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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319] 4차 산업혁명과 인간성

by 걷고 2022. 1. 15.

날짜와 거리: 20220114  6km

코스: 일상 속 걷기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5,89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처이모님께서 집에 오셔서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복어집인데 간도 약하고 음식 맛도 내게는 잘 맞았고 종업원들 서비스도 매우 친절했다. 테이블 여섯 개 정도 놓인 작은 식당인데,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고 식당 청결 상태도 매우 좋았다. 깨끗하고 청소가 잘 된 화장실에는 페이퍼 타월도 비치되어 있다. 이런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단지 음식 맛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식당은 서비스, 음식, 청결과 위생, 가격,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꼭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은 식당이다. 

 

 식사 후 역 주변의 모임 공간을 검색해서 찾아가 보았다. 걷기 프로그램 마친 후 ‘소감 나누기’를 진행하기 위한 모임 공간이 필요해서 사전 답사 겸 둘러보았다. 모임 공간이 모두 도서실 형식으로 바뀌었고, 접수 직원도 없고, 사전 예약을 통해 출입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바뀌었다. 인건비도 줄이고, 젊은 세대의 기호에 맞춰 모임 공간도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면 저절로 뒤처지게 된다. 그렇다고 반드시 뒤처진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 자신의 삶의 양식을 만들고 살아가면 된다. 이제는 그런 낯선 풍경에 예전처럼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다. 

 

 약 처방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접수하는 간호사가 폐렴 예방 주사를 맞을 수 있으니 맞겠냐고 묻는다. 폐렴 무료 예방 접종을 받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약을 처방받고 폐렴 예방 접종을 마치고 나오면서 예방 주사를 너무 많이 맞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코로나 백신 3회, 독감 예방 주사, 그리고 폐렴 예방 주사까지, 총 5회의 예방 주사를 맞았다.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항체를 주입해서 면역력을 키워서 몸이 움직이고 살아가고 있다. 내 몸은 맞지만 내 몸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든다. 또한 개인 정보와 병원 기록도 더 이상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나보다 병원 간호사가 나와 관련된 개인 정보 및 의료 진료 정보를 더 잘 알고 있다. 점점 우리는 인간의 주체성을 잃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의학의 발달은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죽을 고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삶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선택권도 우리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백신 패스도 바로 이런 이유로 이슈가 된 것이다. 다수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을 점점 더 박탈당하고 있다. 공공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각 개인의 인권과 선택권도 중요하다. 이 둘의 합의점을 없을까?

과학의 발달, 특히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세상을 점점 더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고, 삶의 양식을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차세대 산업 혁명으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기술, 드론,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이 주도하는 혁명이다. “선택 가능한 미래”(비벡 와드와 저)의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고 있다고 한다. “<스타트렉>의 유토피아 그리고 <매드 맥스>의 디스토피아, 어떤 미래에 살게 될지는 우리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스타트렉>의 유토피아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전에 본 적 없는 특별한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에요. 우리는 인간성이 증진되도록 사람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기술의 발달과 발전은 우리가 어떤 선택하고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양극단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차세대 산업혁명의 기술들을 사용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마음가짐에 따라 유토피아에 이르게 될지, 아니면 디스토피아에 이르게 될지가 결정된다. 기술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연구하고 발달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 본연의 뜻을 잃어버리고 기술에만 의존하게 되고, 기술만 신뢰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사라지면,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어제 본 영화 ‘기프트’는 전 세계를 통제하기 위한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한 권력자들의 야욕을 저지시키는 영화로 2009년에 제작된 영화이다. 컴퓨터는 스스로 업데이트하며 인간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업데이트를 저지하려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서슴없이 하며 컴퓨터가 스스로를 보호한다. 영화 각본의 치밀도는 떨어지지만 그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특히나 ‘선택 가능한 미래’를 막 완독 한 후여서 그런지 영화의 내용이 실감 나게 느껴졌다. 우리 삶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기술들이 우리를 통제하고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은 매우 높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오늘 아침에 읽었던 신문 기사 내용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군자는 대상에 뜻을 깃들여도 되지만, 뜻을 대상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 뜻을 대상에 깃들이면 아무리 하찮은 대상이라도 즐거움이 될 수 있고, 아무리 대단한 대상이라도 병통이 될 수 없다. 대상에 뜻을 머물게 하면, 아무리 하찮은 대상이라도 병통이 될 수 있고, 아무리 대단한 대상이라도 즐거움이 될 수 없다.” (소식의 ‘보회당기’중에서, 조선일보 20220115)

 

 대상(기술)과 나, 우리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만드는 것이다. 대상을 이용하되 대상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대상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만들고, 우리는 그 대상을 활용해서 삶의 질을 향상해나가고 인류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면 된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기술 발전을 도모하는 노력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기술에 집착한 나머지 기술에 종속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술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 바로 ‘대상에 뜻을 깃들이는 것’이고, ‘기술에 종속되는 일’이 바로 ‘대상에 뜻을 머물게 하는 것’이다. 또한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생명 연장과 권력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은 ‘대상에 뜻을 머물게 하는 것’의 대표적인 행동 양식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면서,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섭리에 역행하며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은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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