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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둘레길

[경기 둘레길 3 회차 후기] 바람 불어 좋은 날

by 걷고 2022. 6. 12.

 운양역에서 7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대가 온다. 10시에 만나기로 한 참석자들은 아직 모두 모이지 않았다. 기시님에게 다음 차는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한 시간 이후에 온다고 한다. 참석자들과 모여 택시를 타고 가기로 결정한 후 김포 콜택시로 전화를 한다. 택시로 약 30분 정도 이동 후 한재당에 도착해서 걷기 시작한다. 오늘 걸을 3코스는 애기봉 입구에서 전류리 포구까지 17.2km를 걷는 길이다. 모두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강한 햇빛에 노출된 채 걸어야 한다. 비 소식이 있어서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는데, 비 대신 강한 햇빛이 우리를 맞이한다. 비는 오지 않지만, 바람을 선물해 준  자연에 감사를 표한다. 자연은 인간과는 별개로 자연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순응하면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제공해 준다.   

  

 말로만 들었던 김포평야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모습인지 전혀 몰랐지만, 오늘 길을 걸으며 몸으로 확인한다. 넓은 평야를 보니 마음과 눈이 시원하다. 논에는 물이 적당히 차있다. 치수(治水)를 잘 한 덕분이다. 가뭄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비해 이곳 농부들은 매우 풍요로운 수확을 보장받은 것 같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이 있다. 곳간이 가득하면 나누는 마음을 갖게 된다. 곳간이 비어있으면 생존을 위해 힘든 투쟁을 하기도 한다. 김포에 사는 분들은 매우 인심이 좋은 복 받은 분들이다.     

 전원주택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장미꽃으로 입구를 아름답게 장식한 주택도 있고, 넓은 부지에 여유로운 공간을 충분히 활용해 지은 한가로운 집도 보인다. 2층으로 지어진 집의 테라스에는 불투명 유리로 외부와 차단을 한 채 길 반대편을 향한 집도 보인다. 세상을 등지고 살고 싶은 사람인가 보다. 예전에는 나도 이런 삶을 꿈꾼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어느 곳에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면 그곳이 바로 휴양지이고 별장이다. 별장에 머물면서 마음이 불편하다면, 또는 일상사로 마음속이 가득하다면, 몸만 별장에 있고 마음은 복잡한 세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어는 곳에 있든 마음만 편하다면 쉬기 위해 굳이 어딘가로 이동할 필요가 없다.     

 

 처음 만난 분들도 있지만, 걷기 마당에 가입한 순간 더 이상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 아니다. 동호회가 만들어 주는 소속감은 마음의 벽을 허물고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마음을 열고 즐거운 대화를 이어간다. 따님의 사춘기 얘기를 하는 분도 있다.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된 것일 수도 있다. 딸의 사춘기를 매우 힘들게 겪어낸 후배 얘기를 해주며 시간을 기다리고 흔들리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얘기하며 안타까움을 공유한다. 만나기 전에는 남이었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며 함께 걸으면 더 이상 남이 아니다. 친구이고 이웃이고 길동무이고 인연이 깊은 분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즐거움과 고통은 나의 것이 된다. ‘남’과 ‘나’가 우리가 되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으로 뻗은 길이 펼쳐진다. 좌우에는 논에 모가 잘 자라고 있는 생기 가득한  녹색의 평야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산티아고의 메세타 평원이 떠오른다. 저 멀리 산과 강이 보인다. 평야와 강 사이에 살벌한 철조망 벽이 세워져 있다. 철조망과 강 사이에 사람 흔적이 없는 수풀 가득한 지역이 있다. 언젠가는 그 철조망이 걷히고 자연이 숨 쉬는 그 지역에 좁은 오솔길이 생기면 좋겠다. 평화 누리길과 겹치는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철조망이 빨리 걷히길 기도한다. 평화 누리길은 철조망 벽이 허물어져야 그 이름값을 할 수 있다. 평화는, 사람 간의 평화든 나라 간의 평화든, 서로를 가로막는 벽이 허물어져야 이루어진다. 서로를 경계하는 한 참다운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류 휴양소가 있다. 상처 입은 조류를 치료하고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재활 훈련을 하는 곳이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자연과 공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다는 착각을 하는 것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말이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연의 이치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삶은 고통을 반드시 수반한다.     

 전류리 포구가 저 멀리 보이고 몸은 서서히 지쳐간다. 포구는 걸을수록 뒤로 물러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드디어 3코스에 도착했다. 스탬프 북에 도장을 찍으며 서로에게 축하 인사를 전한다. 혼자 걸었다면 끝까지 걷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함께 걸었기에 완주할 수 있다. “혼자 걸으면 자신과 타협을 할 수 있다.”는 명언을 한 길동무가 말씀하신다. 멋지고 고급스러운 표현이다. 그 말을 나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혼자 걸으면 언제든 중간에 포기할 수 있다. “가 된다. 같은 의미도 표현 방식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말과 글이 주는 힘이자 허상이다.     

 

 도착한 후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구입해 벤치에 앉아 시원한 첫 잔을 들이켠다.  땀을 흘린 후 마시는 첫 잔의 맛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다. 표현하는 순간 그 맛은 사라져 버린다. 편의점 앞에 버스 정류장 표시가 없는 정류장이 있다. 차가 언제 도착할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늘 검색해서 시간 맞춰 다니는 삶에 익숙한 사람들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 차를 기다리는 재미는 색다르다. 답답함보다는 오히려 스릴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은 금방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적응은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기다리며 맥주를 마신다. 맥주 덕분에 기다릴 수 있다. 버스가 저 멀리서 보이자 모두 길가로 나가 손을 흔든다. 어린 시절 버스를 향해 달려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을버스 7번을 타고 운양역으로 출발한다. 마을버스답게 동네 구석구석을 달린다. 마치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마을을 벗어나 신도시로 접어들자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7번 마을버스는 과거와 현재를 달리는 타임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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