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걷고의 걷기일기

[경기 둘레길 2회 차 후기] 달콤 시원한 유혹

by 걷고 2022. 6. 4.

경기 둘레길 2코스는 문수산성 입구에서 애기봉 입구까지 가는 길이다. 초입부터 오르막길이어서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오르니 땀이 나고 숨도 차오른다. 모든 일은 익숙해지는데 시간과 땀이 필요하듯 길 역시 걷는데 시간과 땀을 필요로 한다. 힘들게 오르고 난 후 몸이 서서히 산길에 익숙해지며 한결 호흡도 몸도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일종의 신고식을 치르는 셈이다. 자연은 늘 우리를 품어주고받아주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한다. 바로 땀과 노력과 시간이다. 스스로 산을 오르는 사람은 자연의 품에 안기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그리고 하산 후에 자연의 사랑에 감사하며 다시 자연을 찾는다. 누군가는 내려 올 길을 왜 올라가느냐고 질문하기도 한다. 그 답은 올라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설탕이 얼마나 단지는 먹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듯이.     

 

 문수산성 입구까지 가기 위해 합정역에서 모여 3000번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9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합정역에 도착해서 잠시 몸을 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걷기 마당?”이라고 한다. “경기 둘레길?”로 다시 묻는다. 그리고 서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마치 스파이들이 암호로 접선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바로 길동무가 되어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눈다. 비록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이지만, 같은 길을 같은 동호회에서 걷는다는 것은 매우 귀한 인연이다. 누군가를 2022년 6월 3일 오전 9시에 합정역에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누군가는 벼락 맞을 확률이라고도 하고,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귀한 인연이다. 살면서 일상의 귀한 인연에 대한 감사함을 자꾸 잊게 된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곰곰이 새겨볼 만한 말이다. 가족을 포함해서 매우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기 일쑤이다.  

        

 출발 지점까지 버스로 이동하면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서울을 벗어나는 설렘도 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는 설렘도 있고, 오늘 걸을 길에 대한 설렘도 있다. 여행은 설렘으로 시작해서 자연의 선물을 받는 감사함으로 끝난다. 그리고 끝은 다시 시작으로 이어진다. 오랜만에 버스 안에서 졸기도 하고 가끔 바깥 풍경도 구경한다. 길을 걷는다는 설렘과 여유로운 마음이 가득하다. 박력이 넘치는 기사님의 운전 솜씨도 짜증 나기보다는 오히려 스릴로 느껴지기도 한다. 같은 상황도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따라서 어떤 상황으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온다면, 그 상황이 만든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이 만든 것임을 알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각하며 꾸준히 연습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길치인 사람이 무슨 배짱으로 경기 둘레길을 안내한다고 나선 것인지 아직도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된다. 길 안내자로 맨 앞에서 걷고 있지만 늘 길이 아닌 곳으로 가고 있다. 뒤에 따라오는 분들이 길을 안내해 주셔서 오늘 코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마치 남을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같다. 겉은 안내자이지만, 속은 추종자이다. 그러니 길 안내를 한다고 소문낼 필요도 없고, 봉사를 한다고 우쭐 댈 필요도 없다. 오히려 참석자들 덕분에 이 길을 걸울 수 있기에 감사함을 느끼며 걸어야 한다. 그분들이 나를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걷고 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양똥이’님 덕분에 오늘 코스를 무사히 걸을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분들의 말씀은 맞는 말이다. 아마 내가 길을 안내했다면 지금도 걷고 있을 것이다. ‘양똥이’님의 참석 소식을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경기 둘레길 외 많은 길을 걸었고, 길 조성 자문역할을 하시는 그분은 길 전문가이다. 어떤 길을 물어도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심지어 몇 코스이고, 거리와 교통편, 길의 성격에 대해서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마치 사진을 찍어 머릿속에 보관하고 다니는 것 같다. 나는 길을 걸어도 그 길이 몇 코스 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가봤던 길도 헤매고 걷는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분명하다. 이는 단순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나는 그저 길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내가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1코스 걸을 때에도, 또 오늘 길을 걸으면서도 늘 누군가가 함께 걸으며 도움을 주셨다. 못 미더워 따라오시며 도움을 주신 것이다. 머리를 긁적이고 숙이며 감사함을 전한다. 앞으로도 이 길을 마칠 때까지 누군가가 오셔서 도움을 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      

 

 “문수산성은 조선 숙종 20년(1694년)에 축조된 대표적 산성으로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른 국방유적 (사적 제138호)이며 서해와 강화, 인천, 파주 등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출처:경기 둘레길 안내 자료) 초입의 오르막은 비록 거칠기는 하지만 길은 예쁘다. 문수산 (376m)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강화해협의 풍광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성벽을 걸으며 걸려있는 휘장도 보고 성 아래 마을의 풍경을 보며 걸었다. 산길을 내려오면 그다음부터 대로를 걷는다. 오늘은 가장 더운 날씨라고 한다. 햇빛을 피할 곳 없는 길이지만,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조강 저수지에 낚시터가 있는데, 요즘은 낚시를 하지 않는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쓰레기만 잔뜩 쌓여있다. 안타깝다. 자신의 쓰레기를 각자 들고 오면 되는데 이 사소한 일이 그만큼 하기 힘든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2코스 끝나는 지점에서 스탬프를 찍은 후 한재당을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1.2km 정도를 걸어 내려왔다.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약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양똥이’님의 전문가적 판단 덕분에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군하리 한우마을에서 하차했다. 내리자마자 맥주집을 찾는다. 긴 항해 끝에 육지를 찾듯 애타게 찾고 또 찾는다. 땀 흘린 후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의 유혹은 너무 달콤하다. 이런 유혹은 언제든 뿌리치고 싶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그 유혹은 다시 길을 걷게 만든다. ‘왜 걷느냐? “라고 묻는다면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시원한 생맥주 한잔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     

 

 길이 있어서 걷는다. 걸을 수 있어서 걷는다. 길동무들이 있어서 걷는다. 그리고 시원한 맥주의 유혹에 빠지기 위해서 걷는다. 길을 걸으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세상을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내가 걷는 이유이다. 오늘 함께 걸은 길동무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특히 길 안내를 해 주신 ‘양똥이’님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