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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59] 슬기로운 백수생활

by 걷고 2021. 8. 9.

날짜와 거리: 21210809
코스: n//a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4,58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백수 생활을 잘 지내는 방법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시간이 넘쳐나 시간에 치이는 삶은 피곤한 백수생활이다. 백수 탈출을 위해 너무 바쁘게 동분서주하는 삶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백수생활을 잘 보내지 못하면 과로나 무료함으로 지치게 된다. 백수에게 시간을 ‘활용’한다는 단어는 정확한 단어는 아니다. 시간을 ‘잘 보내는’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더 적합하다. 활용은 효율성과 유용성, 그리고 생산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백수생활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잘 보내는’ 것이 맞는 이유는 그냥 하루를 잘 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 그날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리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고 지루한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라는 걱정이 들기도 하고, 불안감과 무력감이 들기도 할 것이다. 사사건건 집 안에서 트집을 잡으며 스스로 자발적 고립을 만들며 외롭다고 하소연 할 수도 있다. 퇴직한 중장년층,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경력 단절된 성인들 모두 각자 처한 주변 상황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할 일이 없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는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루틴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루틴을 만들 힘조차 없어서 더욱 무력감에 빠지고 심할 경우 자기 비난을 하며 고통 속에 살아가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도 이런 세월을 겪었다. 다행스럽게 ‘걷기’라는 운동을 통해서 겨우 일어설 수 있었다. 걸을 수 있는 작은 힘이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백수 생활도 오래하면 노하우가 생긴다. 살고 싶어서 또 무료함에 벗어나고 싶어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낸다. 내가 찾아낸 방법 중 하나가 루틴 만들기이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제 조금 안정된 루틴이 만들어졌다. 7시 이전에 기상해서 한 시간 정도 명상을 한다. 호흡 명상을 하지만, 대부분 호흡은 놓치고 잡념과 씨름만 한다. 그래도 그냥 앉아있는다. 그 외에 이른 아침부터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8시경 아침 식사를 한다. 아내가 차려 준 대로 먹는다. 슬기로운 백수 생활의 팁 하나는 음식을 포함해 아내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 동시에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에 토를 달아서도 안 된다. 아내 말을 잘 따르면 일상이 편안하다. 아침 식사는 밥 대신 샐러드와 빵, 과일, 계란 등을 먹는다. 언제부터인가 아침 식사에서 밥과 국이 사라졌다. 나이 들어가면서 탄수화물을 줄일 필요가 있는데, 자연스럽게 건강에 좋은 식단이 만들어졌다. 아내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도 백수생활의 기본 철칙이다.

아침 식사 후 신문을 본다. 가능하면 자세히 본다. 신문 내용 중 유용한 정보는 식구들에게 공유하기도 한다. 요즘은 아이들이 제주도에서 살고 있어서 자주 보지 못하고 영상 통화만 한다. 육아 관련 신문 기사가 나오면 꼬박꼬박 챙겨서 보낸다. 읽고 안 읽고는 아이들의 결정사항이다. 어떤 일을 한 후에 반응이나 기대를 하지 않는 것도 백수생활의 원칙 중 하나이다. 신문이 아이들과 나를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가끔 읽을 만한 책 소개가 나오면 휴대전화에 메모를 하고, 글감을 찾기도 한다. 지금 휴대전화 노트에는 읽어야 할 책 리스트가 제법 많다.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신문을 읽은 내용을 요약해서 아내에게 브리핑을 하기도 한다. 신문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도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이다. 신문을 읽고 나면 9시 정도 된다. 그때부터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쓴 글을 SNS에 업로드한다. 업로드 끝나면 오전 시간이 거의 끝나간다. 한 시간 정도는 TV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점심 식사를 한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4시 정도까지 책을 읽는다. 최근에 찾아낸 책 읽는 방법 중 하나가 중요한 글귀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읽는 것이다. 책을 완독 한 후 포스트잇이 붙은 글귀를 독서카드에 옮겨 쓴다. 떼어낸 포스트 잇은 노트북 올려놓은 낮은 선반에 붙여서 재활용을 한다. 옮겨 쓰다 보면 중요하다고 생각한 글귀 중 버릴 것도 있고, 그 주변의 다른 중요한 문구가 보이기도 한다. 옮겨 쓰는 작업을 통해서 책을 다시 한번 읽는다. 좀 더 기억하기 위해, 또는 글감으로 활용하기 위해 기록한다. 만년필로 글을 옮겨 쓰면서 원래 악필이었던 필체가 점점 더 악필이 되어가는 것도 느낀다. 고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가능하면 정자체로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중요한 내용을 머릿속에 조금이라도 더 입력시킬 수 있다. 설사 앞으로 그 입력된 자료를 꺼낼 필요가 없더라도 이런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을 죽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읽고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손을 많이 사용하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일거삼득이다. 시간도 죽이고, 치매 예방도 하고, 중요한 문구 기억해서 가끔 잘난 체를 할 수도 있으니. 지금까지 읽었던 책 내용을 옮겨 적은 독서 카드와 노트가 제법 많다. 혹시 내가 죽은 후에 아이들이 짐 정리를 하다 이 노트를 발견하고 읽게 된다면 하늘에서 웃으며 대견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서 습관을 살펴보니 너무 편식을 하는 것 같다. 주로 인문학, 철학, 종교, 심리학 서적 위주로 읽었다. 수필이나 장편 소설을 읽기도 했다. 균형 잡힌 독서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사용하는 사람이 가끔 왼손을 사용하게 되면 뇌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독서 역시 한 분야에만 치중되지 말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뇌의 균형을 잡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특히나 문외한인 예술 분야, 미술이나 음악 관련 서적도 읽어 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이 주로 이성적인 내용의 책이었다. 좀 더 감성적인 분야의 책도 읽을 필요도 있다. 국내 소설 외에도 외국 소설도 읽고, 시집도 읽어 볼 생각이다. 독서의 다양화는 읽을 책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것이고, 그만큼 소일거리가 생긴다는 것이고, 그만큼 하루를 잘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오후 5시쯤 걷기 위해 나간다. 보통 나가면 2시간 정도 걷는다. 하루에 10km 걷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어떤 날은 목표보다 좀 더 많이 걷거나 적게 걷기도 한다. 평균적으로 10km 걸으려 노력하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 7시 정도 된다. 저녁 식사 후 TV를 시청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고 주로 뉴스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가끔 주식 관련 자료를 정리하거나 암호화폐 거래소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부담 없는 가볍고 편안한 책을 읽기도 한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잠자리에 든다.

시간이 유일한 자산인 백수는 이 기간을 잘 활용하면 좀 더 슬기롭게 백수생활을 즐길 수 있고, 이 경험을 통해서 노후를 좀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복된 일상에 지쳐 무기력한 백수가 아닌,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가는 활기찬 백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 활기찰 정도는 아니지만, 편안한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다. 가끔 주변에서 나의 백수생활이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내가 들으면 기겁할 일이지만, 이런 얘기를 듣는 나는 혼자 속으로 슬며시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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