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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94] 건강한 뿌리

by 걷고 2021. 10. 31.

날짜와 거리: 20211027 - 20211030 43km
코스: 월드컵공원 외 상암동 공원
평균 속도: 4.2 km/h
누적거리: 5,23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상암동 주변 공원에 단풍이 한창이다. 나무 주변에 떨어진 낙엽들도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만들어 준다. 맑고 높은 하늘과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또 한 번 가을을 실감한다.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동용 축구 골대를 설치하고 아들과 함께 축구하는 아빠도 보이고, 아들이 보드 타는 모습을 보드에 타고 동영상을 찍고 있는 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이번 코로나 펜데믹은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또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도 인식하게 만들어 주었다. 모든 위기는 위기 자체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라는 의미 있는 가르침을 전해준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고 있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경제난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코로나 예방을 위한 강력한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가 희생되어야만 하는 것이 정당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의 힘든 상황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지금까지 사업을 계속했더라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힘든 상황은 나 혼자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 역시 무척 힘들어했을 것이다. 빨리 코로나 펜데믹이 사라지길 마음 모아 기도한다.

며칠 전 한국 상담심리학회 학술대회 강의를 들었다. 스위스 심층심리연구소에 근무하는 융 학파 전문가인 Hansueli Etter의 강의다. 위기는 치유의 과정으로 변화된다고 말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작은 행동을 통해 이런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바로 치유의 과정이다. 치유는 내면과 외면의 통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며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라는 말씀을 인용했다. 기도는 내면의 작업이고 영적인 수련이다. 일은 작은 행동의 변화로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켜 나가는 작업이다. 태도의 변화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필요로 한다. 외부활동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며 내면과의 통합을 이루어낸다.

그는 자신이 상담을 진행했던 내담자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내담자는 첫 상담 시 이번 상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살을 하겠다는 말을 했다. 이미 여러 상담소에서 상담사를 만났지만 변화가 없어서 마지막 희망을 안고 그를 찾아온 것이다. 상담이 6개월 정도 진행되었을 때 내담자는 이제 상담을 종료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궁금해서 이유를 물었다. “상담 첫날 선생님께서 문제는 표면의 문제이다. 우리 모두 내면의 깊은 곳에 건강한 뿌리가 자라고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지금까지 만난 어느 상담사도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내담자는 상담 종료 이유를 얘기했다.

이 강의를 들으며 ‘건강한 뿌리’가 불교에서 얘기한 본성이고 불성과 같은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는 겉에서 보면 상처투성이지만, 땅 속 깊은 곳에는 건강한 뿌리가 있다. 비록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일지라고, 그 속에는 강력한 생명이 살아서 숨 쉬고 있다. 봄의 신록도, 여름의 무성함도, 가을의 단품도, 겨울의 나뭇가지도 뿌리가 건강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비록 모습은 변하고, 강한 비바람도 맞고, 눈이 무겁게 쌓여 나뭇가지가 부러지더라도 나무는 여전히 살아있다. 계절에 따른 모습의 변화는 그저 한 시절의 모습일 뿐이지, 나무는 단 한순간도 나무의 본질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건강한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이 변한다 해도, 또 주변 상황이 변한다 해도 우리의 본성은 단 한순간도 변한 적이 없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경구 중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이 바로 건강한 뿌리를 의미한다. 비록 세월이 또 펜데믹이 우리를 바꾸고 힘들게 만들었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그냥 그대로 우리일 뿐이다. 몸이 아프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마음이 아파도 우리는 단 하나도 변하지 않은 우리이다. 우리로 살아가기 위한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심신의 불편함에 매몰되지 않게끔 늘 깨어있도록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다. 몸이 아픈 것이, 또 마음이 아픈 것이 바로 나의 모든 것이 아프다는 것이 아니다. 몸의 일부분이 불편한 것이고, 마음의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일 뿐이다. 몸과 마음의 아픔이 바로 ‘나의 모든 것’이 아프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아픔=나’가 아니다. 다리가 아프다고 온 몸이 아픈 것은 아니다. 우울감이 조금 있다고 해서 1년 내내 24시간 동안 우울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 없고, 우울감이 나를 힘들게 하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자신을 매몰시키고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다. ‘건강한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뿌리가 더욱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

최근에 자주 만나는 친구가 있다. 사업을 크게 경영하다 실패로 인해 약 6년간 거의 식물인간으로 지낸 사람이다. 그는 그 6년을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기간이라고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 6년의 세월은 그에게 자기 치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번 아웃된 자신을 충전하고 자신의 과거를 바탕으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위기가 치유의 과정이 된 것이다. 약 6개월 전부터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운동을 하며 몸을 먼저 회복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모두 얘기했고, 아내는 그 긴 기간을 잘 버텨주었고, 아이들도 훌륭하고 건강하게 성장했다. 가족의 힘으로 또 스스로 충전을 하며 그는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같이 만나 얘기를 나누며 그에게 명상을 권했다. 이미 몸을 회복시키는 운동은 충분히 하고 있기에 마음을 회복시키며 내면과 외면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이다. 그는 마음 챙김 명상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수행하고 있다. 그를 만나며 느끼는 것 중 하나가 그의 내면은 매우 건강하다는 사실이다. 6년의 세월 동안 그 뿌리는 방전된 나무를 위해 조용히 숨을 죽이며 충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 그를 만나 자주 함께 걷고 있다. 그에게 ‘담마 코리아’에서 진행하는 10일 수행 프로그램 참여를 추천했다. 명상 공부를 이제 막 시작했기에 좀 더 깊은 수행의 맛을 느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이다. 최근에 ‘담마 코리아’ 수행에 참가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좋아하는 그를 보며 더 이상 외부 요인들이 그를 힘들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설사 외부 환경이 그를 괴롭히더라도 조용히 수용하며 그 괴로움에 매몰되지는 않을 것이다. 삶은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손등 없는 손바닥이 없듯이, 괴로움과 즐거움이 없는 삶도 없다. 이 두 가지는 우리의 내면과 외면 통합을 위한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런 면에서 괴로움도 즐거움도 모두 마음공부의 토대가 된다. 번뇌 즉 보리 (煩惱卽菩提), 번뇌가 바로 깨달음의 발판이다. 즐거움과 괴로움 모두 번뇌의 한 모습일 뿐이다. 즐거움에 빠지지 말고, 괴로움에도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그가 이번 기회에 스스로 건강한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중요한 진리를 확실하게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지금 코로나로 힘들어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또 개인적인 상황으로 몸과 마음이 힘든 모든 분들에게 몸을 움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오래 걷다 보면 마음속 찌꺼기들이 사라지며 몸이 회복된다. 몸을 회복시키면 마음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뿌리가 건강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인정한 후 믿으면 된다. 아무리 긴 터널도 반드시 끝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나무가 건강한 뿌리 덕분에 비바람을 맞고 버티듯이, 우리도 자신의 내면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믿고 풍파를 견뎌내야 한다. 걷기와 명상, 그리고 건강한 뿌리의 자각은 비록 상황을 변하지 않더라도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변화시켜준다. 변화된 만큼 편안하게 비바람을 맞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삶의 마술번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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