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가 되기 위한 상담 수련의 일환으로 육 개월 간 상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으며 어느 날 상담 선생님이 '감정과 생각을 담아 두면 어떻겠어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힘든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견디기보다는 빨리 해소하거나 털어버리려고 애썼던 경험들이 많이 있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음주였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떠들고 빨리 잊어버리려고만 했다. 그런 방법을 통해 순간적으로 잊어버려서 마음이 편안해진 것 같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서 끈질기게 자신을 괴롭히고 불쑥불쑥 튀어나와 힘들게 만들었다. 과거에 재대로 해소하거나 정리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일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과거가 현재를 갉아먹으며 현재를 사라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현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미래 역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자동적 반응을 자신이 선택했다고 착각을 하고 있지만, 실은 과거의 반복된 습관이 내린 선택을 따를 뿐이다. 종이 주인을 부리는 격이다.
불편한 상황과 감정을 버틸 힘이 없어서 발생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린 결정은 대부분 후회로 이어지고, 같은 상황이 오면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면서 그 패턴이 굳어지게 된다. 마음 근육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성되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불편한 경험들을 바로 해소하거나 거부하거나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견디게 되면 같은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다른 대안을 선택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반복된 대안과 결정이 강화되면서 더 이상 과거의 사슬에 매여 살아가지 않고, 현재의 삶 속에서 건강한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불편한 상황을 견뎌내는 힘이 중요한 이유다.
삶 속에서 자기 주도권을 쥐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지는 것이 자기 주도권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결정을 현재의 자신이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과거의 경험과 익숙한 패턴들이 결정을 내리게 된다.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과거의 경험들을 소환시키거나, 미래의 상상을 끌고 와서 현재의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된다. 과거나 미래에 의해 오염되는 현재의 자신으로 살 수 있도록 지금-여기에 머무는 연습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 연습 과정이 바로 숙성의 과정이다. 숙성을 위해서는 일어난 상황을 빨리 덜어내거나 회피하지 않고 가슴 속에 담아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숙성시키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실행하고 있다. 명상과 걷기다. 명상은 지금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모든 작용을 비판단적으로 바라보고 관찰하며 흘려보내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과거의 경험과 기억들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그런 작용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 과거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현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현재를 살아가며 숙성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인 걷기는 몸동작을 통해 현재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걷는 몸의 움직임과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발바닥의 감각, 발에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에 집중하며 걸으면 오직 감각만 남아있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걱정을 사라지고 현존하는 감각만이 살아있다. 새소리를 들을 때에는 오직 듣는 귀와 소리만 있을 뿐이다. 소리가 과거의 감정과 기억을 소환시키지 않고, 오직 듣는 귀와 소리만 존재한다.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이런 숙성 과정을 거치면 주어진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고 과거의 패턴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과거와 이별을 하게 되면서 매 순간, 매일 다른 자신으로 태어나게 된다. 과거나 미래의 자신이 아닌 현재의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괴로움으로 인해 고통 받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통 받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떠오르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나누는 과정이다. 고통을 겪어 본 사람들만이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잘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하게 되면서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오게 된다.
길을 걸으며,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 일상 속 사소한 일들을 경험하고 관찰하고, 수행 센터에서 수행하며 느꼈던 점을 정리해서 나누고 싶다. 담고, 숙성시켜,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이 바로 명상과 걷기, 그리고 글쓰기다. 일상 속에서 요즘도 꾸준히 담고, 숙성하고, 나누는 연습을 하며 지낸다. 때로는 잘 될 때도 있고, 때로는 어긋날 때도 있다. 하지만, 어긋난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도 다르고, 내일의 나와도 다르다는 진리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체득하며 살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담고숙성시켜 나누는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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