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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둘레길

[걷고의 걷기 일기 0372] 경기 둘레길을 시작하며

by 걷고 2022. 5. 9.

날짜와 거리: 20220505 - 20220508  22km

코스: 상암동 공원 외 

평균 속도: 4km/h

누적거리: 6.733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최근에 TV에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를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봤던 영화인데, 마치 처음 보는 영화처럼 모든 장면과 내용이 새롭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말이 인상적이다. “작은 균형을 무너뜨려야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다”라는 말이다. 작은 균형이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하나의 틀이다. 우리는 자신의 틀을 만들고 그 틀 안에 갇혀서 안정감을 느끼고, 그 틀로 세상과 사람, 상황을  바라보고 판단하며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해서 또는 생존하기 위해서 만든 틀이 자신만의 성(城)이 되어 자신을 지켜준다. 하지만, 틀 안에만 갇혀 있으면 더 큰 세상을 만나거나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키워나갈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틀을 깨고 나와야만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정체성은 생존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정체성이라는 성을 부술 필요가 있다. 정체성이라는 벽이 무너지며 대도무문의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경기 둘레길을 걷기로 한 이유도 바로 ‘작은 나’의 틀을 깨어버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사람들과 일을 함께 진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혼자 무언가를 시작하고 꾸준히 하는 것은 조금 익숙해져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은 여전히 불편하고 어렵다.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 패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편함이 남아있을 때가 있다. 갈등을 말로 편안하게 풀어내는 용기와 지혜를 갖고 있지 않기에 마음속에 침전물로 남아있어서 어느 날 툭 튀어나와 자신을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이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조금씩 극복해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말로 갈등을 풀어내지는 못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는 연습을 꾸준히 한 결과 불편함은 많이 사라졌다.  굳이 나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삶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늦었지만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이 역시 나의 틀을 없애가고 있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굳이 나 자신을 내세우거나 주장을 관철시킬만한 일은 일상생활 속에 거의 없는 거 같다. 

 이번 주 금요일인 2022년 5월 13일부터 걷기 동호회의 길 안내자로 진행하며 매주 경기 둘레길을 함께 걷는다. “경기 둘레길은 경기도 외곽을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귀하는 총길이 860km의 순환 둘레길로 경기도와 15개 시, 군이 협력하여 조성한 사람, 문화, 자연이 함께하는 길입니다. 둘레길은 총 60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길의 특징을 담아 4개의 권역으로 나눠집니다.” (경기 둘레길 홈 페이지)  총 60개의 코스, 860km에 달하는 이 길은 매주 걸어도 1년 이상 걸리는 장정이다. 한 번도 가보지도 못했고, 사전 답사를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길 안내자로 걷기를 진행을 한다는 두려움과 설렘이 있다. 이 길을 시작으로 코리아 둘레길도 걷고 싶고, 아직 남아있는 지리산 둘레길도 마무리하고 싶고, 제주 올레길도 완주하고,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에 조성된 길을 가능한 한 많이 걷고 싶다. 그리고 나이 더 들기 전에 다시 한번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다. 길을 걸으며 그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쌓아 놓은 마음의 성벽을 허물며 사람들과 자연, 주어진 환경과 하나가 되며 살아가고 싶다.

 

 안내자를 자처한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걷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 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구간도 놓치지 않고 걷고 싶다. 하지만, 혼자 걸으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길 안내자를 자처했다. 책임을 맡으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혼자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낯선 길을 혼자 걸으면 괜한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정확한 이유를 파악할 수가 없다. 길 안내자로 걸으면 책임감과 길동무들 덕분에 완주할 수 있고, 함께 걷기에 홀로 걷는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경기 둘레길은 나 자신의 시험무대이다. 사찰을 ‘선불장(選佛場)이라고도 한다. 부처를 뽑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사찰 내에는 수많은 수행자와 신도들이 모여 살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상황들이 발생한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공부의 장으로 만들어 가는지 배우고 시험하는 장소가 바로 사찰이다. 우리네 삶의 현장도 선불장이다. 경기 둘레길을 홀로 걷는 것도 아니고 걷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걷는다. 길 안내자로서 출발 지점부터 종료 지점까지, 시작부터 마무리할 때까지  참석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웃으며 즐겁게 걷고 아무 사고 없이 마치는 것이 가중 중요한 임무이다. 나의 틀을 부수고 조금 더 성숙한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 택한 길이다.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해 길 안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해 시작한 일이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이기적인 마음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누군가에게 길은 그저 단순히 걷는 길일 수도 있고, 생계수단이 될 수도 있고, 마음공부의 수단이 될 수도 있고, 건강을 챙기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즐기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혼자 걷는 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 같이 걷는 동료들에 대한 배려와 자신을 낮추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혼자 먼저 도착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모두 도착해야 끝나는 것이다. 나의 즐거움과 힘든 일들이 길동무의 것들이 되며, 동시에 길동무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된다. 결국 길동무들이 나 자신이 되는 일이다. 나와 길동무들의 차이를 극복해가며,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버리고 낮추며, 함께 눈높이를 맞춰 걸으며 ‘너와 나’의 구별이 사라진 ‘우리’가 되는 일이다. 경기 둘레길을 모두 마치는 데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매주 걸을 계획을 갖고 있지만,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잠시 멈출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길을 완주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며 함께 어깨동무하고 춤추며 웃을 날이 올 것이다.

 

 얼마 전에 입적하신 틱낫한 스님은 ‘마음엔 평화가, 얼굴엔 미소가 깃들기를’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한 걸음에 평화가, 한 걸음에 미소가 깃들기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걷기를 바란다. 그리고 길 마칠 즈음 ‘마음엔 평화가, 얼굴엔 미소’가 가득한 우리들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평화와 미소가 가득한 길이 되길 마음 모아 기도한다. 

 

 혼자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 갖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산티아고에서 만났고, 걷기 마당에서 해파랑길을 걷기 시작한 초반에 함께 동참했던 도니님이 이 길을 함께 걷겠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혼자 해파랑길, 남파랑길,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을 모두 걸었던 경험 많은 길동무가 동참한다니 의지가 된다.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도니님의 사진도 기대해 본다. 이 길을 마친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해서 함께 걸었던 사람들, 걷기마당 길동무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한다. 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기원한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자신의 틀을 깨고 더 큰 자신으로 변화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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