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을 나선다. 6시 30분경 집에서 출발해서 집 근처 개천가를 걷는다. 사람들이 많이 걷고 있다.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스케이트 보드 타는 사람, 음악 틀어놓고 함께 춤추는 사람, 출근하는 사람 등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아침을 열고 있다. 아침의 활기가 느껴진다. 일어나자마자 모자를 눌러쓰고 반바지와 반팔 티를 입고 걷는다. 모자를 쓴 이유는 까치집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이 창피해 서가 아니고, 그런 모습으로 인해 사람들이 아침부터 불쾌하게 느낄 것 같아서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막 자고 일어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핸드폰을 들고 나왔다. 아침 일찍부터 연락 올 일이 없는데도 손에 쥐고 있지 않거나 소지하지 않으면 괜히 불안하다. 나의 편의를 위한 핸드폰이 어느새 나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 종이 주인을 부리고 있다. 늘 챙겨야 한다는 것은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다. 굳이 쓸 일이 없는데도 들고 다녀야만 하는 족쇄이자 중독 물건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아침부터 카톡이 울리기 시작한다. 이른 시간에 카톡을 보내올 사람은 없다. 확인해 보니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단톡방에서 다음 주 모임 장소를 정하기 위한 얘기가 오가고 있다. 다들 잠이 없는지 아침 일찍부터 서로 안부를 물으며 장소 결정을 위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함께 본지 오래되었다.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누지만 얼굴을 보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아침부터 친구들의 카톡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
조금 후에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선후배들과의 단톡방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네 명이 모이는데 그중 세 명의 생일이 8월이다. 다음 주에 모이기로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모임이 10월 초로 연기되었다. 서로의 생일을 카톡으로 축하한다.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한 선배는 아들에게 받은 선물 자랑과 미역국 먹는 사진을 보냈다. 나는 내 얼굴이 인쇄된 케이크를 무참하게 자르는 손녀의 사진을 올렸다. 손녀에게는 내 사진은 의미가 없고, 오직 케이크 먹는 일만이 중요하다. 그 사진은 오랜 기간 추억에 남을 것이다. 딸네가 준비한 얼굴이 인쇄된 케이크도 관심의 표현이고, 함께 손뼉 치고 노래 부르며 케이크 절단식을 하는 것도 관심의 표현이다. 고맙다.
아침 일찍 산책을 하며 기분 좋은 카톡으로 서로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전화 한 통화가 한 사람을 살렸던 얘기가 떠오른다. 한 노인이 죽기 직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어서 고민하다 우연히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발견한다. 자살 예방센터 전화번호가 인쇄된 볼펜이다. 노인은 그곳으로 전화를 했고, 상담사의 따뜻한 목소리와 센터의 적절한 대응으로 한 노인을 살릴 수 있었다.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이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다. 관심을 갖고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연락이고 소통이다. 틀림없이 소통 수단은 많이 발전했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음에도 연락을 취하거나 만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는 연결망이 촘촘하게 구축되어 있지만, 정작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연결망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외로움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고독사를 하는 경우도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최근에 뉴스에 나온 세 모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빚 독촉이 두려워 주거지 이전 사실을 어디에도 알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부에서도 복지 혜택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세 분의 명복을 기원한다. 시에서도 장례식을 치르며 혼령을 위로한다고 한다. 살아서 받지 못하신 위로를 지금이라도 받으시길 기원한다. 만약 이 분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도움이 정부의 복지혜택과 연결될 수 있었다면 아마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는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대해 아주 사소한 관심을 갖거나 간단한 대화라도 나눌 수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소한 관심이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라는 글이 기억난다. 우산을 들어주는 것은 일시적인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함께 비를 맞으며 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관심을 갖고 옆에 같이 서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주는 희망이 있다. 그 희망의 힘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사람들이 절망을 느끼고 포기를 할 때는 대부분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에 있을 때다. 앞으로 더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곳도 없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용기 내어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딘가에 아주 작은 점 같은 빛이 보이거나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다면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게다가 옆에 누군가가 함께 있고 관심과 격려를 해 준다면 앞으로 걸어갈 수 있다. 끝이 보인다는, 언젠가는 지금 상활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 희망의 시작은 고통을 함께 느끼며 옆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서 시작된다. 굳이 무엇을 도와줄 필요조차도 없다. 그냥 옆에 머물러 주고 얘기만 들어주어도 된다. 자기를 이해해주고, 자신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재기할 힘을 얻을 수 있다. 비록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을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관심은 단순한 관심이 아니다. 관심은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생명줄이다.
생일은 스스로 알리지 않아도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먼저 알려준다. 물론 비공개로 하면 알려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방법을 몰라 그냥 둔다. 덕분에 여러분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았다. 40여 년 전 만났던 한 선배는 미국에서 안부 인사를 전해주셨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후배들도 안부 인사를 보내왔다. SNS를 통해서 안면부지의 분들에게도 축하 인사를 받았다. 예전에는 SNS틀 통한 소통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소통의 방법만 바뀌었을 뿐이지 소통은 어떤 방식으로든 매우 중요하다. 비록 글로 소통을 하는 SNS이지만, 글에는 에너지와 느낌이 살아있다. 진심을 담아 쓰는 한 줄의 힘과 따뜻함은 겉으로 멋지게 포장된 한 페이지의 글보다 그 힘이 더 크다. 진심이 담기지 않는 글을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표현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글의 내용이나 길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글을 쓰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연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 SNS로 소통을 하고 있는지 자신부터 점검해 봐야겠다. 글 한 줄에 관심과 사랑을 담아야 한다. 관심은 생명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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