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910 - 20210911 23km
코스: 재천 청풍호 자드락길 3코스 얼음골 생태길 (능강교부터 얼음골까지) 외
평균 속도: 2.5km/h
누적거리: 4,84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그간 많은 길을 걸었다. 걷기 동호회를 따라다니며 걷기도 했고, 홀로 걷기도 했다. 서울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북한산 둘레길, 산티아고 순례길 등을 일부 걷기도 했고, 완주하기도 했다.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 소백산, 한라산 등 많은 산행을 하기도 했다. 제법 걸었음에도 여전히 걷는 것이 즐겁고 설렌다. 추석 이후인 9월 24일부터 10월 3일까지 지리산 돌레길을 걸을 계획이다. 요즘 체력 훈련을 위해 서울 둘레길을 꾸준히 걷고 있다. 하루 걷는 것과 열흘간 매일 걷는 것은 다른 일이다. 체력 외에도 준비할 것이 제법 있다. 매일 걷고, 장비와 준비물 점검하는 이 시간들이 너무 즐겁다. 걷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구구절절 얘기하는 이유는 많이 걸었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3코스가 그간 걸었던 길 중에 가장 으뜸이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이다. 트레킹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코스이다.

친구들과 함께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 3코스를 다녀왔다.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고 제천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출발지점인 능강교로 이동했다. 약 30분 이상 이동한 것 같다. 제천의 숲은 마치 강원도 산골에 들어온 느낌이 들 정도로 무성하고 깊다. 초입부터 마치 산이 우리를 흡수하듯 저절로 빨려 들어간다. 굳이 햇빛을 가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무 그늘이 우리를 가려준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세속에 찌들었던 마음을 씻겨주고 수많은 쓸데없는 잡소리와 공해로 피곤했던 귀를 정화시켜주며 세상과 단절시킨다. 이런 단절은 다시 세상에 나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단절이다. 산속을 걸으며 세상에 지친 심신을 치유한 후 다시 세상에 나가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자발적 단절은 삶의 활력과 질을 높이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산 냄새, 나무 그늘, 숲 냄새,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니 신비로운 세상인 선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우리는 이 순간만큼은 모두 신선이 된다. 선계에서 살아가는 신선의 모습은 어떨까? 신선도 삶과 죽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진 사람들일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편안하게 수용하고 거스르려는 마음조차 없는 평정심 그 자체로 살아가는 사림 들일 것이다.

계곡의 물소리는 걷는 내내 세상의 소리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진다. 이렇게 자연은 우리를 포옹하고 쓰다듬어 주고 보호해준다. 가끔 새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이 산길에서 듣는 새소리는 물소리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답다는 분별심을 내는 것을 보니 선계에 들었으되 신선이 되지는 못했다. 몸은 비록 선계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속세에 머물러있다. 수행자들이 깊은 산골에서 수행하는 척하며 세속의 시빗거리로 마음을 시끄럽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물소리를 들으며 시끄러운 세상과 마음의 소리를 조금은 가라앉힐 수 있어서 좋다. 누군가가 초입에 돌탑을 많이 만들어 쌓아 놓았다. 어떤 마음으로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탑을 만들기 위해 무거운 돌을 옮겨 올리고 작은 돌로 버팀목을 만들어 흔들림을 막는 솜씨는 보통 솜씨는 아니다. 그 사람의 모든 소원이 원만 성취되길 기원한다.

산길에는 돌들이 많다. 너덜바위 수준은 아니더라도 걷는 내내 흙과 돌을 밟으며 걷게 된다. 길은 잘 정비되어있다. 오르막길이 나오다 평지가 나오는 길의 반복이다. 이 길이 힘들지 않은 이유는 오르막길에서 숨이 찰 즈음 평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마치 계단을 오르듯 걸으며 오른다. 목적지인 얼음골에 도착할 때까지 이런 길이 반복된다. 걷기에 참 좋은 길이다. 마치 우리를 위해 길을 조성해 놓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어렵지 않은 길이지만 그렇다고 쉽지만은 않다. 돌이 많기에 발목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땀이 많이 날 정도로 힘들기도 하다. 계곡 사이를 건너는 길목에는 통나무로 만든 다리들도 있다. 이런 다리는 정겹고 조심스럽다. 또한 출렁다리도 만들어 놓았다. 이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하고 세심한 배려를 해 놓은 느낌은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 길은 내가 걸었던 길 중에 단연 최고이다. 목적지인 얼음골에 도착했다. 얼음골 입구는 출입제한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어 보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원래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지만, 오늘은 괜히 그 규칙을 깨고 얼음골에 들어가고 싶어 출입제한 선을 넘었다. 얼음골에 앉아있으니 등 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자드락길을 관리하시는 분들에게 감사함과 규칙을 어긴 점에 대한 죄송함을 전한다. 이 길을 걷는 내내 만난 사람들은 네댓 명 정도밖에 없었다. 그만큼 인적도 드물고 산 냄새가 좋아 마스크를 벗고 걷기도 했다.

얼음골 가는 중간 지점에 돌을 옮겨 만들어 놓은 멋진 테이블과 의자가 설치되어있다. 누가 그 큰 돌을 옮겨서 그곳에 설치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네 명을 위한 특별 주문 제작 테이블과 의자이다. 테이블 위에 들고 온 음식물을 올려놓았다. 얼린 막걸리 두 병, 집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담은 텀블러 네 개, 고추장과 오이, 맛있는 단팥빵, 삶은 계란과 떡, 사과 등 진수성찬이다. 음식을 먹고 걸으니 힘든 줄 모르게 얼음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막걸리 덕분인지 산의 아름다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산 길에 막걸리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음골에서 그 자리까지 오는데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다. 우리끼리 한 얘기가 있다. 올라가며 막걸리를 계곡 물속에 넣어놓고, 내려오며 한잔씩 마시며 걸으면 힘들지 않을 거라고. 이 길을 언제 다시 올까 얘기를 하며 내려왔다. 가을 단풍이 질 때 와도 좋을 것이고, 내년 한 여름에 와도 좋을 것이다. 단풍이 무척 아름다울 것 같고, 한 여름에 계곡물에 물 담그고 쉬엄쉬엄 걷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길 마치기도 전에 다음 길을 갈 생각에 마음이 벌써 들뜨기 시작한다.
출발지점에 도착해서 택시를 불렀다. 우리를 태워주셨던 기사님 연락처를 받아 연락한 것이다. 그 기사님은 친절하고 즐겁게 말씀하시며 직접 재배하신 매운 고추를 나눠주셨다. 게다가 콜 비용을 별도로 받지도 않고 운전하시며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셨다. 역 근처 식당에 들어가 삼겹살과 소주 한잔 하며 즐거운 시간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쌍둥이 총각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고기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하다. 식사 후 제천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커피숍에 들어가 망고 주스와 블루베리 주스를 주문했다. 여주인은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 다녀오느냐? 등 질문을 하시며 비타민, 콜라겐, 과자 등을 주셨다. 또한 제천에 와서 살아보라고 제천 자랑에 한참이다. 제천 사람들은 인심이 넉넉한 것 같다. 제천의 산이 깊듯이, 사람들 마음도 깊고 넉넉하다. 다시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8시. 하루를 꽉 차게 보냈고, 즐거운 추억 가득 안고 돌아왔다.
각자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단톡방에 올렸고, 한 친구가 그 자료들을 모아 편집해서 7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 보내 주었다. 이 동영상은 앞으로 우리들에게 멋진 추억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런 좋은 인연을 쌓고,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즐겁다. 귀한 인연 잘 이어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 노력은 다음 길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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