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요서울둘레길마음챙김걷기

지혜로 벗어나자

by 걷고 2025. 4. 23.

하루 종일 비 소식이 있는 날이다. 집 떠나기 전부터 마음이 설렌다. 비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지만, 비가 온다니 마치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 느낌이다. 우비, 스패츠, 우산 등 비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오랜만에 하루 종일 비를 맞고 걸었다. 좋았다. 행복하다는 의미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내게 행복은 무탈한 것이 행복이다. 그러니 이 기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행복보다는 ‘좋았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걷는다. 때로는 함께 얘기하며 걷는다. 비를 맞으며 우리는 스탠딩 칵테일 파티하듯 즐기며 걷는다. 손에는 우산을 들고 우비를 쓰며 서로 상대를 바꿔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멋진 스탠딩 칵테일파티다. 때로는 서로의 침묵을 존중하며 거리를 두며 걷는다. 우중 침묵 걷기!! 각자 어떤 생각을 하며 걷는지는 모르겠지만 침묵은 그냥 침묵이 아니고 ‘고귀한 침묵(noble silence)'이다. 말보다 침묵의 힘은 훨씬 더 강하다. 침묵을 통해 자신을 만나고, 성찰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며, 그 에너지를 나누며 살아간다.     

 

처음부터 우중 걷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부터 좋아하게 된 거 같다. 산티아고에서 큰 비를 여러 번 맞으며 비, 천둥, 번개에 대한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또한 비로 인한 불편함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답은 매우 간단하다. 비를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비를 맞이하면 된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상을 쓰고 한다고 해서 설거지가 쉬워지지 않는다. 이왕 할 설거지라면 즐겁게 물과 그릇과 손의 감각을 느끼고, 그릇끼리 부딪치는 소리를 음악 삼아 들으면 하면 된다. 훌륭한 설거지 명상이다.     

 

우중 걷기를 즐기다 보니 행여 비가 그칠까 걱정이 된다. 대모산, 구룡산을 걷는 대신 탄천변을 따라 걷기로 참가자들과 합의를 했다. 육산인 이 산은 비가 오면 미끄러울 수가 있어서 안전한 천변을 따라 걷기로 했다. 날씨를 즐기고 맞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철저한 준비다. 그리고 계획은 언제든 상황에 따라 수정될 수 있다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해서 걸었기에 더욱 즐겁게 비를 맞고 걸을 수 있었다. 매봉역에서 마친 후 근처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주문하고, 어닝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바라보고, 비를 쳐다보며 술 한잔 마시니 이 또한 신선놀이다.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와 간단한 다과를 주문했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키피숍인데 무척 근사한 곳이다. 커피맛은 잘 모르지만 분위기는 우아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아잔차의 마음 (Food for the Heart)>이라는 책이다. 태국 승려인 아잔차 스님의 법문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고 편안한 단어로 말씀하신다. 기억나는 구절이 있다. “몸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상황이 불편하면 그 상황에서 몸이 벗어나려고 애쓴다. 비록 몸이 그 상황에서 벗어난다손 치더라도, 마음의 불편함은 그대로 남아있거나 오히려 더 악화되기도 한다. 지금 할 일을 하지 못하니 그 할 일이 쌓여 더 큰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불교 공부를 시작한 지는 한참 되었지만, 여전히 초심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사찰을 찾고 스님 법문 들으러 다녔던 수많은 시간들은 일종의 도피행각이었다. 처한 상황이 힘들어서 도망 다녔던 것이다. 피한다고 상황이 좋아질 리가 없겠지만, 어리석게도 늘 피하며 살아왔다. 공부를 한 것이 아니고, 회피하고 도피하는 연습만 한 것이니 공부에 진전이 없을 수밖에. 몸이 벗어나는 것, 피하는 것은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자신을 옥죄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면 주어진 상황을 있는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 벗어나는 것이라는 사실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굳이 어느 사찰을 찾아가지 않고, 집에만 머물러도 편안하다. 마음공부는 '지금-여기'에서 매 순간 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불교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면 예전에 비해 조금씩 더 보이고 들린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떤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마주친다. 힘든 상황도 버티며 할 일을 하며 지낸다. 예전에는 사소한 불편함도 견디지 못해 도망 다녔거나 술로 잊곤 했다. 하지만 결국 도망 다니지도 못했고, 잊지도 못했고, 힘든 상황을 견디는 힘은 더욱 약해져 갔다.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견디는 힘이 조금 생겨서 견디고 버티며 살아간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견디고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그리고 다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견디고 버티는 것이 아니고 맞이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같은 상황도 견디고 버티느냐 아니면 맞이하고 수용하느냐에 따라 펼쳐질 상황은 매우 다르게 전개된다. 같은 일도 견디고 버티면 괴로움이 되고, 수용하고 맞아들이면 행복이 된다. 설거지를 인상 쓰며 하느냐, 아니면 명상하듯 즐기느냐의 차이가 있듯이.     

 

우중 걷기를 불편해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만났고, 우중 걷기를 즐기고 있는 지금의 나 자신도 만났다. 비 오는 상황은 같다. 하지만 비를 맞이하는 나 자신은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비 오는 날이 더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변하는 나 자신을 보고 ‘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떤 모습이 ‘참 나’일까? 변하기 전의 모습일까? 아니면 변한 후의 모습이 ‘참 나’일까? 또 나의 이런 태도나 모습도 앞으로 시간이 흘러 변할 것이다. 그럼 지금의 ‘나’는 다른 ‘나’가 된다. 그러니 ‘나’라고 판단되고 생각되는 존재는 없다. ‘무아’가 된다. ‘무아’의 바탕은 ‘무상’이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없고 변한다는 자연의 철칙인 ‘무상’이다. ‘무상’ 한 것을 내 것이라고 우기고 지키려 하니 ‘괴로움’이 발생한다. 

 

불교 공부를 하며, 길을 걸으며,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삼법인, 즉 무상, 고, 무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있다. ‘나’가 없음에도 불편함과 화냄과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다. 주인 없는 집에 도둑놈이 들어와 집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분한 일이다. 이 분한 마음으로 공부를 지어가려 한다. 어제 우중 걷기가 내게 준 선물이다. 아니다! ‘내게'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 ’나‘가 없는데 어떻게 ’ 내게 ‘라는 단어가 성립될 수 있을까? ’ 나가 아닌 나‘를 깨닫게 만들어주기 위한 자연의 선물인 어제 내린 비에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함께 걸은 길벗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삶 속에 녹여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728x90

'금요서울둘레길마음챙김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과 그림자  (3) 2025.06.25
정체성 회복  (0) 2025.05.06
홀로 걷는 즐거움  (0) 2025.04.15
시절 인연  (0) 2024.12.27
브런치 북 <한 걸음에 미소, 한 걸음에 평화> 발간  (0) 2024.09.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