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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경기 둘레길 7코스 후기] 사회적 걷기

by 걷고 2022. 7. 17.

 약간 흐리고 소나기 예보가 있는 날이다. 햇빛이 강하지 않아 걷기에는 아주 적합한 날씨다. 물론 우리는 날씨와 상관없이 걷는다. 날씨는 날씨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우리는 우리의 모습대로 살아간다. 경기 둘레길 7코스는 반구정에서 시작해서 율곡 습지 공원에서 끝나는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진 길이다. 도로를 걷는 경우도 많아서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농로를 걸으며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녹색 물결을 보는 즐거움도 이 길을 걷는 즐거움 중 하나이다. 가뭄 때문에 걱정을 했지만, 다행스럽게 논에는 물이 가득하여 풍년을 예고하고 있다. 얼마 전 내린 비 때문인지, 아니면 치수를 잘 한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건강하게 자라는 벼를 보며 마음도 넉넉해진다.     

 이 길을 걸으며 화석정(花石亭)을 만난다 율곡 이이 선생님께서 지은 정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면 선조가 피난 갈 것을 예상하고 대비하기 위해 지은 곳이다. 선조와 그 일행은 깜깜한 밤에 건너기 위해 화석정을 태우는데, 율곡 선생님은 이를 예견하고 매일 기름걸레로 마룻바닥을 닦으셨다고 한다. 최근에 정찬주의 장편소설 ‘이순신 7년’을 읽었다. 얼마 전 읽었던 소설의 현장을 지나니 읽으며 느꼈던 선조에 대한 원망이 다시 올라온다. 백성들을 속이며 군주로서의 역할과 권위, 책임을 포기하고 오직 살기 위해 야반도주하는 모습을 보며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주변에 있는 대신들의 모습도 꼴불견이다. 나라와 백성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직 자신만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만 보인다. 지금의 정치인들의 모습도 그들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정치인의 DNA는 일반 국민들 것과는 다른 것 같다. 일반 국민에게 생존을 위한 DNA가 저장되었다면, 정치인들의 DNA는 오직 자신들만의 안위와 권력을 위해 국민들을 이용하는 DNA가 저장된 것 같다.    

  

 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은 ‘U 자형’으로 굽어진 강 길을 따라 흘러간다. 치수의 지혜를 깨우친 조상님들은 강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무지한 현대인들은 물길을 바꾸려고 억지로 강물을 꺾어놓는다. 그런 무지에 대한 피해는 오로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물길이 만들어진 이유는 자연현상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고 자기 멋대로 바꾸고 통제하려고 한다. 그리고 발생한 피해는 개발의 이면 속에 감춰진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배우며 살아가는 현대인이 되길 바랄 뿐이다. 화석정은 율곡 선생님께서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와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논하고 시를 지으며 소일했던 곳이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세월과 삶의 무상을 느끼며 수신(修身)을 하며 지내셨는지도 모르겠다. 화석정 왼쪽에는 화석정 시비(花石亭 詩碑)가 있다. 율곡 선생님께서 8세 때 지은 시를 새겨 놓은 시비이다.      

 

 길을 걸으며 과거 속을 걸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선조에 대한, 그리고 현대 정치인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가득하다. 이럴 때에는 걷기에 집중하며 걷는 것이 제일 좋다. 걸으며 발바닥의 느낌에 집중한다.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발바닥의 느낌에 집중하는 것을 반복하며 걷기에 빠져든다. 걷기에 몰입하면 몸이 힘든 것도 사라지고, 과거의 추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오직 걷는 사람과 길만이 오롯이 존재한다. 길과 하나가 된다. 몰입하며 걸으면 지친 몸도 회복되고, 속도도 빨라진다. 리듬을 타듯 걷는 것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몸이 편안하고 가볍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준비해 온 간식을 나눠 먹고 수다를 떤다. 몰입 걷기 후 맞이하는 수다 시간은 그 즐거움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걷기에 몰입하면 마음속 여유 공간이 생겨나서 그 공간에 길동무들의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동무들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며 집중해서 얘기를 듣게 된다. 불편한 감정 속에 빠져 걷거나 스트레스 속에서 생활하게 되면 마음속 여유 공간이 사라진다. 오직 자신의 불편함만 남아있어서 사소한 일에도 괜한 짜증과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럴 때 혼자서 조용히 발의 감각에 집중해서 걷는 것이 좋다. 걸으며 만들어진 마음속 여유 공간과 힘으로 다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걷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다. 더운 날씨여서, 또는 추운 날씨여서 집 안에만 머물고 지낸다고 건강이 좋아지거나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더위 속에서도 땀을 흘리고 걸으면 자신에게 건강과 보람과 자신감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걷고 난 후 씻고 나서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면 다음 날이 더욱 건강하고 즐겁다. 게다가 길동무들과 함께 걸으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일들을 수다 떨 듯 가볍게 던지면 마음속도 개운해진다. 길동무들이 어떤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얘기를 하며 스스로 답을 찾기도 하고, 가끔은 위로를 받거나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도 얻게 된다. 걷기는 단순히 몸의 건강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시켜주고 유지시켜주는 아주 편안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운동법이다. 사회적 걷기라는 용어를 책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사회적 걷기는 여러 가지 긍정적이고 강력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조금 더 사적인 일대일의 관계뿐만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사회에서 사회적 응집력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마크 트웨인은 이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우아하게 표현했다. ‘보행의 가장 참된 매력은 걷기 그 자체나 경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데 있다. 걷기는 입의 움직임의 타이밍을 맞추고, 혈액과 뇌에 자극을 주어 활성화시킬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주변 경치와 숲의 향기는 무의식적이고 특별하지 않은 매력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눈과 영혼 그리고 감각에 위안을 준다. 그러나 가장 큰 즐거움은 대화에서 비롯된다.” (걷기의 세계, 세인 오마라 지음)     

 

 걷기 동호회 활동이 바로 사회적 걷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길을 걷고 대화를 나누며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나 자신 역시 걷기를 통해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길은 걷기를 통해 나누는 일이다. 걷기 마당이라는 동호회에서 길 안내자로 활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길 안내라는 명분을 만들어 함께 걸으며 나 자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길동무들과 걸으며 즐거움과 감사함도 느끼고 많이 배우며 지내고 있다. 따라서 ‘봉사’라는 단어는 길 안내자에게는 적합한 단어가 아니다. 자신을 위한 활동을 하는데 어떻게 ‘봉사’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 ‘봉사’보다는 ‘나눔’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인간적이고 상황에 맞는 단어이다. ‘걷기를 통한 나눔’은 평생 할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다. ‘사회적 걷기’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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