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둘레길 11코스 후기> 우리는 오늘도 걷는다

합정역에 모여 기사님이 운전해주시는 렌터카를 타고 기분 좋게 출발했다. 모든 참석자들이 약속시간인 오전 10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지 않고 출발할 수 있었다. 경기 둘레길을 완주 위해 참석자들과 상의한 후에 내린 결정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고, 오늘이 그 차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첫날이다. 차량 뒤에 배낭을 싣고 가벼운 몸과 기분으로 출발했다. 차 안의 분위기는 밝고 흥겹고 활기차다. 하지만 이런 호사는 오늘 있을 고통을 위한 사전 예보이자 유혹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어쩌면 고통을 더 강하게 느끼게 만들기 위한 계획된 연출이었는지도 모른다. 냉방이 잘 된 차 안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경기 둘레길 11코스 시작 지점인 군남 홍수 조절지로 향했다. 도착 후 차 앞에서 서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걷기 마친 후의 사진이 없어서 전후를 비교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출발점에서 스탬프를 찍고 출발했다. 초입부터 바로 산길이다. 오르막이 심하거나 거친 산이 아닌 동네 뒷산 같은 느낌의 편안한 산길이다. 길은 걸을만하고 좋은데 갑자기 나타난 날벌레들이 공격을 해온다. 자신들의 터전을 사전 허락도 없이 방문한 우리들에게 날벌레들은 모든 촉각을 이용해서 경계하고 빨리 자신들의 영역에서 나가라고 공격해온다. 벌레를 쫓는 방향제를 뿌려도 잠시 뿐. 주로 얼굴 부위를 공격하고 귓가에 몰려들어 강한 불만과 항의를 표현한다. 손으로 휘저으면 잠시 물러났다가 곧바로 다시 공격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생존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우리는 그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 산을 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걷기를 이어간다. 머리에 두건을 뒤집어쓰니 귓가의 날벌레들은 정면으로 공격을 시작한다. 눈앞에 약 열 마리 정도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시야를 가린다. 어떤 놈들은 콧구멍 속으로 들어와 몸부림을 친다. 그들이 우리를 경계하고 공격하는 모습과, 그럼에도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그들을 미워할 필요도 없다. 다만 마음속으로 잠시 이 길을 지나가는 과객으로 너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테니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산 위에 올라서니 눈앞에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산과 운해, 그리고 물이 흐르고 있다. 그 모습이 평온해 보인다. 한 친구가 얼려온 냉 막걸리를 꺼내어 생명수를 나눠준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 준비해 과일을 꺼내어 나눠준다. 준비해 온 정성과 나누는 따뜻한 마음을 통해 날벌레들로 인한 고통을 잊는다. 몸은 땀범벅이고 숨은 차오른다. 내린 비로 흙탕물이 군데군데 고여 있고, 산길은 물기를 가득 품은 걷기에 불편한 진흙길이다.  동산을 하나 넘고 마을을 지난다. 산에는 날벌레가, 마을길에는 무더위가, 그리고 내렸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소나기가, 풀숲에 숨어 있다가 우리들의 발소리와 진동을 느끼고 달아나는 뱀 등이 우리의 걷기를 방해한다. 하지만 이들은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소품에 불과하다. 결코 그들이 우리의 걷는 의지를 꺾지 못한다. 우리는 걷는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걷는다. 마치 걷기가 우리의 사명이라도 된 듯이 걷는다. 왜 걸을까? 이 무더위 속에서, 또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 왜 우리는 오늘도 걷고 있을까? 아직도 걷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걷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냥 걷는 것이 좋아서 걷는다는 것 외에 아직 별다른 답을 찾지 못했다. 설사 답을 찾았다 하더라도 우리의 걷기는 계속될 것이다.      

로하스 파크라는 휴양지에 쉬고 식사하기 좋은 데크로 만든 휴식공간이 있다. 우리들을 위해 제작해 놓은 것 같은 식탁도 있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먹는다. 웃음과 즐거운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미소, 웃음소리, 즐거운 표정, 활기찬 모습들만 느껴진다. 우리가 걷는 이유일 수도 있다.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느라 일주일 내내 힘들었는데 밖에 나와 걸으니 숨을 쉴 수 있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친구도 있다. 차로 이동하며 서울을 벗어나 여행을 하고, 걸으며 또 다른 여행을 한다. 걷기는 여행이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본인의 의지로 집 밖을 나온 것 자체가 이미 여행이다. 여행은 설렘과 긴장감,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이런 감정들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오늘 걸은 길의 거리는 안내 책자에 24.6km로 나와 있다. 뜨거운 햇빛, 소나기, 후끈한 지열, 산속의 날벌레와 거미줄, 산길과 마을 길, 자전거 도로를 따라 걷는 아스팔트 길, 큰 내를 건너는 다리, 비 내린 천에서 시원하게 낚시와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고통 속에서 걷는 길이다. 함께 걷다가 각자의 속도에 따라 서로 떨어져 걷기도 한다.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길가의 마트에 들어가 각자 필요한 음료수를 하나씩 사서 먹고 마시며 걷는다. 음료수 하나, 빙과 하나에 힘들었던 표정들은 사라지고 금방 얼굴이 활짝 핀다. 모두 어린아이가 되어간다. 길은 우리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주고, 순수한 자연인으로 만들어준다. 걷는 이유를 한 가지 더 찾았다. 동심을 찾기 위해서 걷는다.    

개천을 따라 걷는 길이 이어진다. 경원선 철교도 따라 걷는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길을 걸으며 조금씩 지쳐간다. 마지막 남은 2km 구간 전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온 몸의 체력을 쥐어짠다. 다리도 피곤하고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지쳐간다. 그럼에도 웃음은 그치지 않는다. 모두 미쳐가고 있다. 길에 미치고, 걷기에 미치고, 힘듦에 미치고, 즐거움에 미치고, 서로에 대한 고마움에 미친다. 그리고 미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렌터카 기사님은 5시에서 5시 30분까지 기다려주시겠다고 한다. 길 리딩으로서 그 시간만큼은 지켜드리며 약속을 지키는 걷기 동호회 회원임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옆에서 페이스메이커와 길동무 역할을 해주시고 있는 히란야님에게 속도를 내자고 얘기한다. 둘이 속도를 올리며 걸으니 따라오는 친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속도를 내며 따라잡으려 애쓰며 걷는다. 5시 30분 조금 전에 도착했다. 기사님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약속은 중요하다. 아무리 사소한 약속도 약속은 지키기 위한 것이지, 깨어도 되는 것이 약속은 아니다. 사소하거나 중요한 약속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구별을 하고, 합리화를 하고, 자신의 약속 파기를 정당화시킬 뿐이다.      

신탄리 역 화장실에게 간단하게 씻고 장비를 정비한 후 시원한 차에 올라타니 극락이 따로 없다. 극락이 있기 위해서 지옥이 필요하다. 지옥의 뜨거운 불 맛을 느낀 사람들만이 극락의 시원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지옥이 없으면 극락도 없다. 오늘 길을 걸으며 지옥과 극락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원래 지옥과 극락은 별도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속에서 만든 것이라고. 지옥은 극락을 느끼게 해 주고, 극락은 지옥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렌터카 준비부터 비용 정산 등 차량 검색과 수배를 위해 애써주신 비단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처음 나오셨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으신 스위치님, 하이님, 가길님, 그리고 뛰어난 검색 능력으로 길 안내와 필요한 위치를 찾아내어 알려주신 빨강내복님, 함께 걸었던 모든 길동무님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