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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걷기 일기0240] 걱정 없는 하루를 사는 법

by 걷고 2021. 6. 21.

날짜와 거리: 20210618 - 20210620 36km
코스: 서울 둘레길 (구기동 – 구파발, 빨래골 – 우이역) 외
평균 속도: 4.5 km
누적거리: 4,226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며칠간 딸과 두 손주가 함께 지내다 집으로 돌아갔다. 딸과 두 명의 손주가 머무는 동안 아내는 정신없이 보냈다. 음식 만들랴, 손주 돌보랴, 집안일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두 명의 손주를 돌보는 일에 세 명의 어른 손으로는 부족하다. 놀아줘야 하고, 기저귀 갈아줘야 하고, 목욕시켜야 하고, 집안 정리해야 하고, 음식 만들고 먹여줘야 하고, 요구 사항 들어줘야 하는 등 할 일이 너무 많다. 할아버지인 나의 역할은 별로 없는데도 피곤하다. 아내는 조용히 지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인데 아이들이 와서 집안이 난장판이 되고, 수많은 소음을 만들어 내고,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피곤함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면서 괜히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내의 수고에 비하면 하는 일도 없는데, 더 피곤함을 느끼니. 평상시보다 많은 일을 하는 아내의 건강이 신경 쓰이기도 한다. 몸살이 나지 않은 아내를 보며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피곤함도 느끼겠지만,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두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쌓아나가고 있다. 손주들이 없는 어제, 오늘도 아내는 손주들과 있었던 추억을 얘기하며 웃는다. 그 얘기를 들으며 나도 웃는다. 가족!

아이들이 집에 와 있는 동안에도 매일 걸었다. 물론 아이들이 와 있건 아니건 상관없이 거의 매일 걷는다. 지난 3일 간 36km를 걸었다. 집 주변인 상암동 공원을 혼자 천천히 걸었고, 이틀은 서울 둘레길을 길동무들과 함께 걸었다. 혼자 걷는 즐거움도 있고, 함께 걷는 즐거움도 있다. 길을 걷는 것은 물 맛처럼 아무 맛이 없다. 다만 목이 마를 때 물을 마시면 시원하듯, 몸과 마음이 지칠 때 걸으면 상쾌해진다. 더위 속에서 피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도 걷기다. 서울 둘레길 중 북한산 구간은 특히 나무 그늘이 많아 햇빛을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은 땀을 식혀준다. 북한산 정상과 주변을 감상하며 잠시 쉬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계단길과 산길을 올라가면 숨이 턱 밑까지 차지만, 그 이후에 맞이하는 능선의 편안함은 고통에 상응하는 희열을 제공해준다. 다양한 길의 모습을 걸으며 느끼는 재미도 있다. 나무 데크 길, 돌계단, 흙 길, 바위 길 등 길도 다양하고, 길의 모습도 다양하다. 어떤 계단 길은 마치 뱀처럼 고불고불하다. 주변에 있는 나무와 꽃의 이름을 몰라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이 조금 안타깝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듯이, 꽃과 나무의 이름을 안다면 그들과 교감하는 즐거움도 클 것이다.

어제는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나는 왜 걷는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많은 이유를 얘기할 수 있다. 건강, 걷기를 좋아하니까, 길이 좋아서, 사람들과 함께 얘기하는 것이 좋아서, 걷기 외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을 때우기에 좋으니까, 글 쓰기 위해서 등등. 모두 맞는 얘기긴 하지만, 뭔가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정말 왜 걸을까? 스스로 걷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어서, 걷기라도 해야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무료한 하루 보내기가 싫어서 정도가 떠올랐다. 무료함, 보람된 하루, 살아있다는 느낌은 하나이다. 무료하기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고, 무료함을 없애며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이 답변도 그다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꼭 무엇을 해야만, 또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할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주어진 일상을 받아들이고 살면 안 되는 걸까? 살아있는 동안 꼭 무엇을 해야만 된다는 생각 없이 살면 안 될까?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편안한 마음을 지니고 살면 안 될까? 글을 쓰고 정리해보니 걷는 이유가 좀 더 선명해졌다.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어제 TV에서 들었던 티베트 속담이 생각난다. “걱정이 걱정한다고 사라진다면, 세상에 걱정할 일이 없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진다면, 모든 걱정은 걱정만 하면 사라지니 걱정할 일이 없다. 하지만, 걱정을 없애기 위해 걱정하면 오히려 걱정이 늘어나고 나아가 불안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세상 모든 걱정은 어쩌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날씨 걱정한다고 날씨가 변하지 않는다. 세상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속상해한다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재테크를 한다고 해서 돈이 원하는 만큼 벌게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오늘 편안하고 행복할 것이다. 내일 역시 ‘오늘’을 살면 내일인 ‘오늘’도 편안할 것이다. 언제 죽을지, 또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걱정만 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전혀 없다. 지금-여기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을 하면서 편안하고 즐거우면 되는 것 아닌가?

아내가 딸과 두 손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아내는 단지 이번 일만이 아니고, 늘 매 순간을 온전히 수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와 살아온 35년 이상의 세월 속에서 아내는 늘 같은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아내를 보며 많이 배우고 살아가면서 점점 더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 자신의 역할을 너무 완벽하게 잘 해내고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두 손주와 놀 때는 어린아이가 되어서 같이 놀아주고, 애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뜬금없이 떠오르는 애들과의 추억을 얘기하며 웃는다. 아내는 하루를 정신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밤에 자리에 누우면 금방 잠에 빠진다. 아내는 늘 웃고 활기차게 살고 있다. 어쩌면 그런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루하루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 이상 더 좋은 삶의 비결이 없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 둘레길 구간 중 우이동 솔밭 공원이 있다. 오래된 소나무가 가득한 공원이다. 그 공원을 지날 때마다 늘 이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좋은 정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제 바라본 소나무들은 내게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비 오면 비를 맞고, 눈 오면 눈을 맞고, 바람 불며 바람을 맞고, 좋은 햇빛이 내리면 햇빛을 맞고, 사람들이 몸을 비비거나 발길질을 해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소나무의 삶. 시간이 흘러 자연의 풍화작용과 죽음을 기꺼이 수용하는 소나무. 그들에게 죽음은 그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요즘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있다. 산문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한 편의 글에 얼마나 많은 삶, 경험, 독서, 노력, 고통이 녹아난 것인지 보게 되었다. 나는 오늘마저 읽지 못한 그 산문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조금 선선해지면 주변을 걷고 싶다. 또 비록 글 솜씨도 없고, 내용도 형편없는 글이라 남이 뭐라고 하든 글 쓰는 재미도 큰 재미기에 계속 쓰려고 한다. 오늘 할 일은 저절로 정해진 것 같다. 걷고, 글 쓰고, 책 읽고. 할 일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다시 원점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니 그냥 한다. 소나무가 그냥 서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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