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이망우 (樂以忘憂)는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는다’라는 의미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걷기 동호회에서 같이 활동하는 생키미님은 이런 얘기를 했다. “몇 년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걷기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몸이 힘들어도 열심히 걸었다. 그 이후로 괴로움이 기쁨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은 걷기를 통해 근심을 잊고, 근심이 놓였던 자리에 기쁨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더욱 열심히 걸었고, 요즘은 웬만한 일에는 마음의 요동이 거의 없다고 한다.
고통은 24시간 내내 존재하고,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지속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안에서도 숨 쉴 수 있는 순간은 존재한다. 아무리 괴로워도 화장실은 가야 하고 최소한의 식사는 해야 하고, 최소한의 잠은 자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괴로움의 이유가 불면과 식욕으로 바뀔 것이다. 괴로움이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먹고 마셔야만 하고, 잠도 자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괴로움 속에 있는 순간에는 그 괴로움에 매몰되어 잠도 못 이루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한다.
만일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사라진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 괴로울 일이 없고 평생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다고 해도, 앞으로도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목숨을 지니고 있기에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몸을 지니고 있기에 늙음과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종족 유지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태어남 자체가 이미 괴로움의 시작이다.
삶 자체가 괴로움이라면 평생 우리는 괴로움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결코 아니다. 괴로움 자체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통해 괴로움 속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또한 괴로움과 괴로움 사이에 존재하는 찰나의 공간을 확장시킬 수 있고, 그 공간을 천천히 즐거움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 개념의 변화란 괴로움을 없애야만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삶 자체가 괴로움인데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얘기는 바로 죽음을 얘기한다. 괴로움은 삶 속에 항상 같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확장시켜나가면 괴로움의 공간이 조금씩 즐거움으로 채워질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밥을 먹을 때는 밥 먹는 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맛을 음미하며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 순간만은 괴로움이 들어올 틈이 없다. 만약 괴로운 생각이 다시 떠오르면, 바로 알아차리고 다시 밥 먹는 것에 다시 집중하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는, 그 일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다 괴로운 일이 다시 떠오르면, 알아차리고 볼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밥 먹으며, 볼 일을 보며 할 수 있는 일은 그 행동 자체 밖에는 없다. 그 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걷기란 바로 이런 이유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자연 속을 걸으며 나무, 돌, 풀, 꽃, 맑은 공기, 빗소리, 노을, 구름, 새소리 등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된다. 그 순간에는 오로지 보고 듣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괴로운 순간이 즐거운 순간으로 변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걸으며 길동무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몸을 움직이며 생각 속에 갇혀있는 자신을 볼 수도 있다. 몸에 땀이 나며 활력을 느낄 수도 있고, 샤워를 하며 상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비록 샤워한 후 1분 뒤에 다시 괴로움이 찾아오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괴로움과 괴로움 사이의 공간을 통해서 숨 쉴 수 있는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 괴로움은 변하지 않는 실체가 아니다. 즐거움 역시 마찬가지다. 괴로움의 순간이 사라지면 즐거움이 저절로 채워진다. 어둠이 사라지는 공간에 밝음이 채워지듯.
생키미님은 모친께서 힘든 시간에 뜨개질을 하셨던 모습이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뜨개질이라는 몰입이 모친에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생키미님은 걷기에 몰입하면서 괴로운 시간을 견뎌내고, 괴로움이 즐거움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체득한 사람이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확실한 통찰을 얻었기에,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그 통찰을 통해 극복할 힘이 생긴 것이다. 樂以忘憂 (낙이망우)는 쾌락에 빠져 걱정을 잊는 것도 아니고, 괴로움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을 수용하고 삶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다. 어둠 속에 갇혀있다고 자신을 웅크리는 것이 아니고,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둠은 어느 순간 서서히 빛으로 채워진다. 그 이후에 다시 어둠이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그 어둠이 빛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기에. 어둠은 우리에게 찾아온 밝음의 전령이다. 어둠을 즐겁게 맞이하는 용기가 바로 樂以忘憂 (낙이망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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