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925 19km
코스: 운봉에서 장항마을까지
평균 속도: 2.6km/h
누적거리: 4,96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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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어제의 피곤을 별로 느낄 수 없다. 7시 반경 민박집을 나와 식당을 찾으려 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한 곳은 열려있지만, 아직 손님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걷기 전에 먹는 것은 필수다. 배고프면 걸을 수 없다. 근처 편의점에 들려 먹을 것을 고르고 지불하려 하니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메모와 전화번호를 남겨놓고 음식을 먹을까도 생각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직원이 카운터 바로 안쪽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깨워서 계산을 부탁했다. 마지못해 일어난 종업원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응대한다. 우리가 편의점에 들어가 시끄럽게 얘기하며 음식을 고르는데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도둑이 들어왔다면 큰일 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바이크 족들이 들어와 음식을 고르려다 종업원이 없는 것을 보고 음식 구매를 포기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종업원의 태도가 많이 아쉽다. 라면, 육개장, 닭 가슴 스테이크, 커피, 물 등 필요한 음식을 먹고 남은 음식은 들고 나왔다.
고도가 있는 지역이어서 바람이 제법 선선하고 많이 분다. 습기가 없는 시원한 바람은 걷는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어 준다. 서림공원에서 출발하는 이 길은 람천 주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길가에는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벚꽃 시즌에는 아주 볼만한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공원 초입에는 석(石) 장승이 서있다. 목장승은 많지만 석장승은 보기 드물다. 황산대첩 비지(址)도 보인다. 정비가 아주 잘 되어 있다. 황산대첩은 고려시대에 왜구와 싸워 승리한 최영 장군의 홍산대첩과 더불어 2대 대첩 중 하나라고 한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왜구가 지리산 방면을 집중 공격해 들어오자 가는 곳마다 전승하기로 명성이 높은 이성계를 내세워 왜구 토벌에 나서도록 하였다. 우왕 6년(1380) 운봉면 화수리의 황산 일대에서도 살육과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섬멸하였다. 이 싸움을 황산대첩이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금 더 걸어가니 국악의 성지 동편제 마을이 보인다. 박초월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판소리의 본향인 느낌이 물신 난다. 생가에 들어가니 판소리가 들려온다. 가슴속 저 밑바닥에서 끌어올려 울부짖듯 내뱉는 판소리에서 한이 느껴진다.

산길로 접어든다. 농작물 시범 사업단지가 저수지 옆에 있다. 보안 시스템이 잘 갖춰진 느낌이 든다.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더니 입구에 서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바로 경비 시스템에서 안내 및 경보 방송이 나온다. 산양삼 재배단지다. 길을 가파르지는 않지만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비록 넓은 임도이지만, 지루한 오르막길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 사진 한 컷 찍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웅장하면서도 사람을 푸근하게 안아 주는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다. 지리산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정상에서 내려오니 무인 판매대가 보인다. 무인 판매대는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괜히 마음이 동한다. 막걸리 한 병과 음료 한 병 마시며 통행세를 겸한 비용을 지불했다. 기분이 좋다. 무인 판매대가 더 많았었는데, 코로나로 사람들 방문이 줄어들어서 판매대도 닫은 곳이 많다고 한다. 괜히 안타깝다.
남원 인월센터에 도착해서 안내를 받고 스탬프도 받았다.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다. 나이 드신 직원 한 분이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길동무들과 함께 센터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산채 비빔밥이 먹고 싶다는 길동무 얘기를 듣고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근처 맛있는 산채 비빔밥 집을 소개해주셨다. 식당에 들어가 비빔밥과 막걸리 한 병, 두부 한 모를 시켜 맛있는 식사를 마쳤다. 길동무 한 사람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식사 후 서울로 올라간다. 헤어짐이 아쉽지만, 개인적으로 중요한 업무가 있는 친구를 잡아 둘 명분이 없다. 아쉬움을 커피숍에서 달랬다. 오랜만에 에스프레소를 한 잔 주문했다. 산티아고에서 길을 걸으며 카페에서 늘 마셨던 그 에스프레소의 쓰고 달착지근한 맛이 산티아고 길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차를 마신 후 인월-금계 구간 시발점인 다리 앞에서 길동무와 허깅한 후 헤어졌다. 그 친구의 힘든 일들이 잘 정리되길 기원한다.

구인 월교를 지나 개천가를 따라 걷는다. 서너 명의 대학생들이 즐겁게 수다를 떨며 걷고 있다. 대학생들이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개천가를 지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마치 원시림에 들어온 착각이 들 정도로 깊은 산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깊은 숲과 적막함이 세상과 순간 단절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좁은 길이지만 잘 조성되어 있고, 오르막길의 돌계단은 분위기를 더욱 고풍스럽게 만든다. 길을 걷는 내내 만난 사람들이라곤 고작 다섯 명 정도에 불과하다. 덕분에 조용하고 한적하게 걸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침묵 걷기가 된다. 홀로 이 길을 걸었다면 무서워서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적이 드문 길을 홀로 걷는 것이 점점 더 무섭게 느껴진다. 계곡에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했다는 현수막이 보인다. 그곳을 찾아내어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사람들의 열정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동시에 사람과 당시의 생기가 없는 현수막만 달랑 걸려 있는 모습이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 굳이 그 현수막을 붙여놓을 필요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나중에 들어보니 예능 프로그램 방영 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배너미재를 넘어 장항마을에 도착했다. 예약된 민박집에 들어갔다. 칠순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요즘은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민박을 하지 않는데 우연히 우리 연락을 받고 손님을 받는다고 하신다. 길동무가 어렵사리 또 우연히 찾은 전화번호로 연락해서 예약을 하게 된 곳이다. 마음이 넉넉하고 따뜻한 인상이면서도 눈빛이 살아있다. 근처 원불교 교당에 다니며 공부를 하신다고 한다.
샤워 후 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널었다. 오늘 할 일을 모두 끝낸 것이다. 저녁 식사를 6시 반경에 내오셨다. 음식상이 매우 훌륭하고 맛있다. 한 끼 식사비가 8천 원, 민박요금이 4만 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다. 지리산 둘레길 나름대로 가격이 형성된 느낌이 든다. 민박 요금은 인당 2만 원에서 2만 5천 원 정도이고, 식대는 끼 당 7,8천 원 정도로 형성된 것 같다. 8천 원에 비해 음식이 너무 맛있고 정갈하다. 돼지고기 김치 찌개, 굴비, 김, 메실 장아찌, 양미리, 고사리나물, 열무김치 등 정성 담긴 반찬이 상을 가득 채웠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밥맛도 좋다. 서울에서 8천 원에 그런 음식을 먹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저녁 식사 후 길동무와 내일 갈 길에 대한 상의를 한다. 어디까지 가는 것이 좋은지, 또 끝나는 지점에 식사가 제공되는 민박집은 있는지, 금액을 합리적인지 등 따져야 할 것들이 많다. 내일은 장항마을에서 금계마을을 지나 세동마을까지 약 20km 이상을 걸을 예정이다. 오늘 걸어보니 아침에 조금 서두르면 가능할 것 같다. 매일 한 코스씩 걷는 것보다 조금 더 걸으며 좀 더 많은 코스를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욕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코스에 나와 있는 대로 하루에 한 코스씩만 걸으면 저녁 시간이 너무 길고 지루할 수도 있다. 하루 종일 할 일이라곤 걷고, 먹고, 씻고, 잠자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 조금 천천히 느긋하게 걸으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걷는 거리를 늘려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 이유는 없다. 길동무가 검색해서 세동마을 민박집 한 곳을 찾아냈다. 민박요금과 식대도 합리적이며 식사가 가능한 곳이다. 식사가 제공되지 않는 민박집도 있다. 가능하면 식사가 제공되는 숙소를 잡는 것이 좋다. 둘레길 걷는 사람들에게 아침 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지리산 둘레길은 걷는 중간에 점심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이 마땅치 않은 구간이 많아서 점심은 준비해 간 간식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오후 8시 30분이 되어간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자는 일 외에 별 다른 할 일이 없다. 내일 아침 식사를 7시 30분에 부탁드렸다. 8시 반부터 걷기 시작하면 내일 길을 걷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식사를 하며 뉴스를 보니 코로나 환자가 3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걱정스럽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길 기원한다. 아내도 이런 시국에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아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을 일에 대한 이해를 조금만 더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이 여행을 허락을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우면서 욕심을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내와 통화를 했다. 어젯밤에 잠을 잘 때 무서워서 TV도 틀어놓고 불도 켜 놓고 자느라 자주 깨서 잠을 설쳤다는 얘기를 들으니 미안하다. 내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욕심일지는 모르지만 분기별로 열흘 정도 지방에 가서 걷는 것을 아내가 이해해주고 지지해주고 허락해 주면 고마울 것 같다. 이 역시 내 욕심일까? 아내는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번에 집에 가면 물아 봐야겠다. 아내와 나의 바람을 서로 이해하고 지지하며 서로를 존중하며 살고 싶다. 내일 걷기 위해 이만 글을 마치고 잠잘 시간이다. 오늘 길을 걸으며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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