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628 8km
코스: 불광천 한 바퀴
평균 속도: 4km
누적거리: 4,286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요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낮에는 햇빛이 강하다가 오후에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아내는 친구 모임에 나갔고, 나는 집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다. 집안에만 하루 종일 있으면 가끔 머리가 무겁고 약간의 두통이 발생한다. 두통의 이유가 날씨 탓인지 아니면 집안에만 있어서 생긴 것인지, 또는 외부 활동도 없이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마음속 불편함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걷기 동호회에서 주 한 두 번 길 안내하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 친구 모임도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은데도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 듯한 허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혼자 하루를 보내는 일이 지루하거나 싫지는 않은데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어떤 불편함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아내 귀가 후 임무 교대하듯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비가 조금 오고 있어서 우산을 들고 아쿠아 슈즈에 반바지 입고 편안한 복장으로 나왔다. 휴대전화도 집에 두고, 손에는 우산 외에는 아무것도 없이 나오니 한결 몸과 마음이 가볍다. 심지어 물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불광천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며 아주 유유자적하게 걸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어폰을 끼고 걷거나 뛰고 있고, 애완견과 함께 산책하거나 지인들과 수다를 떨며 걷고 있다. 통화를 하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머리 숙이고 걷는 사람들도 있다. 교각 밑에는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여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와의 차이점이라면 그들은 뭔가를 들거나 누군가와 함께 지내고 있고, 나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홀로 걷고 있다는 점이다. 걸으며 음악을 듣거나 통화하지 않는다. 걸을 때에는 그냥 걷고만 싶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기도 하고, 불광천에 떨어지는 빗물이 만들어 낸 동심원을 바라보기도 하고, 불광천에 흐르는 음악 소리를 듣기도 한다. 불광천의 힘찬 물소리를 듣기도 하고, 비에 흠뻑 젖은 나무와 이름 모를 잡초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기도 한다.
총 열 권으로 편집된 대하소설 ‘반야’를 모두 읽었다. 가끔 무료하다고 느끼거나 시간에 치인다는 생각이 들 때는 대하소설이나 장편 소설을 읽는다. 작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소설은 시간 때우기가 좋다. 아직도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는 측면이 남아있는 것 같다. 특별히 할 일이 없고, 약간의 무료함을 느낄 때, 또는 아무것도 안 하면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을 때 장편 소설을 읽는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은 지금 자신의 상황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인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에 대한 자책을 하기도 한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된다는 강박으로 인해 생활 속 루틴을 만들며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다. 한때는 외부활동을 모두 접은 채 하고 싶은 일만 하며 하루하루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상황은 주어졌는데, 그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는 불편함을 안고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나쁘지는 않지만, 만족할만한 삶은 아니다.
오늘 신문에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대학을 졸업할 때 인생의 단 하나의 목표가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을 하며 살자.” (조선일보 20210629)
‘눈 뜨면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는 문구가 인상 깊다. 루틴을 매일 유지하며 살고 있지만, 과연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어떤 날은 아침에 눈 뜨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물론 명상, 걷기, 글쓰기, 읽고 싶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과연 그 일이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아니면 지금 할 일이 없어서 버텨내기 위해 선택한 일과는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불편함을 외부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불편함 속으로 들어가 내면에서 해결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 매 순간 변하는 모든 환경이 늘 나의 기대나 기준에 맞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환경이 나의 기대에 맞게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환경에 대응하는 마음의 변화를 통해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면 집에 머무는 시간과 걷는 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다. 도서관도 집에서 가까운 증산 도서관만 가는 것이 아니고, 걸어서 약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마포중앙도서관에 가며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제일 좋아하는 일인 ‘걷기’ 위주로 생활 패턴을 변화시키는 것도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늘 가던 길 외에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고, 지방 걷기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두통은 아마 지금 생활의 변화를 요구하는 내면의 목소리일 가능성이 크다. 혼자 결정하고 실행하면 되는 것이기에 굳이 시간을 글 필요가 없다. 그냥 오늘부터 하면 되는 일이다. 당장 차편을 제공하는 지방 걷기 모임부터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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