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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경기 평화 누리길을 마무리하며

by 걷고 2022. 8. 31.

경기 둘레길은 경기도 외곽 전역 약 2000리 길을 연결한 도보 여행길이다. 15개 시, 군의 총 860km에 달하는 길을 하나로 연결해서 조성한 길이다. 총 네 권역에 60개 코스가 있다.

 

           - 경기 평화누리길: 김포 1 ~ 연천 11코스

           - 경기 숲길: 연천 12 ~ 양평 31코스

           - 경기 물길: 여주 32 ~ 안성 43코스

           - 경기 갯길: 평택 44 ~ 김포 60코스     

 

경기 둘레길을 걷기 시작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걷고 싶어서 시작했다. 혼자 걷기에는 자신이 없고 겁도 나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걷고 싶었다. 길 찾는데 소질이 전혀 없는 길치가 이 길을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걷기 동호회인 ‘걷기 마당’에 공지를 올려서 걷고 싶은 분들을 모아 함께 걷는 것이다. 많은 길 중에 왜 경기 둘레길을 선택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도 길 찾는데 재주가 없어서 860km에 달하는 긴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꾸준히 걷는 것이 편해서 그렇게 결정한 것 같다. 한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음 길이 시작되니, 굳이 길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길을 안내하고 이끄는 리더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공지를 올리고, 후기만 쓰면 된다. 가끔 사진도 찍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머지 일은 참석자분들이 자발적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너무나 완벽하고 충실하게 해 주신다. 리더가 길을 연 것이 아니다. 길을 공지하면 참석자 분들이 함께 길을 열어 주신다. 길을 가다 놓치거나 다른 길로 접어들면 누군가가 방향을 바로 잡아주신다. 갈래 길에서 망설이고 헤매면 누군가가 이 길로 가라고 가르쳐준다. 힘들면 쉬었다 가라고 하고, 배고프면 맛있는 식당을 찾아주신다. 물이 부족하면 힘들게 들고 온 시원한 생수병을 전해주고, 힘들다고 하면 말동무를 해 주시며 보조를 맞춰 같이 걸어 주신다. 리더로서 부족한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리더이고 참석자이기에 함께 걷기만 하면 된다고 용기를 주신다. 리더 덕분에 길동무들이 걷는 것이 아니고, 길동무들 덕분에 리더가 걷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었지만, 참석자 모든 분들은 애초에 주객에 대한 분별심이 없는 도인들이다.    

  

올 5월 13일에 경기 둘레길을 시작했다. 1코스인 대명항에서 성동검문소까지 걸었다. 그때의 설렘과 긴장감과 약간의 불안감이 지금도 선명하다. 함께 걷는 길동무들이 있는데도 리더로서 역할을 잘 해내야만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잘 해내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이미 잘 해날 자질과 재능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한 후 길동무들과 협의하여 결정하고 움직이고 있다. 금요일에 걷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매주 토요일로 변경해서 걷고 있고, 평화 누리길 11개 코스를 완주했다. 걸었던 거리가 안내 책자 자료에 의하면 총 186km이고, 중간에 헤매면서 추가로 걸었던 거리까지 고려하면 족히 200km 이상 걸은 것 같다. 함께 걸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올여름은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경기 둘레길과 함께 보냈다. 뜨거운 태양과 푹푹 찌는 무더위 속을 걸었다. 소낙비를 맞고 걸었고, 뜨거운 지열을 느끼며 걷기도 했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걷기도 했고, 산길을 따라 걷기도 했다. 철도망을 따라 걷기도 했고, 강변을 따라 걷기도 했다. 벌레들이 우리의 침범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격하는 산길도 걸었고, 뱀과 개구리가 놀라서 도망가는 숲길도 걸었다. 장마 기간에도 운 좋게 비를 피해 가며 걷기도 했다. 물론 무더위 속에 지쳐서 걷는데 단비를 만난 즐거움에 환호성을 부른 적도 있다. 소낙비로 변해 그 환호성은 금방 원성으로 변했지만. 새옹지마가 무엇인지,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자연이 내린 선물일 것이다.      

 

경기 둘레길은 길 걷는 것 자체보다 시작점으로 가고, 도착지점에서 돌아오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 물론 검색을 열심히 해서 시간을 잘 맞추면 다닐 수는 있다. 교통편 자료를 카페에 올려주신 고마운 분도 계신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약 10명의 인원이 동시에 움직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교통과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꾸준히 참석하시는 분들의 중의를 모아 기사님께서 운전해 주시는 차량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가장 저렴한 비용에 안전하게 운전해 주실 기사님과 상태가 좋은 차량을 검색해서 매주 계약을 하고, 그 차를 이용해서 이동하고 편안하게 걷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걷기에 집중하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걸으며 저절로 개선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차량 예약을 하고 나면 참석 인원이 신경 쓰인다. 혹시나 참석 인원이 부족해서 차량 비용을 채우지 못하면 누군가가 그 비용을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다행스럽게 아직 그런 상황이 오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때 가서 방법을 찾으면 된다. 사서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오해 소지를 줄이기 위해 <경기 둘레길 렌터카 운영 안내문>을 만들어 카페에 업로드했다. 매주 참석 인원과 모인 참가비, 그리고 차량 비용 등을 올려서 경비 사용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걷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어느새 큰일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시작을 하면 누군가가 나서서 도움을 주신다. 꾸준히 참석하시며 자원해서 역할을 맡아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비단님께서 매주 차량 예약과 비용 정산을 위해 애써주신다. 꽃가루님께서 길잡이 역할을 해주신다. 다니엘1님께서 안전을 위한 체조와 교통 통제 등을 해 주신다. 경험이 많으신 도니님과 히란야님께서 길을 이끌며 도움을 주신다. 참석자들은 정성스럽게 준비해 오신 간식을 나누어주며 길동무 간의 우정을 돈독하게 만들고 분위기를 밝고 힘차게 만들어 주신다. 참석자 모든 분들이 챔피언들이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평화 누리길을 완주할 수 있었고, 앞으로 남은 경기 둘레길을 모두 완주할 것이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해 상황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서는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다. 시도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에 시도를 하면 된다. 상황에 대한 대처를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실제 현장은 머릿속 상황과는 다르다. 일단 집을 나서서 걷고, 길에서 만나는 상황은 길 위에서 방법을 찾으면 된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다. 고민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또한 잘못된 시도라면 물러설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시도한 모든 일들이 계획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고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어리석음이다. 길이 아니면 돌아가면 된다. 또는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평화누리길이 가르쳐 준 귀한 가르침이다.     

 

평화누리길은 안타까움과 한(恨)이 서린 길이다. 길을 걷는 내내 철조망과 임진강을 보며 걷는다. 남과 북의 분단을 절감하며 걷는 길이다. 넘나들지 못하게 설치된 철조망은 이산가족의 가슴을 찢어 놓는다. 그 상처로 인한 서러움과 한의 눈물은 강물이 되어 흐른다. 언제 이 철조망이 걷혀서 평화를 누리며 걸을 수 있을지, 그리고 한스러움을 안고 흐르는 강물은 환희의 강물이 될지 요원하다. 그런 면에서 ‘평화 누리길’은 ‘평화 기원길’로 변경되어야 한다.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자. 언젠가는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다.  

    

코스를 완주한 후 막걸리 한잔으로 건배를 하고 케이크에 촛불을 하나 밝히며 자축 파티를 했다. ‘경기 숲길’ 중 일부 구간이 이번 홍수로 인해 보수 작업 중이라고 해서 이번 주부터 ‘경기 물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길이 끝나는 날 촛불 두 개를 밝히며 또  한 번의 자축 파티를 할 것이다. 그때는 좀 더 많은 분들이 동참해서 축하해 주시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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