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걷고의 걷기일기

줄탁동시 (啐啄同時)

by 걷고 2022. 7. 23.

중국 송나라 때의 선서(禪書) 중에 벽암록이 있다. ‘줄탁동시’는 벽암록에 나오는 말이다. ‘줄(啐)’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쪼는 것을 의미한다. ‘탁(啄)“은 어미 닭이 알 밖에서 쪼며 병아리가 태어나기 위해 돕는 동작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병아리가 태어날 수 있다. ’ 줄탁동시‘는 특히 선불교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방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마조도일 선사는 중국 선종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다. 어느 날 마조 선사가 열심히 좌선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의 스승인 남악 선사가 “무엇을 하느냐?”라고 묻는다.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남악 선사는 조금 후에 벽돌을 들고 와서 마조 선사 앞에서 열심히 갈기 시작한다. 마조 스님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묻자 “거울을 만들려고 벽돌을 갈고 있다.”라고 말한다. “벽돌을 간다고 거울이 됩니까?”라고 물으니 “좌선을 한다고 부처가 되느냐?”라고 일침을 가한다. 마조 스님은 가르침을 구하고 남악 선사는 “만일 소가 수레를 끌 때, 수레가 움직이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하느냐, 소를 쳐야 하느냐”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줄탁동시’의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이다.   

   

최근에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쾌거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 젊은이가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은 국민 모두의 자랑이자 기쁨이다. 하지만 음악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의   수상 소식보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들으며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제 실력이 더 느는 게 아닙니다.”라는 말이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그가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된 단테의 ‘신곡’을 빠짐없이 읽었다는 기사를 보고 ‘신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승을 했다고 갑자기 실력이 늘어나거나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우승은 그간의 노력에 대한 부산물에 불과하다. 그는 사찰에서 평생 피아노만 치며 살고 싶다고도 한다. 그는 피아노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손민수 교수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다. 그의 재능을 미리 알아보고 그에 맞는 교수법으로 그를 이끌어준 스승이다. 스승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는 아마 없었을 가능성도 높다. 임윤찬과 손민수 관계도 ‘줕탁동시’의 멋진 사례이다.     

 

손흥민 선수도 있다. 손흥민 선수에게는 전직 프로 축구 선수인 아버지 손웅정이 있다. 손 씨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어서 기본기에 충실한 훈련을 꾸준히 하며 오랜 기간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들어 주었다. 단순히 축구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기본과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지금도 손 씨는 아들이 아직도 최고가 되려면 멀다고 얘기하고 손흥민 선수도 아버지의 그 말씀에 동의하고 있다. 손흥민 선수의 미소와 선행들을 보며 기본이 잘 갖추어진 선수라는 생각이 든다. 선수로서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 멋진 균형을 갖춘 선수라는 생각이 들어 손흥민 선수를 떠올릴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에 ‘이마이치 도모노부’가 지은 ‘단테의 신곡 강의’를 읽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나를 ‘신곡’으로 이끌어 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임윤찬은 내게 스승이다.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던 책을 읽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말 한마디가 주는 강한 신뢰감과 파급력이 있다는 반증이다. ‘신곡’은 많은 사람들이 제목을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읽은 사람이 없기로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제목은 들어서 알지만, 내용은 모른다는 의미다. 도서관에서 ‘신곡’을 검색해서 여러 책을 뒤져보다 운 좋게 ‘단테의 신곡 강의’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신곡’을 읽기 위한 안내서이다. 저자 ‘이마이치 도모노부’가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책을 읽으며 한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올라온다. 그는 매주 토요일 세 시간씩 할애해서 ‘신곡’에 대한 연구를 50년 이상 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강의를 한 참다운 학자요 전문가이다. 다소 지루하기도 하고 배경 지식이 없는 내게 이 책은 결코 쉽지 않은 책이지만, 완독은 했다. ‘이마이치 도모노부’는 내게 ‘신곡’의 스승이다. 오늘 도서관에 가서 ‘신곡’(김윤찬 옮김)‘을 빌려왔다. 지금부터 ’ 신곡‘을 읽어보려고 한다. ’ 신곡 강의‘를 읽으며 배운 기본 지식을 활용해서 읽어나갈 생각이다. 어쩌면 나중에 다시 ’ 신곡 강의‘를 읽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아미아치 도모노부’의 강의를 통해서 ‘신곡’의 저자 ‘단테 알리기에리’에게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의 저자이자 그리스 고전 문화 대표시인인 ‘호메로스’와 로마의 고전 시인이자 ‘아이네이스’의 저자인 ‘베르길리우스’라는 스승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통해 단테는 두 스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단테의 ‘신곡’을 읽기 위해서는 이 두 저자의 저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중세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이탈리아 시인인 단테에게도 그에 걸맞은 스승들이 있었다. 그는 아마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일 것이다.     

 

‘신곡’의 내용 중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이끌고 가다가 단테를 앞세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다. 그 의미는 지금부터는 스스로 길을 찾아가라는 의미다. 스승에게 배울 것을 배운 후에는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 제자의 도리이다. 또한 가르칠 때와 떠날 때를 잘 구별하는 것은 스승의 도리이다. 스승은 자신의 그릇 크기를 알고 자신의 그릇보다 제자의 크기가 넘칠 때 다른 스승에게 보내든 아니면 조용히 사라져 제자가 홀로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같다. 한 사람이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가르침,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성장한 후에는 홀로 서서 뚜벅뚜벅 자신의 두 발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일정 기간 동안 양육하고 건강한 독립과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나의 스승은 어디에 있는가? 과연 스승을 찾아다닐 만큼 치열하게 공부하거나 몰두했던 일은 있었는가? 스승은 결코 제자를 찾아오거나 제자 앞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야만 한다. 불가에는 10년간 홀로 공부하는 것보다 스승을 찾아다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혼자 공부할 경우 독선에 빠질 가능성도 있고, 가르침을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일 것이다. 스승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갈구해야 스승을 만날 수 있다. 그래야 스승의 말씀 한 마디,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배우며 체득할 수 있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온몸과 마음으로 배우는 것이다. 아직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또 아직도 스승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그동안 헛 살아온 것이다. 스승을 만날 인연도 없지만,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기에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마음공부의 초입에도 진입하지 못한 어리석은 범부에 불과하다. ‘줄탁동시’는 준비된 사람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스승이 없다고 한탄하기 이전에 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한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