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길 원한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건강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몸이 건강하고 활기차면 마음도 따라서 활기차다. 마음이 편안하면 몸도 개운하다. 몸과 마음의 평온함, 편안함을 위해 종교를 찾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사람과 상황으로 인해 또는 덕분에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행복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행복은 순간에 느끼는 또는 일정 기간 느끼는 마음의 상태다. 따라서 마음의 상태가 변하면 행복은 불행으로 변할 수도 있고, 불행이 행복으로 바뀔 수도 있다. 마음의 상태는 대부분 마주치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변한다.
한 친구가 모임에 늘 늦는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자주 늦게 되면 은근히 짜증이 올라온다. 한두 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고, 또는 실수할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이는 실수가 아니고 습관이다. 한 사람의 지각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은근히 화가 올라온다. 또한 한 사람 때문에 모임 진행이 늦어지는 것도 영 마뜩잖다. 늦게 온 것은 그의 행동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 때문에 그를 미워하게 된다. 그가 한 행동임에는 맞지만, 그의 행동이 그의 전체는 아니다. 반복되는 지각으로 인해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미 내 안에 어느 정도 각인되어 있는 거 같다.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A가 실수할 때는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그가 실수할 때는 웃음이 잘 나오지 않는다. 즉 그의 과거 행동 때문에 지금의 그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이미 왜곡된 마음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행동이 바른 것은 아니지만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를 싫어하는 나의 태도 역시 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단체 행동에서 서로 지켜야 할 묵언의 약속은 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그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이 갖고 있는 거 같아 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은 편이다. 그래서 늘 마음을 지켜보려 노력한다. 여전히 잘 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거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원인을 제공했다며 상대방을 탓하는 못된 습관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결국 나의 마음만 불편해진다. 누가 실수를 했느냐를 따지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더군다나 그로 인해 나의 마음만 더욱 불편해지니 여러모로 손해 보는 장사다. 다른 사람들도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표현하거나 아니면 마음에 두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고, 나는 표현도 못하고 마음 한 구석에 쌓아두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감정을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명상을 꾸준히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많이 떠오를 때 자애명상을 한다. 물론 평상시에 마음이 한가로울 때 하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 기쁜 마음으로 만날 사람을 생각하며 할 때도 있다. 자애명상은 부족한 자애심을 증장하는 명상법이다. 예전에 8주간 자애명상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공부한 적이 있다. 맨 처음에는 과연 이 명상법이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효과를 느낄 수 있게 되며 이 명상법을 그 이후에 자주 하고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사람에 대한 신뢰 부족과 부정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으니 이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이지 상대방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에 속아 나를 힘들게 만들 뿐이다.
8주간 자애명상을 8명이 모여 지도자의 안내를 받으며 공부한 적이 있다. 명상을 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후 자애명상을 시작한다. 순서는 자신에 대한 자애명상부터 시작한다. “나 자신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나 자신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를 외우는 방법으로 자애명상을 진행한다. 그런 이후에는 한정되지 않은 대상 즉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을 위한 자애명상을 하고, 이어서 한정된 대상을 향해 자애명상을 한다. 가까운 가족이나 고맙고 존경하는 사람 또는 단체를 향해 자애명상을 한 후에 중립적인 사람, 즉 지인이나 생각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마지막에 미워하는 사람으로 대상을 넓혀나간다. 50분 정도 자애명상을 한 후에 자애명상 문구를 외우고 공덕을 회향하며 자애명상을 마친다. 두 시간에 걸쳐 자애명상을 하고 서로의 느낌을 나눈 후 모임을 마친다. 공부를 시작했을 때 들었던 말씀 중 한 가지가 자애명상을 꾸준히 하면 자애명상을 하는 대상이 아주 큰 얼굴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거였다. 6주 차 지난 후 길을 가는데 갑자기 한 대상의 얼굴이 영화 화면보다 더 크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이런 현상이 며칠간 지속되었다. 버스를 타며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자애명상을 하고 있는데 버스 승객이 내 안으로 쑥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들과 나 자신과의 경계가 사라진 경험을 했다. 이 두 가지 경험은 이 명상법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과 화가 올라올 때 길을 걸으며 자애명상을 한다. 자애명상 순서는 자신 -> 모든 생명 있는 존재 ->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운 사람 -> 중립적인 사람 -> 미워하는 사람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을 향해서 자애명상을 하지는 않는다.) 순서로 진행한다. 자애명상을 하다가 다른 생각이 떠오르거나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 다시 자애명상으로 돌아온다. 마음챙김 명상의 방법은 똑같다. 명상의 대상이 기둥이 되고, 즉 자애명상이 기둥이 되어 나를 고정시킨다. 마음이나 생각, 감정이 기둥과 멀어질 때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명상의 대상인 자애명상으로 돌아오면 된다. 길을 걸으며 발의 감각, 몸의 감각, 청각 등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자애명상을 하며 마음챙김 걷기를 할 수도 있다. 특히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길을 걸으며 그 사람에 대한 자애명상을 하며 걷는다면 그와의 만남이 훨씬 더 편안하고 즐겁게 될 가능성이 높다. 명상의 대상을 넓혀서 함께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애의 마음을 전하고 이어서 마음이 불편했던 대상에게도 자애의 마음을 전한다. 길을 걸으며 이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며 걷는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고 그를 예전의 모습으로 또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자애심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자애명상법이 마음에 든 이유 중 하나는 자애의 대상 중 자신을 우선으로 한다는 점도 있다. 자신의 마음이 자애롭고 넘쳐야 그 자애심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 메말라있고 자애의 샘에 물이 고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자애심을 나눠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애심이 넘쳐 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사랑을 줄 수 있다. 당분간 길을 걸으며 감각 집중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일정 시간을 자애명상을 위해 할애하며 걷는 것도 자애의 샘에 사랑의 물이 고이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한 친구가 모임에 늘 늦는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자주 늦게 되면 은근히 짜증이 올라온다. 한두 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고, 또는 실수할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 이는 실수가 아니고 습관이다. 한 사람의 지각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은근히 화가 올라온다. 또한 한 사람 때문에 모임 진행이 늦어지는 것도 영 마뜩잖다. 늦게 온 것은 그의 행동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 때문에 그를 미워하게 된다. 그가 한 행동임에는 맞지만, 그의 행동이 그의 전체는 아니다. 반복되는 지각으로 인해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미 내 안에 어느 정도 각인되어 있는 거 같다.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A가 실수할 때는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그가 실수할 때는 웃음이 잘 나오지 않는다. 즉 그의 과거 행동 때문에 지금의 그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이미 왜곡된 마음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행동이 바른 것은 아니지만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를 싫어하는 나의 태도 역시 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단체 행동에서 서로 지켜야 할 묵언의 약속은 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그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이 갖고 있는 거 같아 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은 편이다. 그래서 늘 마음을 지켜보려 노력한다. 여전히 잘 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거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원인을 제공했다며 상대방을 탓하는 못된 습관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결국 나의 마음만 불편해진다. 누가 실수를 했느냐를 따지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더군다나 그로 인해 나의 마음만 더욱 불편해지니 여러모로 손해 보는 장사다. 다른 사람들도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표현하거나 아니면 마음에 두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을 뿐이고, 나는 표현도 못하고 마음 한 구석에 쌓아두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감정을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명상을 꾸준히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많이 떠오를 때 자애명상을 한다. 물론 평상시에 마음이 한가로울 때 하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 기쁜 마음으로 만날 사람을 생각하며 할 때도 있다. 자애명상은 부족한 자애심을 증장하는 명상법이다. 예전에 8주간 자애명상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공부한 적이 있다. 맨 처음에는 과연 이 명상법이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효과를 느낄 수 있게 되며 이 명상법을 그 이후에 자주 하고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사람에 대한 신뢰 부족과 부정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으니 이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이지 상대방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에 속아 나를 힘들게 만들 뿐이다.
8주간 자애명상을 8명이 모여 지도자의 안내를 받으며 공부한 적이 있다. 명상을 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후 자애명상을 시작한다. 순서는 자신에 대한 자애명상부터 시작한다. “나 자신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나 자신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문구를 외우는 방법으로 자애명상을 진행한다. 그런 이후에는 한정되지 않은 대상 즉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을 위한 자애명상을 하고, 이어서 한정된 대상을 향해 자애명상을 한다. 가까운 가족이나 고맙고 존경하는 사람 또는 단체를 향해 자애명상을 한 후에 중립적인 사람, 즉 지인이나 생각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마지막에 미워하는 사람으로 대상을 넓혀나간다. 50분 정도 자애명상을 한 후에 자애명상 문구를 외우고 공덕을 회향하며 자애명상을 마친다. 두 시간에 걸쳐 자애명상을 하고 서로의 느낌을 나눈 후 모임을 마친다. 공부를 시작했을 때 들었던 말씀 중 한 가지가 자애명상을 꾸준히 하면 자애명상을 하는 대상이 아주 큰 얼굴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거였다. 6주 차 지난 후 길을 가는데 갑자기 한 대상의 얼굴이 영화 화면보다 더 크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이런 현상이 며칠간 지속되었다. 버스를 타며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자애명상을 하고 있는데 버스 승객이 내 안으로 쑥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들과 나 자신과의 경계가 사라진 경험을 했다. 이 두 가지 경험은 이 명상법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어떤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과 화가 올라올 때 길을 걸으며 자애명상을 한다. 자애명상 순서는 자신 -> 모든 생명 있는 존재 ->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운 사람 -> 중립적인 사람 -> 미워하는 사람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을 향해서 자애명상을 하지는 않는다.) 순서로 진행한다. 자애명상을 하다가 다른 생각이 떠오르거나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면 다시 자애명상으로 돌아온다. 마음챙김 명상의 방법은 똑같다. 명상의 대상이 기둥이 되고, 즉 자애명상이 기둥이 되어 나를 고정시킨다. 마음이나 생각, 감정이 기둥과 멀어질 때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명상의 대상인 자애명상으로 돌아오면 된다. 길을 걸으며 발의 감각, 몸의 감각, 청각 등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자애명상을 하며 마음챙김 걷기를 할 수도 있다. 특히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길을 걸으며 그 사람에 대한 자애명상을 하며 걷는다면 그와의 만남이 훨씬 더 편안하고 즐겁게 될 가능성이 높다. 명상의 대상을 넓혀서 함께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애의 마음을 전하고 이어서 마음이 불편했던 대상에게도 자애의 마음을 전한다. 길을 걸으며 이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며 걷는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고 그를 예전의 모습으로 또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자애심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자애명상법이 마음에 든 이유 중 하나는 자애의 대상 중 자신을 우선으로 한다는 점도 있다. 자신의 마음이 자애롭고 넘쳐야 그 자애심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 메말라있고 자애의 샘에 물이 고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자애심을 나눠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애심이 넘쳐 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사랑을 줄 수 있다. 당분간 길을 걸으며 감각 집중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일정 시간을 자애명상을 위해 할애하며 걷는 것도 자애의 샘에 사랑의 물이 고이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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