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온이 영하 14도. 최근 며칠간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집에서 아침 일찍 나오기 망설여지는 날씨지만 약속은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길 안내자의 마음이 이렇게 흔들리고 있는데, 참석자들의 마음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잠깐의 망설임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서둘러 나온다. 옷을 어떻게 입는 것이 좋을까 어젯밤에 미리 고민해서 정리해 놓았기에 옷 고르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나오니 막상 추위는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날이다. 예수님의 탄생 전야를 축하하는 의미 있고 기쁜 날이다. 불교에서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성도재일 전날 밤에 부처님의 고행을 기리며 철야 정진을 한다. 예수님과 부처님, 두 분 큰 어른의 탄생과 깨달음을 축하하는 전야제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예수님 탄생 전 날인 오늘도 우리는 길을 걷는다. 날씨, 기온, 주어진 상황과 상관없이 우리는 길을 걷는다. 땅 위의 길도 길이고, 삶 속의 길도 길이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삶을 걷고 있다. 특히 오늘처럼 의미 깊은 날에는 길 위에서 예수님의 삶을 기리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사랑은 나눔이다. 가진 것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미소를 나누고, 아픔과 슬픔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삶의 원동력이다. 나눔을 통해서 ‘너’와 ‘나’의 장벽이 허물어지며 우리로 하나가 된다. 나눔을 통해서 이기심을 버리게 되고, 이타심을 키우게 된다.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나눔을 배우고, 나눔을 통해서 자신을 확장시켜 나간다. ‘작은 나’를 버리고 좀 더 ‘큰 나’로 다시 태어난다. 빵 한 조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가진 것을 손에 쥐고 내놓지 않으면 모두 굶어 죽을 수도 있지만, 내 손에 쥔 것을 나누면 함께 즐겁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 나의 것을 내려놓는 것이 바로 나눔이다. 나의 손이 비어야만 그 손에 다른 것을 받을 수 있다. ‘나’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비로소 ‘참 나’를 찾을 수 있고, ‘너’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참 나’와 ‘참 너’가 만나 천국을 만들고 불국토를 만든다. 그것이 예수님의 은총이고 부처님의 가피다.
예수님 탄생 전날 걸으며 참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길동무들을 만난다. 폴리님은 추위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핫 팩을 선물해 주셨다. 피치님은 정성스럽게 다양한 사탕과 과자를 개별 포장해서 나눠주셨다. 정성스럽게 커피를 직접 내려오신 도니님과 그 커피에 위스키를 살짝 섞어주는 폴리님의 나눔도 보았다. 히랸야님이 준비해 온 호두강정과 피치님이 준비해 온 치즈 호두과자도 맛있는 나눔이다. 간식도 정성껏 준비하는 길동무들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 고맙고, 그 모습을 보며 참다운 나눔을 배운다. 오늘처럼 의미 깊은 날은 발걸음을 조금 천천히 하며 주변도 살피고 자신도 돌아보는 여유를 되찾는다. 늘 직진 본능으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빠르게 걷던 발걸음을 잠시 늦추며 여유롭게 걷는다. 눈과 추위로 미끄러워진 길도 우리의 걷는 속도를 늦춰준다. 오늘 같은 날은 미끄러운 길조차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에게 천천히 걷는 여유를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제부도 입구에 있는 커피숍 ‘바닷가에서 cafe'에 들어가 몸도 녹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마음씨 좋고 인상도 좋으신 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신다. 오늘 같은 날은 커피만 마시는 것보다는 커피에 잘 어울리는 달달한 쪽 케이크를 함께 먹는 것이 어울린다. 히란야님께서 흔쾌히 쪽 케이크를 사주셨고, 길 안내자인 나는 커피로 오늘 참석하신 길동무님들께 감사함을 표현했다. 카페 주인 부부는 커피에 어울리는 간식과 과일을 내놓으시며 나눔을 몸소 실천하신다. 가톨릭 신자이신 두 분은 기쁜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하고 우리를 맞이하신다. 커피에 위스키를 섞어 마시니 위스키 향이 짙게 올라온다. 약 한 달 반 만에 느끼는 술 향기에 취하고 길동무들의 나눔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 몸도 마음도 흐트러진다. 그 흐트러짐은 그간 살기 위해 스스로 쌓아놓은 자신의 성을 흔들어 버린다. 그 혼돈과 혼란은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가장 좋은 기회다. 혼란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길을 걸으며 길동무들과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나눔을 배운다. 나눔을 통해 좀 더 큰 세상을 만나게 된다. 큰 세상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미미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며 비로소 ‘자기’라고 생각해 온 ‘자기’를 버리고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나 바라본 세상은 어제와 같은 세상이지만 이미 다른 세상이 된다. 지옥이 천당으로 변하는 기적이 실현된다. 예수님께서는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천당을 보여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옥과 천당이 별도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당이 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을 주신 분이다. 자신의 것을 쥐면 지옥이고, 자신을 내려놓거나 버리면 천당이 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늘 길동무들의 무심한 나눔을 통해서 자신을 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떤 기대나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순수한 나눔을 하는 마음이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그분들을 통해 어제의 지옥이 오늘은 천국이 된 기적을 실현해 보이셨다.
뒤풀이를 한 후 스위치님이 커피를 사주셨다. 나눔을 실천하신 것이다. 비록 뒤풀이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비단님은 매번 경기둘레길 진행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고, 빨강내복님은 묵묵히 후미를 지키며 우리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신경 써 주셨다. 이 또한 큰 나눔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다른 분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나눔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신이 봉사를 했거나 나눔을 했다고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쑥스러워한다. 아름다운 천국의 모습이 이럴 것이다. 오늘 걷기는 지옥 같은 세상을 천국으로 바꿔주신 예수님의 기적을 길동무들을 통해서 체험한 날이고, 그 기적이 바로 우리들의 나눔을 통해서 실현된 날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여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길 마음 모아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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