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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37] 요즘 화를 내지 않네?

by 걷고 2021. 6. 15.

날짜와 거리: 20210614 10km
코스: 합정역 – 망원정 – 한강시민공원 – 월드컵공원
평균 속도: 3.9km
누적거리: 4,165 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요즘 당신 화를 낸 적이 없네?”
“무슨 얘기야? 갑자기, 뜬금없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화를 내지 않는다고.”
“다시 화를 내 볼까? 화낸 것이 그리워?”

어제저녁에 아내와 나눈 대화다.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얘기다. 특히 아내나 가족, 가까운 지인들에게 듣고 싶은 얘기다. 그 얘기를 아내가 해 줘서 너무 고맙고 누군가에게 이 얘기를 자랑하고 싶다. 언제부턴지 화내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만큼 화를 내고 살아왔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화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화를 표현하지도 못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삭이기도 했다. 특히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 많았으므로 억지로 화를 삭였던 적이 많다.

몇 년 전부터 화를 내고 나면 피곤이 몰려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곤 화냈던 것을 후회하며 마음이 불편했다. 화낼 때 마음속 독소가 나와 신체에 해를 입힌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음, 몸, 생각, 감정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화는 하나의 감정으로 화가 나면 당연히 신체화 증상이 나타난다. 손에 땀이 나고, 식은땀이 나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에 열이 나고, 두통이 생기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신체증상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불편한 상황에서 제일 먼저 느껴지는 신체증상은 가슴 쪽 부위가 아리거나 욱신욱신하고, 눈 주위가 불편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런 증상은 감정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미리 나타난다. 불편한 감정뿐 아니라, 감정이 올라올 때 느껴지는 신체증상은 더욱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조금씩 고쳐나가고 싶었다. 화를 내지 않고 살고 싶었다. 제일 먼저 시도한 작업이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또는 어떤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따르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때 화를 낸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나의 틀로 사람들과 상황을 판단하고 재단하며 틀에서 벗어나면 화를 냈다. 불편한 상황을 견뎌내는 힘이 약해서 화를 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잘 난 줄 알고 남들이 그 ‘잘난 점’을 인정해주기 바란다. 또한 자신의 약한 점을 분노로 감추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기도 한다.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근본 원인은 탐욕이다. 사람이나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탐욕에 불과할 뿐이다.

권위자들에 대해 심한 반항심을 갖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명령한다고 느끼거나 아랫사람 취급하듯 하면 매우 심한 반발과 화를 낸다. 어떤 상대에게는 면전에서 화를 내지도 못하고 돌아 나오면서 마음속으로 분노를 표현하거나, 그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내기도 했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문득 주위 사람들에게 권위적으로 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싫어하는 남들의 언행을 나 스스로 남들에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큰 권력을 갖고 있거나, 대단한 재력이나 명예를 갖고 있었다면 흔히 요즘 얘기하는 ‘갑질’의 대표적인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면에서 지금 처한 지극히 소시민적인 상황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권위자들에 대한 저항은 열등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남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없는 점을 지닌 자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느끼며 그들의 언행에 분노를 표현했던 것이다. 남이 나의 뜻대로 움직여주길 바라고 남과 비교해서 우월해지려는 마음은 모두 열등감이 근본 원인이다.

화의 두 가지 원인, 이기적인 모습과 열등감, 을 확실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동시에 화를 채 느끼기도 전에 신체증상이 나타난다는 것도 자각하게 되었다. 신체증상은 자신에게 발동되는 사전 경계발령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어떤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올라오는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이 떠오르면 자신이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신체 증상이 먼저 나타난다. 신체증상을 느끼는 순간 더 이상 생각을 쫓아가거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신체 감각으로 전환시켜서 집중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습관적으로 생각을 쫓아가기도 하고 감정이 더 올라오기도 하지만,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했다. 신체 감각은 일순간 최고점으로 올라갈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진다. 신체 감각이 사라지면서 떠올랐던 생각과 사고도 저절로 사라지기도 한다. 가끔은 왜 화가 났는지 그 이유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생각, 감정, 상황에 끌려 다니지 않고, 그 상황에 느껴지는 신체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다.

또 한 가지 화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투사’다.

“투사는 개인의 성향인 태도나 특성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이다.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이러한 투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과 같은 감정을 돌림으로써 부정할 수 있는 방어기제라고 본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은 자기 내부에 있는 감정이 상대방에게 투영된 것이다. 언젠가 한 사람을 미워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실은 내가 그를 미워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 투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화내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투사이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은 내가 상대방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 또 상황에 대해 느껴지는 모든 감정은 내면의 감정이 그들로 인해 투영된 것일 뿐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화가 날 때 상대방이나 상황 탓을 하는 대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번뇌가 깨달음이라는 말은 아주 정확한 말이다. 화 나는 감정을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으로 활용하면, 그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 된다. 회광반조이다.

“회광반조(回光返照)는 불교의 개념으로서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으로 각 개인은 자신의 본심, 즉 참나를 다른 데서 찾으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찾으라는 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능하면 화내지 않고 살고 싶다. 화의 원인을 알고 있다. 이기심, 열등감, 투사 때문이다. 이들은 화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마음공부를 위한 도구들이고, 깨달음의 씨앗이다.

약 십 년 전, 딸아이가 덴마크에 교환학생으로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마음공부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과제가 주어졌다. 가족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어오라는 과제였다. 딸에게 전화해서 아빠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럭 아빠!”라고 했다. 억울하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다. 화내는 아빠의 모습이 깊게 각인되어 있었다. 미안했다. 언젠가는 딸아이가 “아빠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네.”라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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