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1003 12km
코스: 궁항 - 이정 - 서당마을 - 하동
평균 속도: 2.7km/h
누적거리: 5,10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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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마을은 정이 많이 가는 마을이다. 비록 하룻밤 머물렀지만 푸짐하고 맛난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안주인의 푸근한 마음과 넉넉한 인심 때문이다. 어제저녁 상을 받으며 깜짝 놀랐다. 음식 솜씨도 솜씨지만 다양한 음식을 많이 준비해 주셨다. 예약을 받고 나서 집안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집안 행사 참석을 포기하고 음식을 준비하셔서 우리를 맞이하신 것이다. 신뢰와 약속이 많이 무너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은 세상을 살아갈 만한 곳이라는 희망을 주셨다. 또한 신뢰는 나부터 먼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바깥주인은 집배원으로 평생 근무하시고 퇴직하셨다고 한다. 마을 이장을 지내시며 지리산 둘레길 조성 시 앞장서서 홍보와 주민 동의를 얻는데 일익을 담당하셨다고 한다. 또한 매일 20km 이상을 걸어 다니며 한 평생 우편물을 배달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오토바이나 자동차로 배달하는 요즘 세상과 격세지감도 느낀다.
저녁 식사와 아침 식사를 매우 맛있고 즐겁게 했다. 두 끼의 식사가 열흘 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가장 맛있고 정갈한 음식이다. 음식이 까다롭지도 않고 아무 음식이나 먹고 배만 부르며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의 고정관념에 변화를 줄 정도로 의미 있고 맛있는 식사였다. 이 숙소의 음식 맛은 이미 정평이 나 있으며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은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숙소도 남녀 별실로 준비되어 있고, 황토 온돌방으로 따뜻하게 몸을 지지며 휴식을 취하기에 아주 편안한 곳이다. 조용한 마을이어서 우리들 목소리 외에는 별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민박집 ‘산도리 민박’을 꼭 추천하고 싶다. 집 밖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정자나무가 있고, 성인 키 높이의 지리산 둘레길 안내 표석이 나무 앞에 딱 버티고 서 있다.

어젯밤에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이렇다. “스승이신 진표 스님께서 공부를 제대로 하라는 준엄한 명령을 내리셨다. 수행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선발되었고, 향후 5년 간 수행 과정을 마쳐야 한다. 3조에 배치되었고, 다섯 명의 도반 중에 세 명의 이름만 등록되었다.” 나름대로 꿈을 해석했다. 5년간의 수행과정은 코리아 둘레길을 완주하는데 예상되는 기간이다. 3조는 불법승 삼보를 의미한다. 다섯 명 중 세 명은 지금 이 방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다섯 명이고 그중 세 명은 같이 걷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수행을 열심히 하라는 진표 스님의 말씀은 열심히 걸은 후 걷기를 통해 심신이 힘든 사람들을 도우라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이유, 또 열심히 걷는 이유가 바로 심신 힐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점점 더 이 길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 길동무들에게도 꿈 얘기를 전했다. 진표 스님을 검색해 봤다. 우리나라의 미륵신앙을 발전시킨 스님으로 원효 스님과 진표 스님이 대표적인 분이라고 한다. “법천, 수행에 전념하라!”는 진표 스님의 준엄한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에 들리는 것 같다. ‘법천’이라는 법명을 한 동안 잊고 ‘걷고’로 살고 있었다. ‘법천’을 다시 되찾아야겠다.
오늘이 열흘 일정의 마지막 날이다. 그간 충실하게 그리고 즐겁게 걸었다. 아쉬움보다는 시원함이 더 많고, 벌써 다음 길이 기다려진다. 오늘 일정을 상의했다. 지원조 세 명은 숙소에 머물며 휴식을 좀 더 취한 뒤 승용차로 이동해서 주변 유적지를 돌아본 후 하동에서 우리와 합류하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7시에 먹은 후 8시 이전에 길동무와 함께 길을 나선다. 안개가 가득해서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뒤로 물러서지 말고 앞으로 가라는 자연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너무 확연하게 미래의 결과가 드러난다면 그 일은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정마을에서 서당마을까지 제법 속도를 내서 걷는다. 마지막 날인데 몸이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활력이 넘친다. 우리 몸은 이미 걷는데 많이 적응되어 있다.

산길에 접어드니 안내 표식과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길 안내 리본을 많이 볼 수 있다. 길동무는 다음에 걸을 때에는 우리만의 리본을 만들어 와서 뒤에 걷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디자이너 출신인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멋진 리본 표식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지리산 둘레길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단체에서 반길지 아니면 반대할지 잘 모르겠다. 이 길을 걸으며 간혹 길이 혼란스러운 지점이 있었다. 걷는 사람들만이 그 혼란스러운 지점을 잘 알고 있다. 다음 길을 준비하면서 좀 더 신중하게 얘기를 나눌 생각이다.
서당마을에 10시 이전에 도착했다. 서당에서 대축, 원부춘으로 메인 루트가 연결되어 있고, 또한 서당에서 간선 루트로 하동까지 연결된 길도 있다. 서당마을 입구에 서당 안내소 간판이 보인다. 스탬프를 찍고 잠시 머무는 사이 직원이 도착했다. 이 안내소는 약 2주 전에 오픈했다고 한다.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시는 푸근한 인상의 중년 직원과 함께 사진을 찍고 다시 걷는다. 지리산 둘레길은 주천에서 시작해서 우측 방향으로 걷는 ‘빨간색 화살표’가 있고, 좌측 방향으로 걷는 ‘검은색 화살표’가 있다. 서당마을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간선 루트의 화살표는 ‘녹색 화살표’이다. 둘레길 스탬프 포켓북에도 루트 표시가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동으로 가는 길목에 자꾸 서서 뒤돌아서 지리산을 둘러본다. 길이 끝나가고, 우리 일정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눈에 조금이라도 더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지원조와 하동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좀 더 머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서두름과 망설임 사이에서 마음은 갈등하고 있지만, 양발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하동에 도착해서 ‘둘레길 하동 센터’를 찾는데 안내 표식이 없다. 리본도 보이지 않고 나무 표식도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후 지도를 보며 찾아간다. 안내 센터는 꽤 넓고 중년 직원 한 분이 근무하고 있다. 도장을 받은 뒤 점심 식사를 간단히 하고 갈 생각이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다. 하동 버스 터미널에서 오후 1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다. 하동 센터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약 20분 이상 걸어가야 한다. 승용차 타고 먼저 와서 기다리면 미안할 것 같아 서둘러 걷는다. 먼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음과 거의 동시에 우리도 도착했다. 지원조는 그동안 걸으며 산에서 주은 밤을 나눠주기 위해서 일부러 이곳까지 온 것이다. 숙소와 간식 준비를 도맡아 해 주며 우리가 걷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 준 것도 너무 고마운데 밤을 나눠주기 위해 터미널까지 오니 미안할 따름이다.
열흘간의 행복한 시간이 끝났다. 처음부터 함께 걸은 길동무 범일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평상시에 꾸준히 걷는 사람이 아님에도 열흘간 함께 걸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 친구 무릎과 다리, 허리에는 파스가 늘 붙어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힘들다는 표정을 짓거나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며 격려를 해 준 친구다. 숙소 예약이나 길 찾는데 문제가 발생하면 늘 먼저 나서서 해결책을 찾아낸다. 길을 걷자고 내가 제안했지만, 이 친구 덕분에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아마 혼자 걸었다면 중도 포기했을 가능성도 꽤 크다. 또한 함께 걷지 못하면서도 서울에서 승용차를 몰고 와서 숙소 예약과 물, 간식, 음료 등을 준비해 주며 우리가 걷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한다. 그 친구들의 도움과 격려가 없었다면 무척 힘들게 걸었을 것이다. 감사함 못지않게 함께 걷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열흘 간 걸은 총거리가 약 160km 정도 된다. 전 구간의 거리가 약 280km이다. 완주하기 위해서 120km를 더 걸어야 한다. 내년 3월에 서당마을까지 와서 이어서 걸을 계획이다. 이때는 지원조 없이 함께 걷고 싶다. 체력이 허락하는 데 까지 걷고 먼저 숙소에 가서 쉬는 한이 있더라도 처음부터 같이 출발해서 걷고 싶다. 지리산 둘레길 1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길에 대한 파악을 어느 정도 한 것 같다. 길의 특성, 주변 환경, 숙소와 식당 등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2차 프로젝트를 준비하면 모두 함께 길을 마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도 앞으로 한발 한발 나아갈 뿐이다. 하나의 불확실한 세상을 넘으면 다음의 또 다른 불확실한 세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긴다. 이번 길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길을 준비하고 걸을 것이다.
이번 열흘간의 여정 동안 날씨 운이 좋았다. 우리의 운이 아니고 지리산 둘레길이 우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길에서 만난 많은 분들과의 귀한 인연 역시 그분들이 베풀어 주신 것이다. 길동무들의 도움과 격려 역시 그분들이 내어 주신 귀하고 고마운 보시행이다. 함께 걸었던 길동무 범일님이 내게 베풀어 준 많은 도움 역시 그 친구가 먼저 베풀어 준 큰 배려심이다. 이 길을 걸으며 많은 인연들에게 빚을 졌다. 이 빚은 평생 짊어져야 할 빚이다. 그 빚을 갚을 유일한 방법은 “걷기를 통한 수행, 수행을 통한 나눔”이다. 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堤下化衆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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