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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서울둘레길마음챙김걷기

홀로 걷는 즐거움

by 걷고 2025. 4. 15.

오랜만에 홀로 걷는다. 물론 집 주면은 늘 혼자 걷는다. 하지만 서울 둘레길이나 해파랑길, 인제천리길 등 걷기 학교에서 진행하는 길에서 혼자 걷는 일은 처음이다. 늘 길벗과 함께 걷는다. 함께 걷는 것이 익숙해서인지 서울 둘레길을 홀로 걸으려니 처음에는 약간 어색하다. 그만큼 함께 걷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가끔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원래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도 좋다. 홀로 걸으면 우선 홀가분하다. 걷는 속도나 쉬는 것, 먹는 것도 어느 누구 신경 쓰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때로는 걷다가 언제든지 그만두고 하산할 수도 있다. 함께 걸으면 길벗과의 만남과 수다라는 큰 즐거움이 있다. 함께 걷기에 서로에 대해 지켜야 할 사항들도 있다. 때로는 이런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달라 불편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나아가 성장과 성숙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홀로 걷거나 함께 걷거나 걷는 것은 무조건 그냥 좋다. 그러니 걷고 또 걷자.

전철 안에서 각묵 스님의 아나빠나삿띠 유튜브 법문을 들었다. 요즘 관심 갖고 이 공부를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다. 불교 공부를 하며 부처님 법문이 마치 시계 속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 속에는 다양한 크기의 수많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그 톱니바퀴 중 아주 작은 톱니 하나라도 망가지게 되면 시계는 멈춘다. 부처님 말씀은 모두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도 없고, 나 스스로도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아 설명할 수도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한다. 부처님 가르침 중 한 가지 어긋나게 살면 전체가 망가진다. 한 가지가 제대로 자리 잡으면 전체가 안정된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의 뿌리에 수많은 가지와 잎이 있을 뿐이다.

사념처(四念處)는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마음 챙기는 수행법이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은 감각, 마음, 마음현상과 모두 연결되어 있다. 호흡도 신념처 수행에 들어간다. 호흡이 몸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근데 호흡을 하고 있지만 마음이 아직 훈련되지 않아 호흡에만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 방황한다. 몸이 간지럽거나 다리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수념처가 된다. 마음이 과거나 미래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심념처가 된다. 분노나 탐욕이 올라오면 법념처가 된다. 따라서 호흡 마음챙김 수행은 신념처이자 동시에 다른 세 가지 모두를 수행하는 사념처 수행이 된다. 이렇게 모든 법은 서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제야 겨우 이 내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걸으며 발의 감각에 집중한다. 걷기 명상은 신념처 수행이다. 발의 감각을 느끼며 걷는다. 수념처 수행이다. 후기를 어떻게 쓸까? 걷기 학교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까? 이런 생각이 올라올 때 다시 걷기에 집중한다. 심념처 수행이다. 갑자기 예전의 잘못된 행동이 떠올라 민망해진다. 알아차리고 다시 걷기에 집중한다. 법념처 수행이다. 지루해진다. 지루해진 것은 법념처의 요소 중 5 장애의 하나인 해태와 혼침이다. 다시 발의 감각에 더욱 집중하며 깨어난다. 혼자 이렇게 걷기 명상을 도구로 삼아 재미있는 놀이를 하며 걷는다. 수행이 놀이라는 표현이 잘못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오늘 내게는 놀이로 다가왔다.

아직 목감기가 완쾌되지 않아 기침과 콧물을 많이 흘리다 보니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플 뿐이다. 머리가 아픈 것은 내가 아픈 것이 아니다. 단지 두통을 느끼는 머리가 있을 뿐이다. 다리가 뻐근해진다. 다리가 뻐근할 뿐이지, 내가 뻐근한 것은 아니다. 감각을 느끼는 신체 부위는 있는데 그 주인공은 없다. 그럼 나는 어디에 있나? 나는 누구인가? 과연 ‘나’라는 존재는 있는가? 불교에서는 무상, 고, 무아를 삼법인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비로소 불교라고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인장이다. 태어날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어떤 ‘나’가 과연 ‘나’인가? ‘나’라고 할 수 있는 불변의 존재가 없으니 무아다.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생물이나 무생물은 생주이멸의 법칙을 따른다. 태어나고 머물다 변하며 사라진다. 무상이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변하니 괴롭다.

이제는 책을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고 금방 모두 잊어버린다. 그래서 중요한 내용은 노트에 써서 보관한다. 어제도 책을 읽으며 글로 정리하고 있었는데, 다른 노트에 지금 공부하고 있는 내용과 거의 같은 내용이 정리된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썼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고, 그 내용 역시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고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 내용의 원본 격인 책을 다시 찾아 훑어보기도 했다. 기억에 남지 않으니, 글로 정리하고, 그래고 기억하지 못하니 반복적으로 읽고 쓰고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반복을 통해 조금씩 더 이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 <숨> (송기원 명상소설)을 다시 읽었다. 저자의 수행 경험이 단계별로 서술되어 있는데, 처음 읽었을 때보다 조금 더 많은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걸으니 스스로 놀잇감을 만들어내며 즐겁게 걸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누군가가 갑자기 연락을 해서 중간에 합류하겠다는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했다. 이런 상상도 즐겁다. 아무튼 걷는 것은 혼자든, 함께든 무조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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