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67] 외출

by 걷고 2021. 8. 26.

날짜와 거리: 20210823 - 20210825   14km

코스: 일상 속 걷기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4,703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친구 두 명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위염으로 술 마시기는 어렵지만 식사는 가능하다고 하며 장소와 시간은 두 친구의 뜻대로 따르겠다고 했다. 백수가 가진 여유를 한껏 부려보았다. 충무로 8번 출구에서 오후 2시 30분에 만나자는 답신이 왔다. 갑자기 삶에 활력이 생긴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괜히 설렌다. 가까운 친구들이 불러주니 더욱 즐겁고 고맙다. 코로나 이전에는 위염 같은 증상이 있었다면 친구들이 불러내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쉬고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가 친구들의 부름을 너무 반갑고 고맙게 만드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코로나 이전의 평범한 일상이 매우 특별한 것이 되었고, 9시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코로나 이후의 일상이 예전에는 특별한 상황이었다. 코로나는 많은 사회 현상을 변화시켜주었다. 많은 분들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뎌나가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주변 사람들과 일상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외출 준비를 하며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잠시 고민했다. 외출할 일이 없고 홀로 걷는 일이 많아서 늘 등산복을 입고 지내는 편이다. 갑자기 외출복을 입으려 하니 무엇을 입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늘 입고 있는 등산복은 입기 싫었다. 이 순간 만이라도 뭔가 변화를 주며 생활 속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청바지도 입어 보았다. 아내가 비 오는 날에는 청바지가 습기로 인해 무거워질 수 있다고 했다. 세미 정장 바지를 입고 상의는 편안한 개량 한복을 챙겨 입었다. 신발이 문제였다. 비가 오고 있어서 신발 안에 물이 들어오면 기분을 망칠 것 같았다. 결국 생활 방수가 가능한 트레킹화를 신었다. 바지와 트레킹화의 조합은 매우 어울리지 않지만, 비로 인해 양말 젖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기 위해 30분 정도 이런저런 옷을 입어 보고 양말과 신발도 구상하는 모습을 보며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친구들 만나는 데 웬 수선이냐고 할 수 있지만, 오랜만의 외출을 위한 이런 성가신 준비 과정은 오히려 즐겁다. 특히 워낙 패션에 무지하고 신경을 쓰지 않는 나로서는 가끔 발생하는 외출이 큰 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준비 과정은 오히려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무료함이 활력으로 바뀌는 중요한 과정이다. 

외출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고인이 되신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지께서는 어딘가 외출할 일이 있으시면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하시고 옷까지 차려입으신 후에 가족들에게 빨리 준비하라고 호통을 치셨다. 멋쟁이이셨던 아버지는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으시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두르지 않는다고 문 밖에서 호통을 치셨다. 그 당시에는 그런 아버지 모습이 참 유별나다고 생각했었다. 외출 시에도 그렇지만, 누군가가 집에 온다는 연락이 오면 아침부터 손님맞이를 하기 위해 가족들에게 서둘러 준비하라고 큰 소리를 치셨다. 친척들의 일상적인 방문에도 아버지께서는 큰 손님맞이하듯 모든 준비를 호령하셨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께서 서두르시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화가 나기도 했었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서두르고 호통을 치셨을까? 오늘 외출 준비하며 아버지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집안에 계시며 외출할 일이 거의 없으셨다. 친척들도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지, 아버지께서 어딘가를 찾아가서 인사를 할 일이 거의 없으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어딘가를 갈 일이 생겼다는 것은 일의 경중을 떠나서 당신에게는 매우 큰 일이었을 것이다. 무척 설레고 외출을 한다는 사실이 주는 즐거움도 있었을 것이고, 어디를 가도 어르신으로 대접을 받으실 생각에 기분이 좋으셨을 것이다. 또 누군가가 집에 방문한다는 것은 그들이 아버지에게 절을 올리고 어른 대접을 한다는 사실이 주는 자존심 회복의 중요한 날이 되고, 존재의 의미를 되새김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을 것이다. 그런 준비에 사소한 실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더군다나 조금이라도 늦어서 아버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60대 중반에 들어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다. 자식은 늙어서도 철이 들지 않나 보다. 

어제 신문에 정신의학과 교수가 쓴 글을 읽었다. 요지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증상이 호전되어 이제 매월 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을 드리면 화를 내신다는 것이다. 그분들에게는 병원 외출조차도 큰 행사이다. 외출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가족의 부축과 보살핌을 받으며 병원에 가는 일은 병의 경중을 떠나서 매우 중요한 행사이고 즐거운 외출일 것이다. 그런 노인들에게 증상이 많이 좋아졌으니 더 이상 병원에 오실 일이 없다고 하면, 호전되었던 증상이 다시 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병을 꾀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외로움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이나 무기력을 과연 꾀병이라 여기고 무시할 수 있을까? 병의 증상은 이유를 막론하고 환자의 주관적 고통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본 도쿄대 노화연구소가 도쿄 주변에 사는 65세 이상 인구 5만 명을 대상으로 혼자서 운동한 그룹과 운동은 안 해도 남과 어울린 그룹 중 나중에 누가 덜 늙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나 홀로 운동파의 노쇠 위험이 3배 더 컸다. 운동을 하면 좋지만, 안 해도 남과 어울려 다닌 사람이 더 튼튼했다는 얘기다. 어울리면 돌아다니게 되고, 우울증도 없어지고, 활기차게 보인다. (…….) 외출과 교류만 비교했을 때는 교류족이 외출 족보다 신체 활력이 좋았다. 외로이 등산을 다니는 것보다 만나서 수다 떠는 게 나았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20210826, 헬스 에디터 김철중의 건강 노트)

 

외출은 준비과정부터 외출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류, 마치고 돌아오면서 느끼는 고마움과 즐거움을 통해서 심신의 활력을 되찾아 준다. 특히나 요즘의 나처럼 할 일 없는 백수에게 외출은 매우 멋진 이벤트이다. 나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지하철을 타고 여행하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친구들 만나러 나가고, 만나서 수다 떨고, 돌아오면서 그 즐거움의 여운을 감상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후에 꿀 잠을 잔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홀로 지내는 일상의 반복이 주는 편안함과 밋밋함이 있다면, 외출이 주는 긴장감과 활력이 있다. 이 둘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우리의 삶은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아내는 매주 일요일 홀로 지내시는 장모님을 뵈러 간다. 처남과 처남댁도 거의 매주 일요일에 찾아뵌다. 예전에는 나도 꽤 자주 찾아뵀지만, 언젠가부터 가지 않고 홀로 집에서 지내고 있다. 이 글을 쓰며 장모님 생각이 난다. 장모님께서는 아내를 통해 매주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보내주신다. 어쩌다 내가 아내와 함께 가는 날에는 무척 기뻐하셔서, 그 모습을 보며 송구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요일에 혼자 집에서 있으며 특별히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평상시처럼 혼자 지내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이 없다. 앞으로라도 매주는 못 찾아뵙더라도 월 2회 정도는 찾아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모님께서 점점 더 가족의 방문을 기뻐하시는 모습을 느끼면서, 그 기쁨을 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는 나대로 외출해서 즐겁고, 장모님께서는 우리를 맞이하시며 기뻐하실 것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