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트레일 소풍
DMZ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는 사전출입허가 구간을 걷습니다. 사단법인 인제천리길에서 주관하는 ‘인제천리길 함께 걷기’ 행사에 참여하여 다른 분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입구에 모여 군인들이 인원 점검을 하는 모습을 보며 군사지역에 들어왔다는 약간의 긴장감도 느껴집니다. 군대 근무 시 두어 달 파견 나와 DMZ 내 GP 초소 근무를 섰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아직도 군사지역이 주는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며 남북 분단 현실을 체감합니다. 그런 현실은 현실이고 우리는 걸으러 왔습니다. DMZ 민통선 안을 걷는 과정은 까다롭습니다. 인원 통제에 따른 불편함이 있기도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며 오히려 그 불편함이 주는 긴장감이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킵니다.
반쯤 열린 입구를 통해 드디어 첫 발을 내디딥니다. 입구 왼쪽에는 군 통제 지역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북한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북한은 틀림없이 우리나라의 일부인데 이제는 먼 나라가 되었습니다.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통일을 기대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만 왠지 자꾸 이 기대감은 기대만으로 그치고 점점 더 다른 나라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남북 가족 상봉의 꿈은 무너지고, 애타게 서로를 그리워하고 만나기를 기대하는 희망도 무너져갑니다. 아마 몇 년 후에는 이산가족이 되신 분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걷습니다. 초소를 지나 초입에 들어서며 설렘을 느낍니다. 민통선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설렘과 긴장감, 두 가지입니다. 길을 걸으며 긴장감은 사라지고 설렘이 커집니다. 마치 다른 나라 아니면 오지에 온 느낌을 안고 걷습니다. 1,172m 칠정봉을 넘어 진부령까지 걷는 길입니다. 차를 타고 이동해서 일부 구간을 건너뛰고 우리가 걸은 거리가 총 17.3km, 걸은 시간은 5시간 50분입니다. 길은 임도로 걷기에 편안한 길이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조금 지치게 만듭니다. 반복되어 이어지는 임도는 우리가 기대했던 길과는 조금 달라 약간의 실망감도 느낍니다.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길이기에 비경도 숨어있고, 원시림 같은 느낌도 있고,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숲길을 걸을 기대를 안고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길은 매우 단조로운 군사용 임도입니다. 그 길이 그 길입니다. 걸을 수 있는 길과 그렇지 않은 길 사이에는 철조망 같은 펜스가 있습니다. 통제지역에는 ‘지뢰’ 표시가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슬픈 상처입니다.
정상에 올라 점심 식사를 합니다. 밥차가 와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줍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음식은 매우 맛있었습니다. 국과 밥, 그리고 다양한 반찬들이 트럭 위에 배치되어 멋진 산속 뷔페가 됩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준비를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원한 막걸리를 나눠 주신 길벗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와 맛있는 식사를 하며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는 즐거움은 이 길의 가장 하이라이트입니다.
식사 후 간단한 설문조사를 합니다. 이 길에 대한 만족도를 체크하는 설문입니다. 아마 이 자료가 앞으로 이 길을 더욱 발전시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만드는 기초 자료가 될 것입니다. 다시 인원 점검을 합니다. 마치 군인이 된 느낌으로 앉았다 일어서며 구호를 외칩니다. 다시 군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그립지는 않지만, 지난 세월은 아쉬움으로 가득합니다. 인원 확인 후 출발합니다. 내리막길입니다. 단조롭고 반복되는 길이어서 걷기에는 편안하지만 걷는 즐거움은 조금 사라집니다. 중간에 꽃을 보며 사진을 찍고 꽃에 대한 설명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밋거리가 없으면 재밋거리를 만들어 재미있게 노는 법을 아는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그 모습은 모두 초등학생입니다. 나이는 환갑 전후, 마음은 동심, 참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이 길의 종착점인 진부령 초소에서 다시 한번 인원 점검을 합니다. 이름을 확인한 후 나갈 수 있습니다. 들어올 때 인원, 나갈 때 인원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다소 시간을 걸리지만 중요한 확인 과정입니다. 차가 종착점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잔나비님께서 늘 수고해 주십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 처음에는 고요함만 가득합니다. 모두 피곤해서 잠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니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배낭에서 각종 간식을 꺼내 먹기 시작합니다. 점심 식사 후 서너 시간을 걸었기에 배고플 때가 된 것입니다.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즐겁게 소풍을 마칩니다. 우리는 걷거나, 먹거나, 수다를 떨거나, 아니면 잠을 잡니다. 참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가는 현자들입니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며 굳이 복잡한 생각을 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복잡할수록 더욱 단순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번 소풍을 마치며 단순함의 소중함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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