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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경기 둘레길 36코스 후기> 코스 거꾸로 걷기

by 걷고 2022. 9. 25.

바람이 불고 하늘은 청명하고 날씨는 시원하고 평야에는 황금물결이 넘실거립니다. 길가의 이름 모를 꽃과 풀들도 수줍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며 우리의 발걸음을 잡습니다. 사진 한 장 찍으며 걔네들에게 반갑게 인사합니다. 그리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날씨와 주변의 들꽃들이 우리를 웃게 만듭니다. 함께 걷는 길동무들도 수다를 떨며 흥에 겨워 웃습니다. 길은 우리를 웃게 만듭니다. 길가의 모든 생명체들, 길을 걷는 길동무들, 강 따라 걷는 길, 도로가 우리를 웃게 만듭니다. 웃음은 모든 질병의 명약입니다. 힘든 일상을 견디고 토요일을 애타게 기다리며 나와서 함께 걷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찾고 그 힘으로 다시 한 주를 삽니다. 숨을 쉴 수 있고, 마음의 여유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걷기입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고, 지니고 있는 희로애락이 다르지만, 길은 또 걷기는 부처님의 법음이 되어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줍니다. 덕분에 힘을 얻고, 밝은 에너지로 한 주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36코스를 걷는 날입니다. 도리 마을에서 현수 1리 버스 정류장까지 10.6km를 걷는 날입니다. 차량 섭외를 맡아 주시는 비단님께서 기사님에게 36코스 마치는 지점을 알려 주신 덕분에 우리는 이 코스를 거꾸로 걷습니다. 같은 길도 걷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집니다. 카이스트 총장님은 TV를 거꾸로 놓고 본다고 합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합니다. 법정 스님도 다리를 벌리고 머리를 숙여 다리 밑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따라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산도 하늘도 거꾸로 보면 아래로 내려옵니다. 위와 아래가 바뀌고 앞이 뒤가 됩니다. 일상의 틀을 깨는 것은 매우 통쾌한 일입니다. 길을 거꾸로 걷는 일도 틀을 깨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 면에서 비단님의 실수는 어쩌면 의도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지키고 살아온 일상과 관념의 틀을 부수라는 매우 친절한 가르침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비단님은 우리의 스승님이 되고, 거꾸로 걷는 길 역시 우리의 스승님이 됩니다. 세상만사 스승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다만 눈 밝고 귀 밝은 사람들만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스승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눈을 떠도 장님이요, 귀가 열려 있어도 귀머거리입니다. 자신의 세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집, 독선, 탐욕, 어리석음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틀을 벗어버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연습을 꾸준히 하면 조금씩 틀 밖의 세상이 보입니다. ‘작은 자기’를 벗어던지며 좀 더 ‘큰 자기’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줄(啐)’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쪼는 것을 의미하고, ‘탁(啄)“은 어미 닭이 알 밖에서 쪼며 병아리가 태어나기 위해 돕는 동작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병아리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 줄탁동시‘는 특히 선불교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방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행위도 줄탁동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홀로 걸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니 우리 자신이 ’ 줄‘이 되고 길과 걷기가 ’탁‘이 됩니다. 함께 걸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이 ’ 줄‘이 되고, 걷기와 타인의 모습이 ’ 탁이 됩니다. 자신의 틀을 깨야만 비로소 조금씩 세상을 보는 혜안이 천천히 조금씩 열리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이미 세상이 변한 것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 누구나 빨리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상황은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욱 우리를 옥죄어옵니다.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힘과 에너지를 아껴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면 훨씬 더 쉽게 벗어나서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는 데 아껴 두었던 힘과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거꾸로 걷기를 한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이 길을 원래 코스대로 시작 지점에서 마치는 지점까지 걸었다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거꾸로 걷기 시작한 길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양쪽에 푸르고 누런 논밭을 보여 여유롭게 시작합니다. 마냥 좋습니다. 길도 좋고, 주변 경치도 아름답고, 길동무들 만나 신나고, 시원한 바람은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창공은 티 없이 살라고 하고, 구름은 무심하게 떠다니고, 우리는 철없는 아이들이 되어 흥겹게 걷습니다. 산을 하나 넘어갑니다. 무척 가파른 산길입니다. 이 길을 걸어 내려왔다면 아마 여러 명이 넘어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정상에 오른 후부터 이어지는 편안한 능선과 그늘과 햇빛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길을 걷습니다. 야트막한 산임에도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하산한 후 강을 보며 걷습니다. 다리 아래 짐을 풀고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점심 식사를 합니다. 다리 밑에는 거지들만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걷기를 좋아하는 방랑자들이 준비해온 음식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입니다. 다리 밑 그늘에 앉아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맛난 식사를 즐깁니다.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눈과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맑은 허공과 시원한 바람, 여유롭게 흐르는 강을 따라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길을 걷는 재미는 걸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 길을 이런 멋진 길동무들과 이런 좋은 날씨에 걷는 일은 평생 단 한 번밖에 올 수 없는 매우 귀한 순간입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입니다. 오늘 걸었던 길동무들과 이 길을 다음에 다시 걷는다고 하더라도 오늘 느낀 이런 느낌을 똑같이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이 고맙고, 만난 사람들이 더욱 귀하고 고맙습니다. 가끔 길을 걸으며 바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일어나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사라져 버린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감정과 생각들이 사라진다면 죽은 사람이겠지만, 살아 있으면서도 감정과 생각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감정과 생각에 끌려 다니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이 바로 수처작주(隨處作主)입니다. ‘작은 자기’를 깨어 부수고 ‘큰 자기’로 거듭나는 노력의 결과로 얻게 되는 경지입니다.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것의 ‘자신’은 ‘작은 자기’를 버린 후 나타나는 ‘큰 자기’를 의미합니다.      

36코스 시작점으로 가까이 가면서 마지막 산을 하나 더 넘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산길입니다. 이 길 역시 깊은 산에 들어온 느낌을 줍니다. 조금 오른 후에 천천히 길고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제법 긴 내리막길입니다. 이 길을 거꾸로, 원래 계획대로 시작점부터 오르기 시작했다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비단님 덕분에 어렵고 긴 오르막을 여유롭게 내려가는 내리막길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비단님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36코스 시작점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다시 차를 타고 오늘 시작했던 36코스 끝나는 지점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37코스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5km를 걸었습니다. 끝나는 지점에서 차를 타고 여유롭게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쯤 마치고 서울 도착하니 오후 5시 반이 조금 지났습니다. 먼저 귀가하실 분들은 가시고, 남은 8명의 길동무들은 헤어짐이 아쉬워 뒤풀이에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을 만들어준 길동무들, 자연,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다음 주 토요일이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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