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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둘레길

자유를 되찾기 위한 걷기

by 걷고 2023. 4. 15.

비 소식이 있는 날이다. 코스도 짧고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길이다. 늘 북적이듯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경기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오늘 참석자 수는 리딩 포함해서 네 명. 리딩을 하면서 참석자 수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왔는데, 단 네 명이서 걷게 되니 마음이 다소 묘하다. 혹시 리딩으로서 무슨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또는 참석하지 않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등등 여러 생각들이 일어난다. 참석자 숫자에 무심한 체하면서 혹시 마음 깊은 곳에는 늘 신경을 쓰고 지내온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애써 날씨 탓이려니, 거리가 짧아서, 지루한 길이어서, 등등 여러 변명 거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헛웃음을 짓는다. 그런 변명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오히려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양가감정이다. 아무튼 기분이 묘하다.   

 

출발 지점인 복정역에 도착할 즈음 오메주 님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어디쯤 왔는지 물었고, 거의 도착했다고 답을 보냈다. 출구에 도착하니 오메주님께서 기다리고 있다가 선물 보따리를 전해 주신다. 오늘 길을 잘 걷고 중간에 간식을 나눠 드시라고 파이 상자를 전해 주셨다. 댁이 복정역 근처이고 마침 오늘 출발 지점이 복정역이어서 나오셨다고 한다. 고마웠다. 문자를 받았을 때 순간 당황했었다. 혹시 댓글도 없이 갑자기 참석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이었다. 함께 갈 수 있는 한 좌석의 여유는 있었지만, 신경이 쓰였다. 기우였다. 그분의 순수한 마음을 혼자 상상하고 오해하며 고민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오메주님에게 미안했다. 게다가 선물 보따리까지 받고 나니 더욱 고맙고 미안했다. 한 가지 다시 깨달았다. 사람들의 생각과 의도를 나의 상상만으로 곡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실례가 되는지를. 누군가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시각과 경험으로 판단하며 수많은 실수와 오해를 한다. 그리고 그 오해가 더 큰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오늘 나의 어리석은 모습을 느끼며 다시 반성을 한다. 오메주님, 순간 오해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덕분에 큰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상황을 제 멋대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타르트 정말 맛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길을 진행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인원이 적어서 차량 예약을 취소했고,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 중이었다. 경기 둘레길 처음 나오시는 뮤직님께서 기꺼이 차량 지원을 해 주셨다. 덕분에 오붓한 소풍을 즐길 수 있었다. 뮤직님 차에 탄 후 차 안에서 인사를 나누며 출발했다. 걷기 마당 규칙 위반이다. 걷기 직전에 둥글게 모여 인사를 나누는 것이 걷기 마당 인사법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꺼이 규칙 위반을 감수한다. 일탈이 주는 쾌감을 느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산정호수 도착 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뮤직님은 어젯밤에 모처에서 차박을 하고 오셨다고 한다. 놀랍다. 적은 연세가 아닌데 독립과 자유를 위해 차박을 감행하신 지 3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 용기가 부럽다. 그리고 그 실천력이 놀랍다.      

산정호수에 도착한 후 커피숍에 들어가 차를 주문한 후 오메주님께서 선물해 주신 타르트와 피치님이 준비해 온 빵을 먹고 마시며 편안하고 여유로운 출발을 준비한다. 고맙다. 차량 지원 덕분에 일찍 도착했고, 여유로운 시간 덕분에 찻집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커피숍 창가에 내리는 빗방울과 저 멀리 보이는 안갯속에 감추어진 산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본다. 만약 늘 하듯 차량을 이용해서 열 명 이상이 왔다면 이런 여유를 갖기가 어려울 것이다. 적은 인원 덕분에 만들어진 단출함이다. 커피숍에서 비 맞을 준비를 한 후 걷기 시작한다. 빗방울이 거세진다. 차로를 따라 걷는데 빗속에서 질주하는 차량들이 많아 조심스럽다. 오르막길을 조용히 걷는다. 비는 점점 더 많이 내린다. 그래도 비가 고맙다. 최근에 발생한 산불이나 농민들이 가뭄으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비 내리는 모습이 차분하고 예쁘다. 바람 없이 내리는 비는 신부의 발걸음처럼 고요하고 예쁘다. 오르막을 오르다 뒤돌아본다. 저 멀리 산에 신선들이 살고 계신지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듯 하얀 비안개가 가득하다. 뮤직님은 무릉도원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선계라고 얘기했다. 같은 말이다. 무릉도원에는 신선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가 걷는 모습을 보면 우리를 신선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 눈에 우리는 안갯속을 마치 구름 타고 달리듯 걷고 있으니.       

 

오르막이 끝나며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피치님이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은 삶을 성숙하게 만들어준다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이다. 삶에 오르막만 있다면 거만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내리막만 있다면 이 역시 무기력에 빠질 수도 있다. 내리막에서 오르막의 거만함을 다스리고 내리막의 끝 지점에서 오르막의 희망을 볼 수 있다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길은 삶과 같다. 인생살이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이 둘이 함께 어우러진 춤이 인생이다. 그러니 오르막에 있다고 자랑할 것도 못 되고, 내리막에 있다고 좌절에 빠질 이유도 없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이 둘 중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것도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오르막을 위해서는 내리막이 필요하고, 내리막을 위해서는 오르막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오르막만을 추구한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오르막을 위해서 내리막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스탬프를 찍는다. 이제는 스탬프 찍는 행동이 매우 엄숙한 의식이 되었다. 한 코스를 마무리했다는 의식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끝은 다시 시작이 된다. 함께 빗속을 걸은 길동무들은 강한 동지 의식을 느끼며 서로를 격려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포천 이동에 도착했으니 그냥 갈 수는 없다. 이 지방이 자랑하는 음식을 먹는 것도 걷는 즐거움이다. 이동갈비와 함께 술 한 잔 마시며 서로 얘기를 듣고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 강한 동지애로 뭉친 길동무들은 자신의 얘기를 꺼내는 데 걸림이 없다. 강한 신뢰가 만들어 준 귀한 자리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통해 길동무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이 하는 언행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따라서 불필요한 오해나 판단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갈등이 그만큼 사라지는 것이다. 뮤직님은 차박을 하고 걸으면서 자유를 찾아간다고 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걷는 이유도 바로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이다. 그 자유 중 한 가지가 바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나 해석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오늘 만난 길동무들 덕분에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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