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햇빛도 없고, 바람도 없다. 경복궁 역사 안에도 무더위가 가득하다. 이 더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더위에 눌려 무기력하게 살고 싶지도 않다. 계절과 날씨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따라서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이들과 싸울 수도 없다. 이들은 우리의 싸움 상대도 아니고, 통제 대상도 아니고, 적도 아군도 아닌, 다른 세상의 존재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세상이 있다. 그런데 이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의 존재, 즉 날씨나 계절과 우리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서로 영향을 미치며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때로는 협박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 별 효과가 없다. 다른 존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변화 덕분에 다른 존재가 스스로 변화된다. 이는 마치 빛과 그림자와 같다. 그림자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빛을 비추는 방법과 방향 밖에 없다.
변화는 생명이다. 변화가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 그렇다고 변화가 반드시 긍정적이고 좋은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부정적인 변화를 맞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변화 역시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자신의 발전을 위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변화보다 더 나쁜 것은 멈춤이다. 생각의 멈춤, 신체 활동의 멈춤, 사람과의 관계의 멈춤, 호흡의 멈춤,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의 멈춤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갈 뿐이다. 가끔은 이런 상황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는 자기기만이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 뿐이다. 자발적 멈춤이라는 제도도 있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안거, 무문관 수행, 일시적 묵언 수행 등이다. 하지만 이는 겉보기에는 무기력하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무한한 생명력이 활발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멈춤도 모두 같은 멈춤이 아니다. 자발적 멈춤은 그 내부에 활화산 같은 생명력이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살아있는 멈춤이다.
어제 우리는 무더위 속에서 북한산을 걸었다. 무더위에 저항하기 위한 걸음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의 일상이 된 걷기를 한 것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우리는 걷는다. 걸으며 체득한 삶의 지혜다. 걷기에 좋은 날씨만을 선택한다면 걸을 수 있는 날이 없다. 너무 더워서, 비가 와서, 눈이 와서, 바람이 불어서, 비 예고가 있어서, 추워서, 등등 수많은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핑계는 비겁하다. 그냥 걷기 싫어서라는 표현이 오히려 솔직하다. 걷기에 안 좋은 날씨는 없다. 다만 조금 불편함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걸으며 불편함이 즐거움으로 변화하는 상황을 만끽하며 더 이상 불편함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떤 날씨든 모두 걷기에 참 좋은 날씨다. 다만 일기 예보와 날씨 상황을 잘 판단해서 안전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걸으면 된다.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고, 때로는 직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상황을 자신에게 적합하고 유리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사고력과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다. 게다가 많은 걷기 경험을 몸으로 익혔기에 나아가거나 멈추거나 하는 상황 파악을 할 줄 아는 지혜도 갖고 있다. 이 멈춤은 생명력을 키우는 멈춤이다.
어제 우리는 무더위를 즐겼다. 어떤 날씨도 즐길 줄 아는 멋진 길벗들이다. 막걸리를 얼려 온 길벗도 있고, 전을 부쳐 안주를 만들어 온 길벗도 있다. 수박을 먹기 좋게 썰어 준비해 온 길벗도 있고, 복숭아를 차갑게 유지한 상태로 들고 온 길벗도 있다. 땀을 흘린 뒤 마시는 차가운 막걸리와 그에 어울리는 안주의 조합은 무더위가 무엇인지 느낄 틈조차 없다. 오히려 무더위가 고마울 따름이다. 무더위 덕분에 찬 막걸리는 더욱 힘을 발휘하고, 한잔 마시며 느끼는 그 쾌감은 더 강하다. 같은 상황도 어떻게 대처하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변한다. 실은 상황이 변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상태가 변했기에 상황이 변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빛의 방향을 바꿔 우리가 원하는 그림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삶의 지혜를 깨달은 현명한 친구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다.
빨래골에 와서 졸졸 흐르는 물에 발을 담고 쉰다. 예전에 상궁들이 이곳에 와서 빨래를 했던 곳이라고 한다. 궁에 살던 상궁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나들이였을 것이다. 비록 빨래를 하는 고단함도 있었겠지만, 그 고단함은 궁 밖 나들이의 즐거움에 비할 바가 못 되었을 것이다. 상궁들도 빛의 방향을 바꿔 자신이 원하는 즐거운 상황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그 물에 발을 담그며 발에게 휴식을 준다. 이때 막걸리는 빠질 수 없는 오락거리가 된다. 그렇다. 막걸리는 더 이상 술이 아니다. 막걸리는 우리를 웃고 떠들 수 있게 만드는 오락거리다. 그러니 막걸리를 마신다고 흉볼 일이 아니다. 오히려 무더위를 즐길 줄 아는 지혜를 지닌 사람이라고 칭찬을 해주어야 마땅하다. 허긴 흉을 보든 칭찬을 하든 무슨 상관이랴? 우리 스스로 이미 무더위를 즐기고 있고, 그 방편으로 발을 흐르는 물에 담고 시원한 막걸리를 오락거리 삼아 한잔 마시고 있으니 누가 어떤 평가와 판단을 내리든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만나서 반갑고, 시간 여행을 떠나느라 택시 타고 온 길벗과의 만남은 오래 기억에 남을 추억이다. 얼려온 막걸리를 들고 오느라 애쓴 길벗의 노고 덕분에 우리는 즐거운 오락을 할 수 있었고, 정성껏 싸 온 과일과 간식은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고마울 뿐이다. 무더위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이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무더위는 피할 상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지혜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고,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의 진가를 발휘하게끔 만들어 주는 고마운 친구다. 함께 걸은 길벗은 전우가 된다. 생사의 고락을 함께 한 전우애의 끈끈함은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다. 이 전우애 덕분에 우리는 걷고 또 걸을 것이다. 그리고 전우애의 깊이는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어제 만난 길벗, 주어진 모든 상황에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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