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381] 그림자를 대하는 방법

by 걷고 2022. 5. 24.

날짜와 거리: 20220523  3km

코스: 일상 속 걷기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6,84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사회통합치유센터 마음 복지관 상담이 있는 날이다. 점심 식사 후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집에서 출발한다. 차가 막히긴 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차창 밖으로 바깥 풍경을 즐긴다.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버스를 타면 바깥공기를 쐰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자동차 소음으로 정신없기는 하지만, 가끔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오늘 시작하는 상담으로 내담자와 첫 대면이다. 회사 동료와 상사들과의 갈등이 심해서 스트레스로 한 달 정도 휴직을 했고, 복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직한 내담자이다. 퇴직 후 자신을 돌아다볼 시간이 생기면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비전을 찾아 앞으로 나가고 싶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회사 생활이 힘든 이유는 업무가 힘든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삶이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엮여있는 삼차원의 세계 속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것 하나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공간은 변하고, 사람들도 변한다.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싶어 하고, 원하는 공간 속에서만 살아가기를 바라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말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데 외부 환경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늙음과 질병을 자기 뜻대로 조절할 수도 없고, 자신의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고, 가고 싶은 곳만 갈 수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도 없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고 편의상 나누지만, 이 세 가지는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은 이 세 가지는 각자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강물이 흐르듯 흘러갈 뿐이다. 흐르는 냇가에 발을 담고 서있으면 물이 흘러가면서 발을 스쳐 지나간다. 저 앞에서 흐르는 물은 지금의 내게는 미래의 물이다. 물이 흘러 내 발을 어루만지는 순간이 바로 현재의 순간이고, 어루만짐과 동시에 흘러가면서 그 물은 과거가 되어버린다. 물은 흘러간다. 마찬가지로 시간도 흘러간다. 시간을 잡을 수도 없고, 미래를 앞당기거나 늦출 수도 없으며,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다. 시간이 그냥 흘러간다는 것만 제대로 인식해도 삶이 편안해질 수 있다. 시간이 만들어 낸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망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 역시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변한다. 큰손녀는 매일 어린이 집에 들어갈 때마다 울먹인다. 집에서 엄마와 있는 것이 좋은데 다른 공간인 ‘어린이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야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금 울먹이다 그치고 금방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논다. 학교라는 공간은 집과는 다른 공간이다. 하지만 가기 싫다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다. 학교를 마친 후에는 다른 공간인 회사나 조직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전혀 다른 공간인 자신만의 가정을 꾸려나간다. 여행을 하면서 다른 공간으로 가기도 하고, 심신을 쉬기 위해 산과 강을 찾기도 한다. 공간의 변화는 두려움과 불편함을 줌과 동시에 활력과 변화를 만들어 준다.      

 

 사람과의 관계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로 발생한 자연적인 상황이다. 집안에서 엄마 손에서 자라는 아이는 시간이 흘러 학교, 회사, 신혼집, 병원, 요양원, 장례식장 등으로 머무는 공간이 변한다. 공간의 변화로 만나는 사람들도 바뀐다. 선생님, 직장 동료나 상사, 배우자와 가족, 의사 등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을 한다고 해도, 그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도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호회 운영진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카페로 가서 활동하기도 한다. 후문에 의하면 그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해서 탈퇴를 했다고 한다. 한쪽은 불만족스러워 자진 탈퇴를 했다고 하고, 다른 쪽은 적응하지 못해 나갔다고 한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결국 어느 곳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부초처럼 떠도는 삶이다.     

 

 무조건 참고 견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불편함을 외부 탓으로 돌리지만 말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다. 시간, 공간, 사람들 관계는 모두 반드시 변한다. 더 나은 환경과 자신의 비전을 위해서 환경을 바꿀 필요도 있다. 하지만, 바뀐 환경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삶의 패턴은 바로 ‘마음공부’의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삶의 변화는 얽혀있던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가면서 시작된다.     

 

 반복된 삶의 패턴은 과거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강화된 것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 때는 카톡이나 문자, 전화에 바로 응답이 오지 않으면 무척 신경 쓰였던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도 들면서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고객사 임직원들의 대응 태도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고객사, 흔히 ‘갑’의 입장에서 필요시 전화를 걸기는 하지만, 내가 필요시 전화를 하면 바로 응대를 하지 않는 편이 많았다. 계약을 수주하는 입장에서 ‘갑질’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지도 못한 경험들이 쌓여 일상생활 속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자각한 후에 지인들로부터 바로 응답이 오지 않아도 화를 내거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느끼지 않으며 기다리는 연습을 했다. 응답이 늦은 경우 대부분 바로 응답하지 못했던 상황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차츰 이 불편한 증상은 사라졌다. 지금은 늦거나 심지어 응답이 오지 않아도 그러려니 한다. 반드시 응답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패턴은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삶의 이면에 남아있는 흔적이다. 어느 누구나 흔적을 갖고 있다. 흔적이 현재 자신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 경험 속으로 들어가 그림자의 실체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혼자 보기 두려울 경우 상담을 받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는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치유해 나갈 수도 있다. 몰입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상처를 안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치 손흥민 선수가 동양인에 대한 모든 편견을 무시한 채 24시간 축구에 몰입해서 EPL 득점왕이 되었듯이. 상처를 치료해서 건강해질 수도 있지만, 건강한 삶을 살면서 상처가 저절로 치유될 수 있다. 삶의 상처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상처로 남을 수도 있고, 삶의 훈장으로 자신을 지켜줄 수도 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