋을 텐데 영 쉽게 마음을 낼 수가 없다. 자꾸 자신 안으로 움츠려 들고 안주하려고 한다. 가끔 안내 산악회를 이용해서 처음 가는 길을 가보자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꺼림칙스럽다.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사고나 불편함을 인내하기 싫어서이다.
어딘가 여행을 갈 경우나 지인들 모임도 거의 주관하지 않는다. 여행 일정을 짜거나 숙소나 식당을 예약하는 것이 불편하고 귀찮기 때문이다. 검색하는 것을 잘 못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일 자체를 하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기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곧 잘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또 모임에서도 나이 든 편이 되어 내가 주도할 필요 없이 따라다니고 있다. 나이 든 사람들 중에도 적극적으로 모임을 주선하고 리더 역할을 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태생적으로 리더보다는 따르는 소극적인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이끄는 리더의 태도가 강압적이거나 자신의 주장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그 모임과 그 리더와는 거리를 두는 까다롭고 수동적인 사람이다.
나이를 의식하곤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꾸 나이를 의식하게 된다. 홀로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굳이 남과 자주 많이 어울리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자꾸 자신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굳이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지금 인연 맺고 지내는 몇몇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일상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은 나름 꾸준히 하고 있다.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할 일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 듯 그냥 일과처럼 하는 일이다. 걷고, 글 쓰고, 상담하고, 명상하고, 최근에 생긴 취미인 음악 감상 등이 내가 하는 일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고,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고,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 일도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죽이기에는 나의 삶과 시간이 너무 아까워 꾸준히 하는 일이다. 이 일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이 들면 도전 정신은 많이 사그라지고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고집은 더욱 완고해지고 기존의 틀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노인의 심리상태다. 굳이 이런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을 역행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경향성을 따르며 지금 나의 상황과 태도를 합리화시키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살 만큼 살았기에 죽음에 대한 걱정은 젊은 사람보다는 조금 덜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시기에 와 있다. 그렇다고 무모한 도전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후 안주하려는 모습에서 조금은 탈피하는 것도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조금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지치고 무기력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에 다시 좌복에 앉기 시작한 일이다. 그동안 밖으로 돌아다니며 들뜬 마음을 조금 추스를 때가 온 것 같다. 좌복에 앉아 요동치는 마음을 살펴보며 서서히 안정시켜 가고 있다. 마음의 평온과 행복은 결국 외부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간 살아오면서 얻은 큰 소득이다. 이제 차분히 명상하고 일상을 꾸준히 충실하게 보내며 하루하루 살아가면 된다. 굳이 뭔가를 성취하려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면 된다. 못 난 모습도 받아들이고 조금 잘하는 면도 스스로 인정하며 입체적으로 자신을 수용하며 살아가면 된다. 그럼에도 뭔가가 조금 아쉽고 허전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직도 뭔가를 조금 더 하고 싶다는 충동이 살아있다.
어제 ‘금요 서울 둘레길 마음 챙김 걷기’를 진행하는 데 한 친구가 코리아둘레길 걷는 것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고 한다. 폐활량이 일반 사람보다 적어서 높은 산을 오르기는 어렵지만 꾸준히 걸으며 건강을 관리하고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 친구 얘기를 들으며 그간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코리아 둘레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하고 싶은 일이었고 일부 걷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사유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완전한 포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늘 하지 못한 숙제를 안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지내온 것 같다. 코리아 둘레길 완보는 꼭 하고 싶은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갈증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고, 그 불편함은 심리적 위축감과 자신 속으로 철수하려는 마음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그 친구 얘기를 들으며 코리아 둘레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일련의 상황 때문에 위에 열거한 심리적 위축감이 더욱 드러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코리아 둘레길을 어느 길부터 걸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아내에게 한 달에 2박 3일 걷는 것을 허락받은 상태다. 고맙다. 2박 3일간 약 60km 정도 걸을 수 있다. 남파랑길은 12개 코스를 이미 걸었다. 이 길을 이어서 걷는 것도 좋지만 함께 걷고 싶은 길동무들이 있다면 코스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파랑길의 총거리는 약 750km, 한 달에 2박 3일간 걸으면 1년 정도면 완보할 수 있는 거리다. 우선 해파랑길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숙소 예약과 교통편 예약, 현지 교통편과 식당 등 알아볼 일도 많다. 동참하는 길동무들과 함께 상의하고 도우며 즐겁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 시작할지는 모르겠지만, 금년 상반기에는 시작하고 싶다. 만약 참석자가 없다면 혼자 걸어도 괜찮다. 혼자 걸어도 좋고, 함께 걸어도 좋다. 길 위에서 길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 보자.
들뜬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명상을 한다. 좌선도 하지만 길을 걸으며 행선, 즉 걷기 명상을 한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내적, 외적 요인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다. 결국 걷기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지금까지 제법 많을 길을 걸었다. 그냥 길이 좋아서 걸었다. 때로는 힘들어서 걸었고, 걸으며 활력을 되찾기도 했다. 이제 몸과 마음의 근육은 내 삶을 지탱할 만큼은 생긴 것 같다. 지금부터 걷기는 자유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심신의 근육을 활용하고 좌선과 행선인 걷기 명상을 통해 나를 구속하고 있는 모든 매듭을 풀어버리고 참 자유인이 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 보자. 길동무들의 동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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