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중독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리움은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고, 중독은 ‘술이나 마약 따위를 지나치게 복용한 결과, 그것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병적 상태’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경기 둘레길을 오랜만에 걸으며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이 길에 중독이 되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 길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 길 위에만 서면, 또 걸으면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몸은 춤을 추고, 마음은 즐거움이 가득할까?
약 한 달간 경기 둘레길을 쉰 후에 어제부터 경기 둘레길 구간 중 마지막 구간인 경기 숲길을 시작했다. 출발지에 도착해서 경기 둘레길 공기를 가슴 가득 들여 마신다. 그리고 웃음 짓는다. 발은 어쩔 줄 몰라하며 자꾸 앞으로 나가려고 한다. 길동무들 얼굴에는 기대감과 즐거움으로 미소 가득하고 몸은 밝고 강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길은 어디에도 있다. 하지만 유독 경기 둘레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과 마음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저절로 들썩인다. 마치 야생 동물들이 우리에 갇혀 있다가 탈출해서 자연으로 돌아갈 때 느끼는 환희처럼. 동물원에 갇혀 있는 동물들을 보며 인간이 동물들에게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도권을 빼앗아 버리고, 야생 본능을 죽이고, 그 댓가로 먹이만 넣어주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모습대로 또 운명대로 살아가면 행복한 삶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갇힌 동물들처럼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모습과 다르게 살고 싶어 하고 운명을 거스르며 살아가려고 애쓴다. 행복을 위해 시도하는 많은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더욱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수많은 시도를 한다. 때로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어 순간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시도의 결과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좌절을 느끼며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시도를 하며 끝없이 행복을 추구한다. 인간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다만 각자 지닌 행복의 가치와 기준이 다를 뿐이다.
길동무들은 모두 걷기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걷기 시작하며 걷기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다. 동물이 우리에 갇혀 답답한 삶을 살듯이, 우리도 일상이라는 우리에 갇혀 답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때로는 일상이 행복으로 가득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행복한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행복은 곧 불편함이나 불행으로 변하고, 다시 행복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한다. 걷기가 그 방편 중 하나다. 답답함에서 해방되기 위해, 또는 삶의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걷는다. 걷기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숭고하고 위대한 행동이다. 우리 안의 동물이 불쌍한 이유 중 하나는 삶의 주도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 역시 그 동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주도권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스스로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갈망한다. 이 말은 스스로 주인으로 살아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걷기’에 나오는 과정을 한번 정리해 본다. 동호회에 가입한다. 가입 후 일정 기간 참석하지는 못한 채 카페만 들여다본다. 그런 후 용기 내어 참석 시도를 해 본다. 일정을 확인 후 참석 여부에 관한 고민을 한다. 참석을 결정한 후에 카페 공지에 댓글을 단다. 다른 참석자들은 누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출발일 하루 이틀 전부터 배낭을 꾸린다. 간식을 무엇을 들고 갈지, 점심 식사는 어떻게 준비해 갈지 고민한다. 입고 갈 옷도 챙기고, 선크림, 모자, 썬 글라스 등 필요 용품도 챙긴다. 혹시 뒤처질까 두려워 연습 삼아 주변 산이나 길을 걸어본다. 당일 아침 일찍 기상해서 씻고 나온다. 집안에 남아있는 식구들을 위해 음식도 미리 준비해 놓는다. 잠이 채 깨기도 전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결지까지 간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오직 스스로 결정하고 해야만 하는 과정이다. 누가 나오라고 강요를 하지도 않았고,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스스로 결정해서 불편함을 무릅쓰고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나온다. 만약 이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거나 누군가가 강제적으로 시킨다면 즐겁고 기쁘게 나올 수 있을까? 자신의 주도권을 갖고 하는 행동이기에 즐겁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우리는 주도권을 빼앗겨 버린 상태에서 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자주 마주치게 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다.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또는 죽지 못해 삶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상황들과 마주치며 자신의 의지대로 돌려놓기 위해 끊임없는 싸움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성취감에 기뻐할 때도 있고, 때로는 좌절감으로 인해 무기력에 빠질 경우도 있다. 무기력은 스스로 주도권을 놓아버린 결과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 기제다.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주도권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걷기’가 바로 주도권을 되찾아 오는 가장 건강하고 쉬운 방법이다. 걷기에 나온 과정들은 또 걷는 일은 오직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만 가능한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경기 둘레길을 일 년 이상 거의 매주 걷다 보니 이제는 이 길에 중독이 되었고 이 길이 그리워진다. 몸은 이미 이 길에 익숙해져 있다. 한 달간 걷지 못하니 몸살이 난다. 다시 걸으니 살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한다. 그간 못 만났던 길동무들과의 만남도 걷기의 큰 즐거움이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즐겁다. 우리는 걸으며 자신을 되찾고 자유를 되찾는다. 걷지 못해 즐겁지 않다는 것은 중독의 결과이고, 이 길을 보면 반갑고 즐거운 것을 그리움의 결과다.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중독에 빠지고 더욱더 그리움에 빠진다. 경기 둘레길을 걷는 것은 애인을 만나는 것과 같다. 애인을 못 보면 괴롭고 보면 볼수록 더욱 그리워지듯, 경기 둘레길을 못 걸으면 괴롭고, 걸으면 걸을수록 더욱 그리워진다. 경기 둘레길은 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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