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1008 - 20211017 56km
코스: 서울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천장산과 개운산
평균 속도: 2.7km/h
누적거리: 5,163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지리산 둘레길 1차 프로젝트를 마친 지 보름이 지났다. 단 열흘간 다녀온 것인데, 마치 오랜 기간 집을 떠난 느낌이 든다. 다녀온 후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아내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다. 특히 대장 내시경 검사를 위해 하루 전부터 음식을 조심하고 속을 비워내는 작업을 했다. 별 일 아닌데 괜히 부담스럽고 신경이 쓰인다. 노화 현상의 하나인가 보다. 모친 제사도 지냈다. 며칠 후 부산으로 내려가는 매형 집에도 다녀왔다. 지리산 둘레길을 같이 걸었던 친구들과 두 번 같이 걸었고, 걷기 동호회에서 서울 둘레길 안내를 하기도 했다.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에 그간 썼던 글을 정리해서 출품했고, 은평구 주민 참여기자로 기사를 써서 제출하기도 했다. 제주살이 하는 딸네 집에도 아직 다녀오지 못했는데, 11월 초에 일주일 정도 다녀올 것이다. 단 열흘 걷기 위해 미뤄두었던 일들이 제법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도 참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 살아가는 것이 이런 사소한 일의 연속인 것 같다. 할 일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끊이지 않는다. 만약 이 조차 없다면 무료함과 무기력에 빠질 수도 있다. 번거롭기도 한 이런 일들이 있어서 삶은 오히려 활기차게 느껴진다. 어떤 면에서 번거로움은 잘 활용하며 삶의 재미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지리산을 걸으며 느꼈던 점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그간 쫓기듯 할 일을 처리하다 이제 책상에 앉아 정리한다. 열흘간 지리산 둘레길을 참 열심히 걸었다. 누군가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떤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치 누군가와 약속을 하듯 매일매일 걸을 코스와 거리를 정해서 그 약속을 지키며 걸었다. 할 일을 정해서 해야만 하는 평상시 성격이 드러난 것 같다. 사회생활할 때에는 이런 모습도 필요하겠지만, 백수가 된 상황에서도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루 일정을 정하지 못하면 뭔가 어정쩡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부실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아직도 불편한 것 같다. 이런 불필요한 규칙이나 원칙을 깨고 싶은데 아직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정체성을 깨어야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큰 세상을 보고 체험하며 자신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아직도 나의 틀을 깨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번 걷기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틀을 깨는 작업은 평생 해야 할 작업이다. 이 작업이 멈추는 순간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삶을 마치 양파껍질 벗겨내듯 벗겨내고 또 벗겨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무아와 무상의 진리를 깨닫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 설사 이 두 가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더라도, 좀 더 가까이 체험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과 동시에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이번 걷기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평상시 홀로 걷기를 좋아하는 내가 이런 좋은 체험을 하게 된 것은 길동무 덕분이다. 친화력이 좋은 이 친구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104세의 치매 노인을 모시며 민박집을 관리하시는 약초꾼을 통해서 사람 냄새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정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지를 알게 되었다. 지리산 중턱 전원주택에서 직접 삽을 들고 집 정원을 가꾸는 중년 부인의 품위와 여유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얼굴에서 그녀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힘든 날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은 그런 세월의 주름을 모두 털어내 버린 아름다운 미소가 지금 그녀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민박집 부부의 모습도 떠오른다. 교장 출신의 남편과 정이 많은 부인을 보며 평생 동반자로 살아가는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인은 오른쪽 팔과 다리가 불편하지만, 얼굴에는 미소와 행복함이 묻어난다. 자신의 질병을 수용하고 주어진 삶에 고마움을 느끼며 두 분이 정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민박집 여주인들의 부드럽고 마음씨 좋은 얼굴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는 살만한 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60대 중반에서 70대 초반의 여주인들의 넉넉한 마음과 부드러운 미소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사람을 통해서 배우고, 사람들 얼굴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춘다. 사람들은 모두 말 없는 나의 스승이자 거울이다. 그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걷기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삶에서 지칠 때 자연을 걸으며 자신을 치유한다. 길을 걸으며 힘든 삶의 상처를 치료한다. 길과 자연 속을 걸으며 세상의 힘든 상황을 잠시 내려놓거나 소화시키거나 털어낼 수 있다. 몸의 움직임과 감각을 통해서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주어진 상황은 실체(reality)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본질에서 벗어난 자신이 만든 환상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상황에 매몰되어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 심각성이 부정적인 사고를 확대시켜서 더욱 힘들게 만든다. 실체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본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의 진리도 체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다소 힘든 오르막길을 걸으며 또는 아름다운 숲길을 걸으며 삶의 모든 고통과 번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이라도 우리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상황은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행동하며 잠시 삶의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시간도 늘어나게 된다. 명상은 바로 이것이다. 삶의 모든 문제를 지닌 상태에서 명상의 대상에 집중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진공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공간의 힘으로 숨을 쉴 수 있고, 점점 더 공간을 넓혀나갈 수 있다. 상황이 변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내면 작업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 변화된 관점으로 사람들과 상황을 바라보면 그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세상과 사람이 변한 모습으로 보인다. 이것이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변하게 만드는 비법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은가? 자신을 변화시키면 세상은 저절로 변하게 되어있다.”라는 말은 진리다.
“삼인행 필유아사 (三人行 必有我師)”라고 공자가 말했다. 세 명이 길을 함께 걸으면 길동무들의 모습을 통해서 배울 것과 배우면 안 되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 가르침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스스로 배운다는 의미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글의 의미를 해석해 보았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들의 모습에서 좋은 면을 발견했다면, 내게도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길동무의 모습에서 불편한 점을 느꼈다면 이 역시 나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다. 바로 투사(投射)이다. “투사는 개인의 성향인 태도나 특성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이다.” (네이버 지식 백과) 유식학에도 비슷한 의미를 담은 말이 있다. ‘일수사견(一水四)’으로 물을 바라보는 네 가지 의견이 있다는 의미다. 같은 물인데 신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를 삶의 터전으로 본다는 의미다. 같은 물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24시간 함께 지내는 길동무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민낯을 볼 수 있게 된다. 길동무의 언행에서 불편함을 느꼈다면, 이는 바로 내 안에 존재하는 나의 참모습이다. 따라서 길동무에게 불편함의 원인을 돌리거나 탓하기보다는 불편함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빨리 자각한 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설사 볼 수 없더라도 불편함을 표출하기보다는 그 불편함을 안고 묵묵히 걸어야 한다. 몸의 감각에 집중하거나 자연의 소리를 듣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안고 걸어야 한다. 어느 순간 불편함이 사라질 때도 있을 것이다. 또는 불편함이 더욱 크게 확대되어 자신을 괴롭힐 수도 있을 것이다. 감정의 변화를 느끼며 어느 순간 이런 불편함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도 자각하게 될 것이다. 무상의 진리를 체득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불편함은 마음공부의 가장 중요한 토대이다.
길을 걸으며 각 지방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것도 걷는 자의 특권이자 즐거움이다. 민박집의 음식은 매우 훌륭했다. 몇 년 전에 한 친구에게 아주 비싼 음식을 대접받고는 왜 좋은 음식점을 찾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 적이 있었다. 이번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묵었던 민박집 음식은 어미니 손맛과 정성이 담긴 아주 훌륭하고 맛있는 음식이었다. 음식을 먹어야 걸을 수 있다. 음식은 걷기의 필수 요소이다. 자동차가 달리기 위해 휘발유가 필요하듯, 우리는 걷기 위해 음식이 필요하다.
길, 길동무, 만나는 사람들, 음식은 공통점이 있다.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길을 걸으며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게 된다. 또 길 속에서 치유받고 그 힘으로 다시 사회에 나가 활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길동무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민낯을 보기도 하고 그들의 삶을 통해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음식을 먹으며 건강한 성장을 하게 된다. 걷기는 이 세 가지, 길, 사람, 음식을 통해 우리를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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