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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58] 장봉도 트레킹

by 걷고 2021. 8. 8.

날짜와 거리: 2121080- - 20210807 25km
코스: 장봉도 외
평균 속도: 3.4km/h
누적거리: 4,58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가을 하늘이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니 속이 뻥 뚫린다. 기러기가 날아다니고 비행기도 날아가고 구름도 날아간다. 누군가가 구름을 빗질하듯 구름 속 무늬는 땅 위의 빗질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 모임이 귀한 행사가 되었고, 무더위에 마스크를 쓰는 일상은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을 읽기 힘들다. 다만 자신들의 어려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어느 무엇도 자연의 섭리인 세월의 흐름을 어기지 못한다. 세월의 흐름은 계절의 변화를 가져오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금언은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 역시 세월의 흐름 속에 지나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장봉도 트레킹을 하는 것은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런 친구들이 있기에 힘든 세월을 견뎌낼 힘이 생긴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운서역에서 오전 8시 30분에 모였다. 영종도에 사는 친구가 고맙게도 승용차를 갖고 와서 우리를 태우고 삼목항으로 향했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지만, 만나면 20대 청년들처럼 가벼운 수다에 서로 웃느라 정신 못 차린다. 50대, 60대 사람들이 떠드는 내용은 유치 찬란하다. 게다가 그 유치 찬란한 농담에 웃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여중생들이 지나가는 새를 보며 웃는 것과 진배없다. 수다와 웃음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삼목항에 도착해서 열 체크를 받고 인적 사항을 기록했다. 운전한 친구가 우리들 신분증을 들고 혼자 뛰어다니며 승선 티켓을 구입했다. 운 좋게 배 출항 시간이 9시.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승선하는 친구들 머리 위로 높고 푸른 하늘과 자유롭게 활기찬 날갯짓을 하는 기러기가 보인다. 그 기러기처럼 오늘 우리도 자유롭게 걷고 웃고 떠드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

장봉도항에 도착해서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저 멀리 아주 작은 돌산이 보이는데, 그 돌산까지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아마 낚시꾼이나 관광객들을 위해 설치한 연결로 같다. 푸른 하늘과 다리의 파란 페인트가 잘 어울린다. 그 다리의 설치 목적은 분명하지 않으나, 눈요기하기에는 나름 괜찮다. 일단 이상한 다리는 한 번쯤 건너 봐야 한다. 돌산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다시 등산로 입구 방향으로 걸었다. 산 높이는 150 미터에 불과하지만, 올라가는 길은 늘 쉽지 않다. 몸이 채 풀리기도 전에 오르막길을 오르며 금방 땀범벅이 된다. 그 땀은 속세의 찌든 때를 씻어내는 정화작용의 부산물이다. 정자에서 잠시 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능선 우측에는 강화도와 북측 땅이 보인다. 좌측에는 영종도가 보인다. 좌우 양쪽에 섬이 보이고, 그 섬과 산은 바다로 연결되어 있다. 푸른 하늘, 파란 바다, 멀리 보이는 녹색 섬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그려낸다.

능선 따라 걷는 것이 쉬울 줄 알았는데, 일단 작은 동산 하나를 넘은 후에 하산해서 다시 산을 올라야 한다. 세상사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냥 할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쉽고 어려운 것 따지지 않고 할 뿐이다. 다행스럽게 중간중간 구름다리가 두 개 설치되어 있어서 내려갔다 다시 오르는 수고로움을 하지 않아도 되어 잠시 우리를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휴식을 취하며 각자 준비해 온 음식물을 나눠 먹었다. 한 친구는 늘 준비해오는 단팥빵을 준비했다. 빵 하나하나가 부직포 같은 포장지로 덮여있다. 빵 자체보다 그 포장이 더욱 고급스럽게 보인다. 한 친구는 사람 수만큼의 텀블러에 집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담아왔고, 큰 텀블러에는 얼음을 채워와서 즉석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준다. 그 무거운 짐을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던 것이다. 미안했다. 다른 친구는 막걸리를 얼려왔고, 오이와 고추장을 준비해왔다. 슬러시 막걸리는 산에 오르는 힘든 기억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나는 사과와 바나나를 준비했다. 각자 준비해 오는 음식물이 정해져 있어서 부담도 없고 편하다.

음식물을 먹으며 쉬고 있는데 중년 부부 한 쌍이 어느 길로 올라왔느냐고 묻는다. 질문 내용이 이상하고 집요하다. 가야 할 방향을 묻는 것이 일반적인데, 올라왔던 길을 묻는 이상한 질문이다. 그분들이 지나간 후에 우리끼리 그분들의 질문 이유에 대해 나름 해석을 하며 웃었다. 아내는 다른 길로 올라오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고, 남편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맞다고 논쟁을 했다는 것이 우리가 내린 추론이자 결론이다. 진실이야 어떻든 우리끼리 나름 추론을 하며 웃고 떠들었다. 길을 걷는 내내 이 부부를 서너 번 더 만났고, 심지어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도 이 부부를 만났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는지 궁금하다. 봉수대를 오르자며 당당하게 걸었던 길이 소방도로였고, 길이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버섯을 캐는 부부를 만나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꼭 봉수대를 찾을 이유는 없었다. 길이 있으니 걸었고, 걸으러 왔으니 걸었고, 덕분에 예정에 없던 길을 걸었다.

하산 후 버스를 타고 항구에 도착해서 항구 주변의 유일한 매점에 들어가 맥주를 한 캔씩 마시고 승선했다. 다시 삼목항에 도착 후 차로 이동해서 영종도 구읍뱃터 관광어시장에 들려 회를 주문했다. 싱싱한 회와 해물, 시원한 맥주와 소주는 잘 어울리는 환상의 조합이다. 먹기 전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파서 사진 찍을 여유조차 없었다. 횟집에서 나오니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한 친구가 그 주위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붙은 Bread & Co 상표를 보고 그 카페에 가자고 했다. 그 친구의 자제분이 가보라고 한 곳이라고 한다. 빵집으로만 알고 들어갔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다. 온통 흰색 톤으로 꾸며진 카페의 사이버 분위기는 미래 인간들이 살고 있는 미래 세상에 온 느낌이다. 신발 벗고 앉는 좌석도 있고, 테이블도 있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카페이다. 순간 이동해서 다른 세상에 들어온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빵과 커피를 주문한 후 외계인 속의 외계인이 된 우리는 사진도 찍고 정신없이 떠들다가 주인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그 주인 덕에 우리는 빨리 나올 수 있었다. 제재를 한 주인이 오히려 고맙다. 그 카페에서 우리는 환영받지 못하는 외계인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영종역으로 가는 길에 진한 붉은색을 띤 노을이 하늘을 물들었다. 카페에 좀 더 머물러서 그 사진을 찍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빨리 그 자리를 뜬 것은 손님들에게 축복이었을 것이다.

8월 중순에 맞춤형 등산화를 제조하는 공장을 찾아간 후 서울 숲을 걷기로 했다. 서울 숲으로 결정된 이유는 근처 맛 집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9월에는 한 친구가 걷기 좋고 휴식하기 좋은 길을 찾아 안내를 하기로 했다. 매번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다음 길에 대한 약속을 한다. 이 모임이 편한 이유는 어느 길을 가든, 어떤 음식을 먹든, 어떤 준비를 하든 굳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없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텀블러에 인원수만큼 준비해 온 친구에게 앞으로 홀로 짊어지고 다니지 말고 만나자마자 나눠주며 편안하게 걷자고 얘기하는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있는 좋은 모임이다. 이 모임이 오랜 기간 유지되어 건강도 챙기고, 우정도 쌓아가며 귀한 인연을 잘 유지하길 바란다. 고맙다,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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