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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337] 코로나 자가 격리 7일 차

by 걷고 2022. 2. 28.

날짜와 거리: 20220228

코스:  n/a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6.15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자가 격리 마지막 날이다. 오늘 밤 12시가 되면 해제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크게 아프거나 심한 증상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덕분에 코로나와 편안하게 함께 지낸 것 같다. 매일 삼시 세끼를 챙겨주는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아직도 목에는 약간의 불편함은 남아있지만, 그 정도는 생활에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아내는 오늘 딸네 다녀온다고 하며 자가 측정기로 검사를 했다. 음성으로 나와서 기분 좋다며 이것저것 준비해서 나갔다. 오랜만에 온전히 거실을 홀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오늘 아침에는 후배가 코로나 확진되었다며 문의 전화를 했다. 경험을 얘기하며 걱정 말고 약 복용 잘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경주에 친구들 모임이 3월에 예정되었는데, 코로나가 수그러질 때까지 연기하자고 연락했다. 경주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친구도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 격리 중이라고 한다. 덕분에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하며 서로 안부를 묻기도 했다. 목소리라도 들으니 반갑고 좋다. 나이 들어가면서 친구의 소중함도 느껴가고 있다. 부디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두어 달 후에 만나길 기대한다. 친구와 통화를 마친 후에 갑자기 자신이 속이 좁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든 느낌이다.      

딸네 집에 가기 전 아내는 자가진단 검사를 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단 세트 검사를 준비하면서 검사도구 사용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아내는 원래 이런 일들을 혼자 잘 처리하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나는 한 걸음 뒤에서 아내가 준비해 주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서 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얼마 전부터 아내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데 조금 머뭇거리거나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괜히 걱정이 되기도 하고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오늘도 검사를 마친 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면봉과 사용하지 않은 면봉이 섞인 것 같아 구분하는 과정에서 아내에게 큰 소리를 냈다. 아무 일도 아닌 것에 큰 소리를 낸 것이다. 결국 아내의 말이 옳아서 머쓱했다. 조금 후에 “최근 들어 답답한 모습을 보면 큰 소리를 친다.”라고 아내가 얘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들으니 더욱 많이 미안했다. 이틀 전쯤에도 무슨 일인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큰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 그때도 후회를 많이 했다. 불과 이틀 사이에 큰 소리를 두 번이나 냈다. 아내는 듣기 싫은 큰 소리를 아무 대꾸 없이 잘 받아주었다. 속으로 삼키느라 속상하고 힘들었을 수도 있다. 아내는 지금까지 나와 살아오면서 답답한 일들이 무척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큰 소리로 비난을 했던 적이 없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미안하다. 이제는 아내를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그간 아내가 베풀었던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해줄 때이다.    

 

  “같이 사는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서로 살아가는데 편안하다는 생각을 남보다 조금 일찍 알게 된 것 같다.”라고 아내가 주방에서 일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듯 말했다. 그렇다. 아내는 내게 먼저 화를 내거나 자신이 할 일을 미루지도 않고,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 충실하게 잘하며 나에게 많은 것을 베풀며 살아왔다. 결혼 한 지 37년이 지나가지만 아내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나도 변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고,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창피스럽고, 나 자신에게는 실망스럽기도 하다. 화를 내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다짐을 하면서도 이런 다짐이 무의미해질 때마다 허탈하기도 하고 그간 마음공부한 것이 모두 거짓 공부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내는 삶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실천하며 지혜롭게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아내가 가르치거나 충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아내의 태도를 보면서 스스로 반성하며 배운다. 부모님에게 대하는 태도, 딸에게 대하는 태도, 손자들에게 대하는 태도, 주변 사람들에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운다. 좌복 위에 주리 틀고 앉아서 들리지도 않는 화두를 쥐어 잡고 수행자의 겉모습만 흉내 내고 있는 자신이 무색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그렇기에 더욱 꾸준히 수행을 해나가야 한다. 함께 살고 있는 아내가 나의 스승이 되고, 아내와 함께 살아가며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수행의 대상이 된다. 함께 한평생 살아가는 삶 자체가 공부의 과정이자 공부를 끝내는 방법이다.     

 화의 근원은 욕심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타인이 나의 뜻과 다른 언행을 하거나,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화를 낸다. 욕심의 이면에는 ‘나’가 깔려있다. ‘나’라는 상(相)을 갖고 있는 한 욕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불교에서 ‘무아(無我)’가 모든 법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하는 이유는 ‘나’를 버리지 않는 한 공부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은데, 하물며 타인이나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또 마음공부를 하면서 ‘나’를 많이 제거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나의 모습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죽은 공부를 해왔다. 그렇다고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이제 살아있는 공부를 할 때이다.     

 

 화두를 드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상황이 화두를 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잡히지 않는 화두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내에게 화를 내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의 ‘이 뭣고?’이다. 흐리고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화두가 조금 선명하게 드러나고 조금 더 가깝게 보이는 것 같다. 이나마 이삼일 억지로 앉아서 화두를 들려고 애쓴 덕분에 얻을 수 있는 수익이다. 꾸준한 수행과, 삶 속에서 벌어지는 활발한 수행의 장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며 조금씩 참 사람이 되어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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