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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71] 나는 쫀쫀한 사람인가? 더치페이 (Dutchpay)를 주장하며

by 걷고 2021. 9. 8.

날짜와 거리: 20210905 - 20210907   13km

코스: 불광천 – 월드컵공원 – 문화 비축기지 외

평균 속도: 4km/h

누적거리: 4,803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재난 지원금 신청을 했다. 국민 소득 수준 88% 이내의 범위에 들어있다는 희소식이다. 12%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은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그들은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억울한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소시민인 나는 다수의 편에 소속된 것이 편안하다. 늘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 지위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좀 더 야박하게 얘기한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에 억지로라도 자신을 설득하며 자족하는 것이 심리적, 신체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 만약 자신의 설득에 실패하여 자기 비난과 자책을 한다면 삶의 질은 하락할 것이고, 그로 인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연 지금 나의 경제적 상황은 나쁜 것일까? 이런 질문은 나의 삶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어서 민감해지기도 한다. 물론 민감해지는 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괜히 스스로 잘 살아왔다고 억지를 쓰기 위해서라도 비호하기도 하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비교 대상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비교를 안 하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얘기하고 싶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아내와 둘이 내 집에서 살고 있다. 비록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지만 둘이 살기에는 충분하다. 외동딸은 결혼했고, 두 명의 손주들이 있다. 딸 부부는 우리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잘 살고 있다. 국민 연금을 받고 있고, 소액의 현금을 갖고 있다. 재테크에 워낙 재주가 없어서 은행만 믿고 살아왔다. 다행스럽게 빚은 단돈 1원도 없다. 최근에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주식 공부를 하며 소액 투자를 하고 있다. 한 선배의 강요 아닌 강권에 의해 암호화폐에도 아주 소액을 투자했다. 정기적인 수입은 없지만 가끔 공무원 채용 면접관으로 활동하며 약간의 수입도 만들어내고 있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이 정도로 살아왔으면 잘 살아온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고 자기 합리화일까? 아내 눈치가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구절절 이런 얘기를 하게 된 이유는 언젠가부터 모임에서 더치페이를 하지 않아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 수도 많이 줄었고 모임도 자연스럽게 많이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은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간 살아오면서 불필요한 모임을 많이 만들고 참석하며 불필요한 에너지와 경비를 많이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당시에는 다양한 사적 모임과 사람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 다행스럽다. 지금은 늘 만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편이고 새로운 만남이나 모임을 만들지 않는 편이다.

 

한 모임은 40년 이상 인연을 이어온 대학 시절 만난 영어회화 클럽 선후배 모임이다. 나 포함 네 명이 얼굴을 보고 있다. 이 모임에서 더치페이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지켜질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때로는 먼저 만나자고 얘기한 사람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고, 선배들이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고맙기도 하고 또 가끔은 불편하기도 하다. 한 선배 외에는 모두 현역에서 은퇴한 예비군들이다. 현실을 참작해서 무리하지 말고 자주 편안하게 만나기 위해 더치페이를 좀 더 강력하게 제안할 생각이다. 더치페이를 하면서 가끔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좀 더 맛있고 비싸고 평상시에 먹지 못했던 음식을 먹는 재미도 누려보고 싶다. 부디 선후배들이 더치페이 제안을 받아주길 기대한다. 

 

한 모임은 약 20년 정도 사회에서 만나 좋은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 모임이다. 나 포함 헤서 세 명이나 네 명이 만난다. 그중 두 명은 현역으로 매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이 모임에서는 내가 비용의 일부라도 지불하는 자체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현역들이라 그런지 맛과 분위기를 고려해서 조금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편이라 비용이 제법 비싸게 나온다. 모두 지불하기는 부담스러워 한번은 일부 지불했다가 타박을 받기도 했다. 매우 고맙기도 하지만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늘 신세만 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여러 번 더치페이를 제안했지만 묵살만 당했다. 그들의 논리는 매우 확고하다. 돈 벌고 있는 사람이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런 위치라면 나 역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것이지만, 막상 고정 수입이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가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더치페이를 다시 제안할 경우 예상되는 그들의 리액션은 상상조차도 하기 싫다. 그들의 호의를 무시한다고 하면서 단칼에 묵살할 것이다. 그들이 현역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나? 고마움과 인고의 세월이 필요한 모임이다.

 

한 모임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선배를 통해 만난 따뜻한 모임이다. 아주 힘든 상황에서 매우 따뜻하게 나를 인정하고 받아 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든 시간을 이 친구들 덕분에 잘 버텨낼 수 있었다. 나 포함해서 다섯 명이 모인다. 이 모임에서는 한 두 명이 대부분 비용을 지불한다. 편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이런저런 핑곗거리를 만들어 지불하기도 하고, 식사 자리가 끝나기도 전에 미리 지불하는 경우도 많다. 이 모임에서 더치페이를 제안하지 못한 이유는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결례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고맙기도 하지만 가끔은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아쉽기도 하다. 그렇다고 나만 혼자 내 비용만 낸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 모임은 사회에서 수년 전에 만난 사람으로 나 포함해서 네 명이나 다섯 명이 만나 같이 걷고 뒤풀이를 하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이 모임은 처음부터 더치페이를 하기로 합의를 했고, 한 사람이 일단 모임 비용 전체를 지불한 후에 1/n로 정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심지어 백 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한다. 이 모임의 더치페이는 매우 정확해서 편안하다. 물론 경사가 있는 사람이 가끔 자신이 한 턱 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완벽한 더치페이 방식을 고수하며 편안한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 

왜 나는 더치페이를 주장하고 누군가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불편해할까 라는 고민을 며칠 전부터 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공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편함이다. 한 사람이 비용을 낸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만큼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반복된다면 불편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늘 지불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불편해 할 수도 있고, 받아온 사람은 늘 받아왔기에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불공평함은 심지어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보이지 않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영향력은 또 다른 불공평함을 형성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식대를 모두 지불하기는 부담스럽지만 나 자신의 식대만은 부담함으로써 자존심을 지키고 싶고 관계에서도 균형을 이루며 서로 존중하며 살고 싶다. 물론 경사가 있거나 어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해서 모임 비용을 모두 책임지는 일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거나 받기만 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계산은 정확하게 하고, 관계는 공평하게 만들고, 서로 존중하는 모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치페이에 관한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쫀쫀한 사람일까? 그렇다. 나는 쫀쫀한 사람이다. 고정 수입이 없는 사람에게는 단 돈 몇만 원도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어떤 모임에서도 내 비용을 부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서로 존중하고 공평하고 균형 잡힌 모임에서는 아무리 비싸도 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 비용 부담으로 인해 모임이 불편해지거나 모임 내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비용으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매우 쫀쫀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또한 모임에서 다른 사람의 비용을 낼까 말까 고민하는 것을 보니 확실하게 쫀쫀한 사람이다. 이 글을 통해서 내가 쫀쫀한 사람임을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언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쫀쫀함’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나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더치페이’를 제안할 것이다. 제발 부탁이다. 모임에서 무조건 더치페이를 하자. 쫀쫀함은 나 혼자로 충분하다. 더치페이를 수용하는 그대들은 나의 쫀쫀함을 받아주는 너그러운 사람이 될 것이다. 혹시 아는가? 언젠가는 그대들의 관대함에 대한 감사함으로 내가 크게 한 턱 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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