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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16] 어버이 날

by 걷고 2021. 5. 8.

날짜와 거리: 20210507 – 20210508   21km 

코스: 창포원에서 우이령까지, 봉산 

평균 속도: 3.8km

누적거리: 3,87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 “사랑하는 부모님께!

아버지, 어머니 태어나서 몇 번을 불러보았을까요? 사랑한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표현력은 부족해도 저는 항상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애교가 부족해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그 말을 하고 싶네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걷기 동호회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자꾸 반복해서 이 글을 읽어보게 된다. 댓 글을 달았다. “자식이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부모님은 안 계시네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댓 글을 달면서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살아계실 때에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무관심이 전부였다 불효자식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 들어가면서 가끔 부모님 생각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부모 자식 간 인연은 아주 무거운 인연이다. 쉽게 이루어질 수도 없고, 쉽게 끊어낼 수도 없다. 그런 천륜을 거부하려고 발버둥 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부모님의 몸을 받고 태어난 자식이 부모님을 거부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짓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고, 그 결과 얻은 것은 마음의 상처밖에 없다. 지금 부모님 영혼은 어디에 계실까? 부디 어디에 계시든 편안하시길 바랄 뿐이다. 

장인어른은 우리 결혼을 반대했다. 마지못해 허락하시고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장인어른 마음도 충분히, 아니 그 이상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사위를 처음에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인어른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한 번도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시지 않으셨다. 비록 당신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내색도 하시지 않으시고 늘 지켜보셨다. 가끔 술 한잔 하시면 당신께서 언제든지 도움을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용기와 힘을 주셨다. 초보 장인인 나와 초보 사위 사이에 불편함이 있었지만, 장인어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이후로는 사위에게 어떤 얘기도 하지 않고, 무조건 안아주면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장인어른께서 말로서 가르침을 주신 것이 아니고, 당신의 행동으로 큰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어른은 말로 자식들을 가르치거나 타이르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시며 자식들이 깨달을 때까지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가족임에는 분명하지만 명확한 경계가 존재한다. 내 자식이지만, 가끔 내 자식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자식들도 자기 부모지만 자기 부모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을 것이다. 부모-자식 관계는 마치 기업의 사장과 직원의 관계와 같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사장의 마인드를 갖고 업무에 임하라고 하지만, 직원이 사장 마인드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은 엄연하게 역할과 위치가 다르다. 이 둘은 물과 기름처럼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식도 결코 하나로 융합될 수가 없다. 부모는 부모이고, 자식은 자식일 뿐이다. 자녀들이 성장해서 독립할 때까지 도움을 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고 역할이다. 그 이후에는 자식들의 삶에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자식들 역시 성장한 후에는 독립해서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부모와 자식은 가족이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양육의 가장 큰 목적은 ‘건강한 독립’이다. 부모의 책임과 의무는 건강한 독립을 위한 양육까지 만이다. 그 이후에는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식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가족 간에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자식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거나, 부모를 자신의 의지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부모와 독립한 자식은 ‘따로 또 함께’ 살아가야 한다. 결코 하나가 되어서도 안 되며, 될 수도 없다. 

 

“Life is voyage.’라는 말이 있다. 인생은 항해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한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배 한 척을 별도로 만들어 두 척의 배가 항해를 한다. 배 한 척이 기울거나 부서지면 다른 배가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한 배에 동승해서 항해하지는 않는다. 한 배에 같이 동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부부뿐이다. 가족들이 잠시 동승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힘든 시간을 나눌 수는 있지만, 결국은 각자의 배로 돌아가 항해를 계속해야 한다. 이 두 척의 배는 결코 하나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항해를 잘할 수 있도록 격려와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것이 물리적인 두 척의 배가 심리적인 한 척의 배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버이의 날에 카페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수많은 상념이 올라온다. 자식이 부모가 되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때, 이미 부모님은 이 세상에 없다. 우리는 부모이자 자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의 부모라 부를 수는 있지만, 누구의 자식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식’으로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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