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20301 - 220220304 37km
코스: 인왕산 둘레길 외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6.19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코로나 확진 후 해제까지 약 열흘 정도 걷기 못했다. 해제된 다음 날 집 주변 길을 걸었고, 오늘 인왕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사전투표를 아침에 일찍 서둘려 마친 후 바로 걷기 위해 독립문 역으로 갔다. 오전에 늘 하듯이 집에서 글을 쓰고 점심 식사 후에 나갈까 잠시 생각했었지만, 게으름으로 인해 집에 눌러앉을 것 같아 계획을 바꿔 바로 걸으러 나갔다. 약 2년 전 국회의원 선거 날 일찍 투표를 하고 한양 성곽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50여 명이 나와서 어수선하고 모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하루 20만 명 확진 발표가 나오는데, 50명 나올 때보다 더 긴장하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에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으니 걸리면 걸리는 대로 각자 자가 격리하며 지내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어서 포기한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코로나에 대한 공포는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금요일 오전 다른 사람들은 출근하기 위해 전철을 이용하는데, 나는 걷기 위해 등산가방을 둘러메고 전철을 타고 있다. 예전에는 남들과 다른 나의 모습이 은근히 신경 쓰였는데, 이제는 그런 시선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과,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언행에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서부터 생긴 습관이다. 같이 살면서 또 각자 살아간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이런 태도에 익숙해져 자신만 알고 지내는 이기심이 깊어지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점검할 필요는 있다. 출근 시간에 등산 가는 복장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뻔뻔해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독립문 역 5번 출구에서 직진하면 안산에 오르는 계단길이 나온다. 그 계단에 올라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면 인왕산이다. 인왕산 둘레길을 세 번 정도 걸었는데, 전 코스의 반 정도 걸었다. 우측 방향으로 윤동주 문학관 방향으로만 걸었다. 오늘은 그 반대 방향인 홍지문 갈림길 방향으로 걸었다. 처음 가는 길,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으려니 괜한 걱정과 약간의 두려움이 생긴다.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낯선 길을 혼자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혹시나 사고가 날 것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야생 개들에 대한 두려움 등이 약 1년 전부터 생긴 것 같다.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낯선 길을 혼자 걷는 것도 나름 스릴과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마치 탐험가처럼 길을 홀로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가끔 부럽다.
윤동주 문학관 방향으로 걷는 것보다, 왼쪽 방향인 홍지문 갈림길로 가는 길이 조금 더 힘들다. 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안내판도 잘 갖추어져 있지만, 오르내림의 경사도가 조금 높은 편이고 무서워하는 바위도 있다. 홍지문 갈림길까지는 표지판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 걸었다. 갈림길에서 성곽으로 오르는 길부터 경사가 심해서 숨이 차오른다. 중간에 잠시 쉬면서 물과 과일을 먹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데, 바위가 나오고 바위에 오르는 밧줄이 놓여 있다. 무서운 바위는 빨리 올라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조금 더 가니 표지판이 보이지 않고, 기차바위와 부암동 사찰 표지판만 보인다. 어디서 표지판을 놓쳤는지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무의미한 짓이다. 바위를 오를 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둘레길은 위험하지 않은 길로 조성해 놓았고, 바위는 우회로를 만들어 놓는다. 기차바위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고 부암동 방향으로 내려오니 자하문과 창의문 방향으로 가는 큰길이 보였다. 길 가에 설치된 둘레길 안내도를 보니 하산한 지점 이전에 둘레길이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길 안내판을 자세히 보니 인왕산 둘레길과 인왕산 자락길, 두 길이 있다. 그간 세 번 걸었던 길은 모두 둘레길이다. 자락길 가는 길에 초소 책방이 표시되어 있어서 자락길을 따라 걸었다. 약 2년 전 들렸던 곳으로 경치와 분위기가 뛰어나서 기억에 남는 커피숍이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나눠져서 성곽 부근에서 이 두 길은 다시 합쳐진다. 초소 책방에 들려 커피와 빵 하나를 주문해서 비닐로 만들어진 움막 같은 곳에 홀로 앉아 아내가 준비해 준 과일과 함께 음식을 즐기며 나만의 사치(?)를 부려보았다. 건강, 여유로운 시간, 커피와 빵을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여유,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과일, 더 이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홀로 커피숍에 들어간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커피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굳이 커피숍에 들어갈 일도 없다. 더군다나 커피와 함께 빵 하나를 주문해서 먹었던 기억은 더더구나 없다.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은 내게는 사치라고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날이다. 사치는 스스로를 즐겁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남들은 이 글을 보고 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 서술했듯 타인 시선을 무시하는 뻔뻔함을 장착한 내게 타인의 웃음과 비웃음, 조롱은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으니 더더욱 당당할 수 있다.
집에 돌아와 샤워 후에 족발과 함께 와인 한 잔을 마셨고, 한라봉으로 입가심했다. 아내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삶의 큰 행복이자 사치이다. 서로 바쁘거나 삶에 지쳐 있으면 이런 여유를 누리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소한 일상이 행복한 사치가 된다. 아내는 이웃집에 놀러 갔고, 나는 40분 정도 낮잠을 잔 후 일어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여유와 사치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사치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 맞는 적당한 사치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지만, 한계를 벗어난 사치는 삶을 오히려 더 빈곤하게 만들어 준다. 가끔 풍요로운 사치를 누리는 것도 삶의 큰 행복이 될 수 있다. 또한 사치가 행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은 매우 사치스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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