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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가(家)

by 걷고 2021. 11. 7.

제주 살이 하는 딸네집에 온 지 벌써 오일 째를 맞이하고 있다. 딸네는 지금 구좌읍이라는 동쪽 끝 마을에서 지내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대여섯 세대 정도 모여서 살고 있다. 이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동남아의 리조트에 들어온 느낌이다. 가끔 들리는 차 소리 외에는 거의 다른 소음을 들을 수 없다. 큰 손녀는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거나 비누 방울 놀이를 하거나, 주변 나무에서 열매를 따와서 땅에 심거나, 집 앞 마당에 심어 놓은 상추나 케일에 물을 주며 놀고 있다. 아이에게는 천국이고 딸 부부에게는 최적의 휴양지다. 아직 젊은 딸 부부는 다소 심심할 수도 있지만, 두 아이들을 챙기고 보살피는 일이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시작되어 밤 8시나 9시쯤 되어야 끝나므로 심심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이런 생활을 이미 예상하고 왔던 딸 부부는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우리 부부가 와서 집안 살림이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딸네 부부에게는 유일한 휴식 시간일 수도 있다. 편안한 휴식을 위해서 제주 살이를 시작했음에도 이 생활에도 역시 휴식은 필요하다. 어떤 생활을 하든 쉬운 일은 아무 것도 없고, 그 일에서 잠시 벗어나는 여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 삶은 이런 일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하는 일에 얼마만큼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를 충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우리 부부는 덕분에 손주들과 즐거운 추억을 쌓고 있다. 아내는 무척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할 일도 많지만, 하고 싶고, 해 주고 싶은 일들이 많은 것이다. 비록 힘들겠지만, 아내는 그 생활을 아주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아내의 일상을 보며  삶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을 배우기도 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아내에게 존경심을 느낀다. 아내는 스승이자, 친구이고 도반이며 삶의 동반자이다.  또한 공항에 마중 나온 딸 부부와 손주들을 보며 가정의 가치와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위 혼자 픽업하러 나올 줄 알았는데, 온 식구가 함께 마중 나온 것이다. 손녀를 안으며 가족과 가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가족과 가정이 있어서 삶은 아름답고 삶 속의 힘든 순간들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공항에서 집까지 승용차로 50분 정도 걸린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차로 5분 정도 이동해야만 하고, 마트에 가기 위해 10분 정도 운전을 해야만 한다. 손녀가 좋아하는 노루 먹이주는 농장에 가기 위해 약 40분 정도 이동해야 하고, 카페에 가기 위해 30분 이상 차로 이동해야만 한다. 제주 살이는 서울 살이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아이들을 위해 또 자신들만의 시간을 위해 제주도로 내려온 딸 부부의 용기에 감탄할 따름이다.

내가 무료해 보였던지 사위는 집 근처에 있는 다랑쉬 오름을 알려주며 아침에 골프 연습장에 가는 길에 입구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고맙지만 사양하고 걸어서 갔다. 집에서 입구까지 약 2.5km 정도의 거리이기에 여유롭고 한가하게 걸어가고 싶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주차된 차들이 많이 보였고, 오름에 오르며 사람들을 제법 볼 수 있었다. 나름 알려진 명소라는 사실을 다녀온 후에 알게 되었다. 오름에 오르니 정면에 바다와 성산 일출봉이 보이고, 후면에는 넓은 평원이 보인다. 분화구 주변에 길을 조성해 놓아서 안쪽에는 분지가 바깥 쪽에는 바다와 평원이 보이는 둘레길은 아주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이다. 길 조성도 아주 잘 되어 있다. 계단 정비도 잘 되어 있고, 길을 표시하는 밧줄과 포스트로 길을 안내해 주고 있고, 산길 중간에는 자연 친화적인 멍석이 깔려 있다. 하산해서 집에 오는데 삼삼오오 오름에 가기 위해 걷는 사람들이 보였고, 길을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주민인양 친절하게 안내해주며 몸도 마음도 가볍게 집에 돌아왔다. 오름도 제주 올레길 못지않는 멋진 트레킹 코스이다.

사위와 딸은 우리 부부의 휴대전화 요금을 싼 요금제로 변경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 맺게끔 도와주었다. 또한 자동차 보험 갱신도 도와주었고, 일상에 필요한 부분 중 우리 부부가 취약한 점을 기꺼이 도와주고 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 부부가 필요한 점들을 보완해주며 지내고 있다. 저녁에 바비큐 요리도 해 먹었고, 회와 고기를 사와서 술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다소 서먹했던 사위와 장인 간의 관계가 많이 편안해지고 가까워졌다. 각자 표현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은 충돌을 야기시키거나 거리감을 더욱 벌이지게 만들 뿐이다. 자신을 내려 놓으면 그만큼 사람들 간의 관계가 편해진다. 가족 간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자식들도 이미 성인이고 자연인이다. 부모의 역할은 키우고 자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 까지다. 그 이후부터는 성인으로 또 자연인으로 인정하고 그들 만의 삶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가족 관계는 사랑과 신뢰, 그리고 존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모가 자식에게 명령을 하거나 자신들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태도이다.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은 더 이상 나의 자식들이 아니고, 자연인이며 성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식들 역시 성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신들의 두 발로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제주 살이는 이 점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어 매우 만족스럽고 고맙다.

사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다소 변화가 생긴 느낌이 들어 고맙다. 제주 살이를 통해서 앞만 보고 달리던 모습에서 조금 더 여유로운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고 삶의 방식에도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여유로운 시간과 환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손녀는 자신의 요구 사항이 점점 더 강해진 만큼 성장하고 있어서 고맙다. 딸네 부부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고 수정 보완하며 충실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어서 고맙다. 두 손주들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서 고맙고, 우리 부부도 아이들과 잘 어울리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서 고맙다. 제주 도민이 된 후배 부부 집에 들렸다. 딸 부부는 그 집을 보고 또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일반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다른 삶의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다양한 삶의 방법과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자체가 이미 큰 소득일 것이다.

후배 부부의 안내로 근처의 멋진 카페 ‘달콤한 가’에 가서 브런치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름답고 품위 있는 카페이다. 주인의 따뜻한 마음씀씀이와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 낸 음식들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주인은 건강식을 제공하기 위해 좋은 재료를 고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품위 있는 카페에서 오랜만에 가족들과 친한 후배 부부와 함께 멋진 식사를 즐겼다. 주인께서는 화이트 와인과 황금향을 서비스로 내어 주시며 수줍게 인사를 나눴다. 후배 부부와의 좋은 인연이 만든 멋진 선물이다. 그 선물을 받은 우리 가족들은 또 한번 놀라며 감사함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서 멋진 추억을 복기하며 카페 이름을 왜 ‘달콤한가’로 명명했는지 궁금해졌다. ‘달콤한가’는 영어로 번역하면 ‘sweet home’이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힐링하고 쉬며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제공하는 곳이다. 누구든지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며 다시 활기찬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다.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어서 기쁘다. ‘달콤함’의 그림자는 ‘쓰디쓴 맛’이다. ‘쓰디쓴 맛’을 알고 경험했기에 달콤함이 더욱 달콤할 수 있다. ‘달콤함’과 ‘쓰디쓴 맛’은 상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품고 있다. 마치 손등과 손바닥과 같은 것이다. 한 면이 없으면 다른 면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삶을 경험해 본 사람들 만이 알 수 있는 이치이다. 그런 면에서 이 카페의 주인은 삶의 양면을 모두 경험해 본 사람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 추측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설사 틀린다 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주인이 내어 준 따뜻한 마음과 장인 정신이 빚어낸 음식을 먹고 마시며 나는 주인이 삶의 양면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주인은 우리에게 삶의 매 순간이 달콤할 수만도, 또 쓰기만 한 것도 아님을 음식과 장인 정신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알려주고 있다. 주인의 초심이 유지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달콤한 휴식을 취한 후 다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활기찬 삶을 살아가길 기원한다.

누군가가  ‘달콤한가?의 맛이 어떻냐고  묻는다면 다크쵸코렛 맛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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